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인프라 구축 활발한 유럽…미국은 2030년까지 상용차 30만 대 수소차로 대체

[돈 되는 해외 주식]
(사진) 제니퍼 그랜홈(왼쪽)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8월 5일 수소 연료전지 등을 개발하는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FEV의 미국 미시간주 기술개발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제니퍼 그랜홈(왼쪽)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8월 5일 수소 연료전지 등을 개발하는 독일 자동차 부품 업체 FEV의 미국 미시간주 기술개발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블리비언(Oblivion).’ 2013년 상영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는 ‘망각’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영화에서 외계인이 노리는 지구의 에너지원은 물, 더 자세히 말하면 수소(핵융합용 중수소를 포함)다. 외계 드론의 동력원은 다름 아닌 연료전지다. 수소는 인류에게 ‘망각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수소 원소는 물의 형태로 지구에 풍부하지만 인류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인식하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수전해 장치를 개발한 것은 1800년이다. 수소를 비로소 에너지로 인식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소는 그 이후에도 진정한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1960~1970년대 연료전지 자동차가 일부 개발되기도 했고 오일 파동 당시 잠시 대체 에너지로 고려되기도 했지만 생산 비용이 문제였다.

최근 수소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파리기후협약의 발효와 함께 각국 정부의 탄소 중립 선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저장·수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둘째, 수소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수전해 기술의 경제성이 향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발전 단가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비율 증가에 따른 잉여 전력 문제를 해결할 중요 수단이기도 하다.
‘망각의 에너지’ 수소에서 찾는 투자 포인트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확대됨에 따라 수소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탈탄소 확산의 매개체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소 인프라 구축을 가장 활발히 추진하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지난 7월 EU 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패키지 ‘핏포55(Fit for 55 : 2030년까지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대체 에너지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35년부터 내연 기관 차량의 출시가 금지된다. 증가할 전기차와 수소차 수요에 대응할 인프라도 확대할 예정이다. 60km마다 전기차 충전소, 150km마다 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도 수소 로드맵을 통해 2030년까지 4300개의 충전소를 설치하는 등 수소 인프라 확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 상용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은 디젤 엔진의 환경 유발 물질 저감에 신경 쓰고 있다. 2030년까지 30만 대의 상용차를 수소차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소 기술은 흔히 수소 모빌리티(FCEV), 연료전지 발전이 대표적인 기술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비교적 기술적 우위를 지닌 분야다. 특히 수소 모빌리티 분야는 한국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시장의 개화와 함께 기술 선도국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기술이 섹터 커플링(P2X)이다. 이를 통해 수소를 다양한 산업의 탄소 저감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로 수소를 탄소와 결합하면 합성 연료를 만들 수 있다. 기존 내연 기관을 사용하면서도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P2L). 수소를 철강 공정의 환원제로 사용해 코크스를 대체할 수도 있다(P2C). 그러면 철강업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P2X는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다른 친환경 기술이 할 수 없는 수소 고유의 역할이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수소가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그린 수소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소는 진정한 탄소 중립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수소의 생산·운반·저장을 아우르는 종합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원이 부족한 국가는 수소라는 형태로 친환경 에너지를 수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수소 운반선, 저장·기화를 위한 터미널 구축, 파이프라인과 충전소에 대한 종합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수소 인프라 기술은 한국보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 기업의 수준이 월등히 높다. 한국 역시 인프라 기술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한국 대기업을 중심으로 그린 수소와 블루 수소 등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다. 그레이 수소보다 친환경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 계획과 제휴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내외 수소 기업의 투자 기회도 바로 인프라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