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L업계 최초 전기비행기 상용화 발표…2024년 단거리·경량 화물 운송용으로 운항
[테크 트렌드] 올여름에도 세계 각국이 폭염과 폭우 등 이상 기후에 시달리면서 탄소 제로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전기 동력원은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인 탄소 배출을 줄일 대안으로 각광받는다. 전기 동력원의 상용화는 지상에서는 전기자동차로, 하늘에서는 전기비행기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탄소 제로에 필요한 전기비행기
비행기(airplane)는 해외여행 등 장거리 운항에 애용되는 운송 수단이다. 양력을 만들기 쉬운 고정익과 자체 추진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다양한 유형의 항공기(aircraft) 중에서 장거리 운항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성능 좋은 비행기도 환경 측면에서는 가장 유해한 것으로 간주된다. 여러 운송 수단들 중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2019년 유럽환경청(EEA)은 각종 운송 수단의 여객 킬로(passenger kilometers)당 탄소 배출량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승객 한 명을 1km 운송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이 기차는14g, 승용차는 42g, 버스가 68g인데 반해 제트 비행기는 무려 285g이었다.
탄소 제로를 지향하는 최근 추세에서 비행기가 배출하는 탄소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여러 대안 중에서 전기자동차처럼 탄소 배출 억제 효과가 확인된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전기비행기에 대한 연구·개발(R&D)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기비행기는 화석 연료인 항공유를 사용하는 터보팬(turbofan) 제트 엔진이나 피스톤 엔진 대신 2차전지와 모터의 조합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비행기를 말한다. 전기비행기는 오래전부터 개발돼 왔지만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납축전지와 니켈카드뮴 전지 등 대중화된 2차전지들이 너무 무거운 동시에 에너지 저장량이 충분하지 않아 비행기의 동력원으로 삼기에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전기 동력원을 사용하는 항공기의 R&D는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리튬 전지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한층 빨라졌다. 요즘 보급되고 있는 취미용이나 택배용, 구조물 모니터링 등 단거리 구간에서 사용되는 멀티콥터 형태의 상업용 드론들은 대부분 리튬 전지 기반의 전기 동력원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비행기의 동력원은 여전히 터보팬이나 피스톤 엔진과 같은 화석 연료 엔진이고 전기 동력원은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리튬 전지에 저장된 에너지 양도 제트 비행기의 터보팬 엔진에 사용되는 항공유에 비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에너지 밀도(energy density)는 일정한 중량이나 부피에 저장된 에너지의 양을 의미한다. 항공기 동력원에 대한 각종 연구에 따르면 2차전지의 에너지 밀도는 항공유의 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주종을 이루는 2차전지인 리튬 이온 전지의 에너지 밀도는 kg당 250kWh에 그친 반면 제트유는 kg당 1만2000kWh에 이른다. 이에 따라 최대 비행기 중 하나인 A380이 제트 엔진으로는 최대 1만5000km를 비행할 수 있지만 제트유와 동일한 중량의 리튬 이온 전지를 사용하면 1000km밖에 비행하지 못한다.
전기 동력원은 에너지 밀도가 너무 낮아 주로 장거리 운항용으로 쓰이는 비행기에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부적합하다. 물론 장거리 비행에 성공한 전기비행기도 있다. 4개의 전기 모터로 프로펠러를 구동하는 솔라 임펄스2(Solar Impulse 2)는 2012년 첫 대륙간 비행에 성공했고 2016년 7월 16개월에 걸친 세계 일주 비행에도 완료했다. 솔라 임펄스2가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행 중에도 태양열로 리튬 폴리머 전지를 계속 충전시키는 충전 방식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속 28~34마일에 불과한 정도로 느린 비행 속도와 조종사 1명에 한정된 탑재 중량 때문에 솔라 임펄스2를 상용화하기는 어렵다.
적합한 용도의 개발이 더 중요
2차전지의 에너지 적재량과 비행기의 가동 시간은 하나가 늘어나면 다른 하나는 줄어드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를 보인다. 이 때문에 전기비행기의 개발은 다양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리튬 전지의 낮은 에너지 밀도를 감안해 가벼운 모터 여러 개로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분산 동력 방식의 전기비행기가 개발되는가 하면 보다 많은 에너지를 담은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한 전기비행기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리튬 전지보다 에너지 밀도가 더 높은 새로운 소재의 전지를 개발하는 보다 장기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은 용도에 맞는 적정 비율을 찾든가 현재 비율에 적합한 용도를 찾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기비행기를 단거리 노선용이나 경량 화물 운송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도 늘어나고 있다.
2020년 5월 호주의 매그니X(magniX)가 최대 9명을 태울 수 있는 중형 전기비행기 e캐러밴(eCaravan)의 시험 비행을 성공시켰다. 매그니X의 전기비행기는 미국 세스나의 베스트 셀러 기종인 그랜드캐러밴(208B Grand Caravan)의 엔진을 전기 모터로 바꾼 기체였다.
같은 해 9월 스웨덴의 하트 에어로스페이스(Heart Aerospace)가 2024년 실기 테스트, 2026년 인증을 목표로 한 단거리 중형 전기비행기 ES-19의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4발 프로펠러 기체인 ES-19는 운항 거리 400km, 탑승 인원 19명의 단거리 중형 기체이지만 많은 관심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올들어 핀에어,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등 다수의 항공사들이 합계 250여 대 규모의 구매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올해 8월에는 전기비행기 상용화의 시금석이 될 이벤트가 있었다. 글로벌 택배 업체인 DHL이 물류업계 최초로 전기비행기를 상업용으로 도입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DHL이 사용할 전기비행기는 이스라엘 에비에이션(Eviation)의 앨리스(Alice)다. 앨리스는 최대 1.2톤의 화물을 싣고 약 800km를 비행할 수 있는 중형 비행기다. DHL은 2024년부터 기체를 인도 받아 허브 공항과 지선을 잇는 단거리 노선·소형 화물 운반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만일 DHL이 앨리스의 운항을 통해 상업적 성과를 거두게 되면 2030년께부터는 단거리 노선, 소형 화물 운반용을 필두로 전기비행기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