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인류 역사에서 생존 법칙을 찾아라

[서평]
팬데믹 시대, 지금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 강주헌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8000원


2020년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대유행은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사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시대별로 다양한 요인들이 인간 생명을 위협했고 이에 따라 기대 수명 역시 오랜 기간 35세에 머물러 있었다.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는 말할 것도 없고 천연두, 독감, 콜레라, 패혈증, 살균되지 않은 우유와 수돗물, 막 출시된 의약품과 자동차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 위기들을 하나씩 넘기며 기대 수명을 80세 넘게 연장시킨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인류의 생명을 위협했던 요인들과 싸워 온 역사를 파헤치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진보하고 수명을 늘렸는지에 주목한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를 통해 혁신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감염 도시’를 통해 전염병과 싸워 승리한 사람들을 조명했던 스티븐 존슨은 이 책에서 ‘인류 생존의 법칙’을 말한다.

반복되는 위기 속 해결책, 설득 네트워크

천연두는 대피라미드 시대부터 인류를 죽음에 몰아넣은 무서운 감염병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취약해 오랫동안 수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1796년 천연두 백신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백신 접종에 반대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로, ‘건강한 사람의 몸을 공격할 권리가 없다, 백신 접종 의무화는 국가에 의한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백신 접종은 전 세계적으로 이뤄졌고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병으로 1980년 공식 선언됐다. 우리는 더 이상 천연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을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지지하며 백신법 제정에 힘썼고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자신의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힘을 보태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천연두 백신을 만든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만이 영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 지지하고 퍼뜨리며 반대 세력을 설득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마마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에드워드 제너가 혁신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찰스 디킨스는 혁신을 전파한 사람이다. 어떤 혁신도 아이디어 하나로만 살아남지 못한다. 이를 지지하고 퍼뜨리고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이러한 법칙은 다른 위기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했다. 살균되지 않은 우유와 수돗물, 규제 없이 만들어지던 의약품, 안전장치 하나 없이 판매되던 자동차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을 때 이를 멈추게 한 것은 의사나 화학자뿐만 아니라 통계학자, 목사, 언론인, 백화점 사장, 포목상, 비행기 조종사, 법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네트워크였다. 이 책은 우리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해준 혁신들과 그 혁신을 성공시킨 네트워크의 역사를 보여준다.

우리는 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한 ‘방패’를 얻었다. 천연두를 통해 백신을, 콜레라를 통해 데이터학과 전염병학을, 우유를 통해 저온 살균법을, 신약과 자동차를 통해 약물 규제와 안전 규제를 발전시켰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 방패들에 힘입어 기대 수명을 80세 넘게 연장시켰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은 과거 팬데믹보다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명, 당시 인구(18억 명)의 5% 이상을 죽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4배나 많은 인구(78억 명)가 살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망자 수는 1%에도 못 미친다. 결국 현재의 위기도 극복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 궤도를 잊고 있기에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협조하는 한편 코로나19 사태로 사망한 사람들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국가‧지역‧인종 간 불평등과 의료 사각지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김정희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