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 로버트 테일러, ‘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가 입은 트렌치코트, 쓸쓸함 자아내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버버리 ②
베일리가 버버리에 합류하기 이전 버버리는 위기를 맞았다. 영국 왕실로부터 6번에 걸쳐 수출상을 수상하고 왕실의 지정 상인이었던 버버리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존의 변화없는 스타일, 비슷한 체크무늬 패턴의 전개, 트렌치코트·재킷 등의 단조로운 상품군은 나이든 사람들이 입는 중후한 이미지의 옷으로 굳어지면서 젊은층들이 외면했다.
또한 브랜드의 대중화 전략으로 소규모 상점 판매를 허용한 결과 명품 이미지 하락과 모조품 양산 등으로 인해 영국의 유명 백화점인 셀프리지(Selfridiges)·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해롯(Harrods)에서도 버버리를 취급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버버리=체크무늬, 트렌치코트’ 등식 과감히 깨

그녀는 버버리의 올드한 이미지를 버리고 모던하면서도 럭셔리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컬렉션 라인인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프로섬은 라틴어로 ‘전진’이라는 의미)을 론칭했다. 또 ‘버버리스(Burberrys)’라는 브랜드 이름을 대문자로 바꾸고 S를 뺀 ‘버버리(BURBERRY)’로 변경했다.
2001년에는 구찌(Gucci)와 도나 카렌(Donna Karen)의 수석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버버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베일리가 만든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이전의 클래식한 코트가 아니었다. 베일리를 영입하기 전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체크무늬 위주의 베이지·브라운·네이비·레드·블랙 위주의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상품이 주류였다. 하지만 베일리는 고유의 버버리 색상을 사용하면서 아이보리·옐로·골드·핑크·블루·그린 등 다양한 색상을 추가로 사용했고 젊은 연령층을 타깃으로 캐주얼한 스타일링과 동시에 트렌드를 접목했다.
그는 기본 버버리 체크에 핑크색을 사용한 캔디 체크무늬를 선보였고 하늘거리고 여성스러운 시폰 드레스에 굵은 체크무늬를 스타일링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혹은 전통과 아방가르드가 결합된 영국 패션의 이중 구조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와 함께 영국적 펑크 문화에 모던함을 추가해 버버리는 다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버버리의 전통을 잘 살리면서도 잘게 자른 가죽, 금속 장식, 다양한 색상의 트렌치코트와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등 이전의 버버리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 실험적이면서 도전적이고 젊은 버버리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시각적 이미지도 강화했으며 시즌별 트렌드에 맞게 현대화 전략을 펼쳐 클래식을 재해석해 크게 성공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베일리는 2009년 버버리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됐고 2014년 4월부터 버버리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트렌치코트, 할리우드 주인공 통해 대중화

1962년 개봉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오드리 헵번이 비 오는 날 고양이를 찾는 장면에서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와 또 한 번 크게 유행했다. 1980년 개봉된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메릴 스트립, 1986년 개봉된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킴 베이싱어는 스타일리시한 트렌치코트를 보여줬다.
할리우드 배우들에 의해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트렌치코트는 1950년대 무렵부터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버버리뿐만 아니라 영국 브랜드 런던포그, 아쿠아스큐텀 등의 클래식 브랜드에서 실용적인 스타일의 트렌치코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벨트로 강조한 허리와 그 아래로 넓게 퍼지는 실루엣으로 변모한 트렌치코트는 1960년대의 미니 열풍을 만나 짧은 길이의 경쾌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1970~1980년대에는 일하는 직장 여성들의 통근용 외투로 도회적인 스타일의 박스형이 주류를 이뤘다. 1990년대 이후부터 여성복에서 트렌치코트는 디테일·소재·컬러에서 다양한 변화를 가져 왔다.
버버리의 창립자인 토마스 버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민주주의와 스카치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
자료참조=burberry.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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