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우주 산업 컨트롤 타워 역할 ‘우주청’ 설립 절실”
[스페셜 리포트] 우주 개발 대항해 시대 100%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첫 우주 로켓 ‘누리호’를 계기로 우주 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주 산업의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한국은 후발 주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리호’는 한국이 뉴 스페이스 시대로 나아가는 길을 터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한국 항공 우주 산업계의 원로인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를 10월 15일 만나 ‘한국 우주 산업의 발전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서울대 항공우주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대학원 항공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우주 개발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의 원장을 맡아 한국의 첫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현재 우주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룩셈부르크 정부의 우주자문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한국 항공 우주업계가 ‘누리호’의 우주 발사를 두고 들뜬 와중에 김 교수는 오히려 “누리호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며 한국 우주 산업 발전을 위한 차분하고 냉정한 조언을 쏟아냈다. 그는 “5차 산업혁명의 시작은 ‘우주’에서 올 것이 분명하다”며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더욱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민간 우주 산업을 키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나로호의 성공의 주역으로 이번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2010년 나로호 발사가 실패한 뒤 2011년부터 항우연 원장을 맡았고 2013년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성공은 했지만 당시에도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도 항우연의 원장으로 한국 우주 산업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개선한 뒤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번 누리호를 지켜보는 마음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이번 누리호는 한국의 향후 우주 산업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누리호 발사를 앞두고 들뜨기보다는 냉정하게 한국의 우주 기술 수준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따져보는 게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누리호 발사에 ‘아쉬운 점’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이번 누리호는 100% 한국의 기술로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한국 기술로 로켓을 발사할 기술을 갖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향후 한국이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100% 한국의 기술로 만들었다’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글로벌 우주 시장은 더 작고 가벼운 로켓을 만드는 것을 넘어 로켓 재사용 등의 최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어요. 이에 비하면 한국의 로켓 기술은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이들과 경쟁할 만한 ‘최신 기술’을 갖추지 못하면 앞으로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한국의 로켓 기술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에 비하면 누리호는 10년 전 나로호를 떠올리게 한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죠. 결국 우리 또한 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 팰컨9의 기술력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을 목표로하는 우주 발사체 기술을 개발하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이미 한국은 조선·휴대전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국가입니다. 우주와 관련한 기술이라고 우리가 최고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죠. 한국에도 스페이스X 만큼이나 야심찬 목표를 바탕으로 이를 실현할 만큼의 높은 지식과 기술력을 지닌 우주 전문가들이 많아요. 다만 이와 같은 우수한 젊은 인력들이 자신들의 야망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누리호의 발사를 주도하고 있는 항우연 또한 ‘세대교체’가 절실하겠죠.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입니다. 항우연이 주도하는 한국 우주 로켓 개발은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지나치게 큽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안전에 더욱 더 많은 신경을 쓰다보니 우주 발사체의 덩치가 커진 측면이 있죠. 무게 대비 추진력은 낮고요.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해 국민의 세금으로 로켓을 개발하는 전 세계 모든 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항우연 또한 NASA가 아닌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 우주 산업 발전을 위해 ‘실패에 유연한 환경’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가 단순히 누리호의 성공이냐 실패에 따라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우주 산업의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나로호를 업그레이드한 누리호’로는 부족합니다. 10년 전과 똑같은 기술을 우리 손으로 만드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새로운 로켓 개발을 목표로 우주 로켓을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우주 로켓 개발에서도 ‘퀀텀 점프’가 필요한 겁니다. 실패하더라도 더 젊은 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서 더욱 야심찬 로켓 기술을 목표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항우연을 비롯해 한국 우주 산업계의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의 우주 산업을 ‘제5차 산업혁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주 산업의 가능성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향후 5차 산업혁명이 온다면 이는 ‘우주 산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 시작점이 되는 것이 바로 우주 발사체 기술이죠. 재사용 로켓 등을 발판으로 보다 저렴한 가격에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된다면 인공위성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시장이 펼쳐질 겁니다. 우주 태양광, 우주 인터넷, 우주 공장 등 각각의 분야만 하더라도 수조 달러(수천조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겁니다. 지금 인류에게 우주와 같은 시장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이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5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번 누리호 개발에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참여한 만큼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될까요.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을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누리호 개발에 들어간 비용은 대략 2조원 정도입니다. 그중 대략 1조3000억~1조5000억원 정도가 항우연과 함께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민간 기업들에 지원됐다고 합시다. 지난 10년간 300여 개의 기업들이 참여했다고 한다면 우주 로켓 개발에 참여한 수백여 곳의 민간 기업들에게 이 지원금이 나눠졌을 겁니다. 우주 관련 기술을 실제로 개발하고 제작해야 할 기업들로서는 1년을 버티기에도 힘들 만큼 적은 금액입니다. 민간 기업들이 전문 인력과 장비를 유지하기에는 지금 정도의 지원금으로는 버거울 수밖에 없죠. 때문에 실제로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했다 포기한 기업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우주 발사체 개발의 주기를 더욱 짧게 해야 실제 기업들에 지원금이 흘러 들어가고 한국 우주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우주 산업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향후 우주 산업 개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우주청’이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은 항우연이 우주 로켓 개발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항우연은 독립기관이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이어서 과기부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지배 구조로는 국제적인 우주 개발 협력은 물론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전환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비교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주 산업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여러 나라들이 우주청을 중심으로 우주를 개발하고 산업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황입니다. 미국(NASA)과 유럽(ESA)을 비롯해 전 세계 70여 개 국가들이 이미 우주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향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주 개발의 중심을 잡아줄 우주청의 신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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