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진한 옛 막걸리의 맛, ‘술공방 9.0’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자락, 광활한 논밭을 지나 도착한 곳은 ‘아리랑주조’의 간판이 걸려 있는 양조장. “여기는 아리랑주조이면서 두이술공방이기도 합니다.” 이윤범 대표의 인사에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리랑주조’와 ‘두이술공방’은 같은 부지, 같은 대표가 운영하는 양조장이었던 것.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이름이 붙은 재미난 사연을 만나봤다. 같은 듯 다른 두 개의 양조장2009년 귀농을 꿈꾸던 부부가 충청도의 부지를 둘러볼 때였다. 별다른 소득 없이 서울로 돌아오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폐양조장이었다. 부부가 양조업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편 이윤범 대표의 선친은 전남 함평에서, 부인 이윤미 대표의 외조부는 목포와 무안 경계에서 양조장을 운영했기에 두 사람에게 양조장은 낯설지 않은 장소였다. 부부는 과감하게 양조업에 뛰어들었다.
연고가 없던 충남 청양군에 자리 잡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술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아리랑주조’를 설립했다. 10년간 ‘겨울소주25’, ‘구기홍주’, ‘알밤막걸리’ 등 다양한 주류를 생산하며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9년 부부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지역 특산주 생산에 도전했다.
현재 주세법상 지역 특산주를 보호하기 위해 지역 특산주가 아닌 술을 생산하는 곳에는 같은 주종으로 동시 제조 면허를 내주지 않아 새 양조장 면허가 필요했다. 결국 아리랑주조 공장 건물의 구역을 나눠 또 다른 술 공방을 차렸다. 부부의 성을 따 ‘두 이 씨(氏)가 술을 만드는 공방’이라는 의미의 ‘두이술공방’이다. 아리랑주조로 1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살려 지역 특산주, 수제 생막걸리 ‘술공방9.0’을 만들었다.
발효를 억제하다
술공방9.0의 핵심은 발효를 억제하는 것이다. 보통의 막걸리는 어떻게 발효를 잘 활성화할지가 관건인데 이와는 전혀 반대다. 누룩의 효소는 물을 매개로 발효를 왕성하게 하는데 술공방9.0은 담금 과정에서 물을 거의 넣지 않은 상태에서 발효한다. 쌀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이끌어 내기 위해 발효를 억제하며 천천히 오랜 기간 숙성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막걸리의 맛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그 맛을 유지하는 거죠. 처음 출시했을 때 다른 제품들의 발효 기간이 1주일이라면 술공방9.0은 2주 동안 발효했어요. 분명 제조한 직후의 맛은 좋았는데 소비자들이 받은 제품은 탄산이 계속 빠져나와 병 입구는 끈적거리고 병 주변에 침전물의 흔적이 생기더라고요.”
이 대표는 연구 끝에 발효 기간을 한 달로 늘렸다. 그 덕분에 수제로 만든 누룩과 청양 햅쌀의 진한 맛을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발효를 억제하는 동시에 술이 제대로 숙성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 그 결과 천연 발효만의 깊고 풍부한 맛을 담은 생막걸리가 탄생했다. 쌀 본연의 단 맛만을 담다
막걸리의 단맛을 내는 데 많이 사용되는 감미료는 ‘아스파탐’이다. 아스파탐은 설탕의 200배나 되는 단맛을 내지만 열을 가하면 쉽게 분해돼 단맛을 잃는 성질 때문에 주로 차가운 음료 제조에 사용된다.
“양조 과정에서 발효하면 알코올 도수가 15~16도 정도가 나와요. 이제 이 도수를 6~7도로 낮추려면 물을 많이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밍밍한 맛이 나죠. 도수를 낮춘 채 단맛을 내려면 감미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이 대표는 막걸리에 아스파탐을 첨가하지 않고 쌀과 누룩만으로 빚은 생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단맛을 빼고 도수를 높였다. 술공방9.0은 다른 막걸리에 비해 달지 않을 뿐이다. 은은한 바닐라 향과 향긋한 산미 그리고 묵직한 보디감 뒤에 쌀 본연의 단맛이 기다린다. 옛 막걸리처럼 걸쭉하고 진한 생막걸리여서 여운이 길다. 깊고 정직한 맛은 막걸리 병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미사여구 없이 공방에서 만드는 술이란 의미로 ‘술공방’ 그리고 알코올 도수를 알리기 위해 ‘9.0’을 붙여 ‘술공방9.0’이 됐다. 500mL의 양은 부족하지도 과하지 않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만큼 한 병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적당한 양이다. 술공방9.0은 2019년, 2020년 연속 ‘충남술 톱10’에 선정되며 그 맛과 퀄리티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이다. 한국에선 한 달 평균 1200병 정도가 판매되고 있고 1년 전부터 홍콩에도 지속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려고 한다. “양조업은 끝없는 공부의 연속이라 여전히 이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면서도 술공방9.0의 다음을 기획 중이다. 도수를 조금 낮추고 감미료 대신 청귤을 활용해 상큼함과 단맛을 내보려고 한다. 여기에 탄산까지…. 막걸리가 친숙하지 않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조만간 만날 두이술공방의 ‘청귤 스파클링 술공방’을 기대해 본다.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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