생산가능인구 감소·저축률 하락 성장 발목
외환위기 후 시스템 위기 극복 이행 못해
한국은 경제 개발 추진 이후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인력 수요와 공급 간의 병목 현상과 불일치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만성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우려된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 보장 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 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 필요성 감소와 소비 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 기업의 현금 보유는 사상 최대 규모다. 부패와 뇌물 사건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정치적 영향력과 행정 규제에 비례한다.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 구성원은 치열한 로비 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되는 소위 ‘지대 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정착된다.
정책 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종전만 못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경제의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 타임까지 놓쳐 이제는 한국 경제도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 신호를 준다고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이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 승수, 통화 유통 속도, 예금 회전율 등 각종 경제 활력 지표가 눈에 띄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 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 대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경기 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경험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 위상에 맞게 내수 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 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 현상까지 겹치면서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 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올해 여름휴가철이 끝나자마자 퍼펙트 스톰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최근처럼 대내외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퍼펙트 스톰과 같은 극단적인 비관론이 마치 고질병처럼 고개를 드느냐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외환 위기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경제 진단과 국민 지지 필요
‘위기 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유동성 위기를 해결한 후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했다. 한국도 외화 유동성을 확보한 이후 잦은 정책 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 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채 20년이 지났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시스템 위기와 실물 경기 위기 극복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 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에 따라 대처 능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이때 투기 요인이 차익 실현으로 연결되면 극복했다고 봤던 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 ‘위기 재귀론’이다.
외환 위기 이후 들어선 어떤 정부든 모두가 경제 안정성이 계속 흔들리고 위기론이 가시지 않는 것은 ‘통계 수치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입법과 정책 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 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부터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출이 세계 경제 환경이나 환율이 조금만 불리하게 되면 크게 감소돼 곧바로 위기감이 닥치는 소위 ‘천수답 구조’를 ‘수리 안전답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단기 처방은 금물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처럼 경제 우선 정책을 예산 조기 집행, 시도 때도 없는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같은 단기적인 대증 처방에 의존할 경우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오히려 구조 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5번 발표했던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인 예다.
정책 수용층인 국민으로서도 정책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갈수록 국민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책 당국(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이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 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자기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 결정 과정에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추진되면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줘야 한다. ‘공공선’ 정신이 경제 위기 극복 열쇠
올여름 휴가철 이후 한국 경제는 밝지 못하다. 최대 장애 요인으로 꼽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는 예측 기관도 있어 주목된다. 가장 먼저 각 분야에 걸쳐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기득권을 놓고 극과 극을 치닫는 가치와 이념 대결을 해소해 나가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약화되는 것이 문제인 만큼 최소한 잠재 수준 정도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해법’을 통해 인구 문제를 해결하고 친기업 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 등에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글로벌 해법은 미국 와튼스쿨의 제라밀 시겔 교수가 세계는 하나인 시대에 제시했던 성장 전략으로, 간단한 생산 함수(Y=f(K,L,A), K=자본, L=노동, f( )는 함수 형태)의 적용 대상을 세계로 확대하면 외국인과 한국인, 외국 기업과 한국 기업, 외국 자본과 한국 자본이 잘 보완돼야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앞으로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 당국의 ‘마라도나 효과(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을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수용층이 ‘공공선(公共善‧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한다면 올해 여름휴가철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들고 있는 퍼펙트 스톰을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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