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에 따른 신용 여건 악화가 예상보다 크면 증시도 불안정 가능성

[머니 인사이트]
(사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불황은 너무 많은 가계 부채를 양산하는 금융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다.”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공저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 인용한 글이다.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강조한 책이다. 주택 시장이나 자산 시장이 멈칫하면 경제 주체는 이를 반영해 신용 팽창을 멈추기 때문에 불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불황은 사람이, 아니 부채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난 수차례의 금융 위기에서 얻은 교훈에도 지금의 세계 경제는 30년 전, 아니 10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체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

한국의 가계 부채는 지난 6월 기준 1800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말 1600조원에서 1년 반 만에 200조원이 증가한 것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확대된 유동성이 이른바 ‘영끌’과 ‘빚투’라는 이름으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유입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933조원으로 가계 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3%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스위스·덴마크·캐나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가계 부채의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최근 1년간 한국 가계 부채 증가율은 10.3%를 기록했고 특히 마이너스통장으로 대표되는 신용 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12.5%로 통계 편제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급기야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죄기 시작했다. 고승범 차기 금융위원장 역시 가계 부채 리스크 해소가 시급한 과제이고 모든 수단을 통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이에 농협을 비롯한 주요 은행이 주택 담보 대출 취급 중단, 신용 대출 한도 축소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해 풍선 효과가 나타났던 보험사나 카드사 등 2금융권에 대해서도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기준 금리를 0.50%에서 0.75%로 25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금리 인상의 배경은 1차적으로 경기 회복 기조를 반영해 지난해 3월 코로나19 직후 단행했던 75bp 금리 인하 ‘빅 컷’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미국 등 빠른 경기 회복을 경험한 선진국보다 한 발 앞서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급증한 가계 부채 부담과 저금리의 부작용으로 인한 가파른 자산 가격 상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긴급 조치의 성격이 강하다.

금리 인상은 경제 체력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주가에 긍정적이란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 회복 훼손 정도가 제한적이고 백신 접종 확대 효과와 2차 추가경정예산 효과가 이를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더 강조한 내용이 있다. 바로 금리 인상 결정의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명시한 금융 불균형 위험의 증가다. 이례적으로 완화적 금융 여건을 1년 넘게 유지한 결과 금융 불균형 누적이란 부작용이 나타났고 이러한 불균형 해소를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준 금리를 25bp 인상했지만 실질 금리는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통화 금융 상황이 완화적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판단이다.
금리 인상 나선 한국은행…주식 시장에 호재일까
금리 인상이 곧 경기 회복이라는 접근 경계해야

기준 금리 인상은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대출을 이용하는 차주의 이자 부담이 확대되고 추가적 대출 여력을 축소시킨다. 가계 부채의 억제와 거시 경제 안정성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 조치다.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시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동성 공급 축소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난 6월 기준 은행권의 가계 신용 대출 가중 평균 금리는 3.75%를 기록 중이다. 8월 금리 인상을 반영하면 4%대 진입이 예상되고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통화 정책 정상화를 가정해 금리를 한두 차례 추가 인상한다면 가계 대출 금리는 5%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경기 개선을 동반한 완만한 금리 상승은 주식 시장에 긍정적 재료로 작용한다. 유동성 여건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 등 실물 경기 회복에 따른 기업 실적 개선과 경제 주체들의 심리 회복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금리 인상의 배경이 ‘경제 정상화’보다 ‘금융 불균형 해소’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주식 시장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향후 관건은 금리 상승의 속도와 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기준 금리 인상 이후 추가적 금리 인상의 시기와 정도가 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경기 회복 속도에 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 기조가 나타난다면 시장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통화 정책 정상화를 지연시키는 것 또한 금융 불균형 해소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이다. 절묘한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과제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최근 은행권의 가계 대출 총량 규제와 가격(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자금 공급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모주 청약 등 여전히 ‘빚투’ 열풍이 이어지면서 대출 수요가 왕성한 상태이지만 대출 규제 강화와 보수적 신용 위험 인식의 영향으로 은행권은 대출 공급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면 대출 금리의 상승 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통상 은행이 고객에게 제시하는 대출 금리에서 조달 금리를 차감한 부분을 가산 금리라고 하는데, 주택 담보 대출의 가산 금리는 6월 기준 1.8%포인트로 이미 역사적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최근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신용 대출도 가산 금리가 2.8%포인트를 웃돌며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산 금리 상승이 기준 금리 인상과 맞물린다면 대출 금리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지게 되며 앞서 언급한 가계 신용 대출 기준으로 금리 수준이 5%를 웃돌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대출 금리가 상승하고 총량 규제가 심화되면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계층의 피해가 가장 커지게 된다.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 가구 혹은 영세 자영업자는 추가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고 파산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면 경제 내 전반적 신용 여건이 악화되며 부실 가계와 기업이 증가해 은행권은 대출 공급을 더욱 축소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신용 여건 악화는 주식 시장 환경에도 부정적이다. 재무적으로 취약한 기업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이는 기업 심리 위축과 신규 고용 축소, 소비 부진과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져 경제 내 수요의 연결 고리를 취약하게 한다.

최근 주식 시장 내 개인 자금의 유입 강도는 둔화된 모습이다. 연초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개인 기준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이 30조원을 웃돌았지만 하반기 들어 20조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주식 거래의 활동성을 의미하는 시가 총액 회전율 역시 한때 1000%를 웃돌았지만 현재는 600~700%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반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 잔액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연초 20조원 수준에서 24조원까지 늘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지수 조정과 거래 둔화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빚투’ 열기만큼은 뜨겁게 유지되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투자 콘텐츠, 디지털 금융 환경의 발달, 축적된 투자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과거에 비해 개인 투자자의 주식 투자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 자금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단기 성과 위주의 투자 패턴을 보이고 있고 레버리지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 현재 증시를 지탱하고 있는 자금의 기반이 아주 탄탄하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만일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에 따른 신용 여건의 악화 정도가 예상보다 크게 나타난다면 주식 시장을 둘러싼 자금의 유출입 규모가 확대되고 불안정한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공모주 청약 자금을 중심으로 개인의 투자 자금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업공개(IPO) 직후 소위 ‘따상’을 기대하는 자금 수요가 집중되면서 증시 고객 예탁금과 개인 대출 규모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4월 SK아이테크놀로지와 관련된 81조원의 청약 증거금 납입을 위해 한 달간 10조원이 넘는 신용 대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현재의 금융 불균형 정도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고 8월에 이어 추가적 금리 인상 시그널을 이미 시장에 전달했다. 통화 정책 기조의 변화와 신용 여건 악화가 동반되는 지금 국면에서 과거와 같이 단순히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의 반영이라는 접근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