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편일률적 양적 규제, 신용 우량자 등 피해 야기
세대·소득 수준 고려한 질적 개선 선행돼야

[경제 돋보기]
가계 대출 규제의 허와 실 [차은영의 경제 돋보기]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가계 신용 규모는 약 1805조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10.3%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가계 신용 규모의 증가 폭이 4분기 연속 확대되고 있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신용 비율은 2분기 말 현재 172.4%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0.1%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가계의 채무 상환 부담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득 증가에 비해 빚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를 막기 어렵고 이것은 대출 금융회사의 리스크로 전이되게 된다. 거시적으로 금융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소비와 투자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초래한 과도한 가계 부채 규모와 가파른 증가 속도가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도록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행이 2019년 5월 이후 계속 인하하던 기준금리를 지난 8월 0.25%포인트 인상했다.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연간 총이자 비용 증가는 2조9000억원 정도가 되고 가계 단위당 이자 비용 증가는 15만원 정도가 되는데, 이는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본격화될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금리 상승에 대비하고 우려스러운 자산 시장의 거품과 금융 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수순이다.

특히 최근 가계 부채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2030세대의 가계 대출이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약 459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1% 증가한 것으로, 전체 가계 대출 증가율보다 높았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노동 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분노와 좌절감이 영혼까지 그러모아 빚으로 하는 패닉 바잉(공황 구매)으로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상환 능력 범위를 벗어난 비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지속할 수는 없다.

금융 당국은 지난 4월 가계 대출 증가율을 올해는 5~6%, 내년에는 4%로 유지할 것이라는 가계 대출 총량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은행권에 각종 신용 대출 규제와 주택 담보 대출 제한, 제2 금융권에서 카드론에 대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기 시행 압박과 대출 규제 등 전방위적으로 대출 옥죄기에 나서고 있다.

가계 부채를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지만 천편일률적 양적 규제가 과연 실질적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가계 부채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 세대별로 부채의 성격이 다르고 소득 수준에 따라 채무의 질도 동일하지 않다. 양적 규제보다 질적 개선이 선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대출해 주지 말라는 규제는 적절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만약 가계 대출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택 담보 대출을 규제함으로써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려는 의도라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단기간에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양적 규제를 통한 가격 통제는 역사적으로 예외 없이 가격 폭등을 불러오게 된다.

신용 우량자가 피해를 보고 주택 실수요자, 전세 대출 실수요자, 생계형 대출자 등은 심각한 신용 경색을 경험하면서 악성 대출 시장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가계 부채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담보된 세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양적 규제라는 거칠고 단순한 정책보다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