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주에만 우월한 권리 부여하는 약정 무효
대법 “수익금 반환하라”

[법알못 판례 읽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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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보통 자금 조달을 위해 새로운 주식(신주)을 발행한다. 신주를 발행한 기업은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우대 약정’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당장 부족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존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보다 더 많은 권리를 약속하는 것이다.

우대 약정에는 일반적으로 투자자에게 주주로서의 이익뿐만 아니라 그 외의 수익금 지급을 보장하거나 투자자에게 회사의 임원 임명·추천권을 부여하는 경우, 투자자에게 회사 중요 정책 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부여하는 방법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우대 약정이 ‘주주의 평등’을 해친다는 데 있다.

주주 평등의 원칙은 주주가 회사와의 법률 관계에서 주주가 가진 주식의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 평등의 원칙이 우리 상법에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익 배당, 의결권, 신주인수권 등 여러 상법 조항에서 도출되는 결론이다.

특히 최근 법원에서 우대 약정에 관한 판결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유상 증자에 참여한 주주 가운데 일부가 투자 계약상 ‘수익금 보장’ 약정을 했다면 이를 무효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아 주목받았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박상옥)는 2020년 8월 13일 회사가 유상 증자에 참여한 주주들을 상대로 낸 주식 대금 반환 등 청구 소송에서 “회사와 신주 주주 사이에 체결한 투자 계약상 수익금 보장 약정은 주주 평등 원칙에 위반한다”며 “피고(신주 주주)가 받은 수익금을 회사에 반환하라”고 판단했다.

신주 인수인에게 대금 전액 보전…하급심 “약정 위법 아냐”

사건은 한 바이오 업체 A가 신주를 발행하며 시작됐다. A는 항암 면역 세포 치료제 임상 비용을 목적으로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 증자를 실시했다. 이때 조달한 금액은 약 230억원.

당시 30여 명의 투자자들은 A와 투자 계약을 체결하며 “투자금 원금은 한 달 뒤 반환하고 투자 원금에 대해 수익금을 지급한다. 또한 담보로 9억원 상당의 증권 계좌 등과 투자 원금 30%의 현금성 자산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즉 투자 수익금 이외에도 추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우대 약정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 A의 대표이사가 해당 사건의 유상 증자 대금 중 일부를 용도 외로 사용해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표이사가 교체된 A는 계약을 다시 살펴봤고 해당 조약이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받은 수익금을 다시 돌려달라는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주주의 자격을 얻기 전 투자 계약이 발생했다”며 “투자 계약이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투자 계약이 유상 증자와 독자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며 투자자의 지위에서 수익금을 지급받은 것뿐 신주 인수인의 위치에서 손실 보전 약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투자자들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하급심 재판부는 “주주 평등의 원칙은 주주의 자격에서 회사에 대해 가지는 법률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고 다른 관계에서는 이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투하 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약정을 맺었다고 해서 이와 같은 모든 계약이 주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한다고 볼 수 없다”며 “나머지 주주들에 대해 자의적인 차별 취급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 “계약 체결 형태 중요하지 않아…우대 약정 위법”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이 그 액수 그대로 신주 인수 대금으로 사용될 것이 예정돼 있었고 실제로 투자자들이 A의 주주가 된 이상 해당 계약 역시 주주 평등의 원칙 규율 적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즉 약정이 주주의 지위에서 발생하는 손실 보상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투자자로서 계약했다는 등 계약의 형태가 달라도 우대 약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계약을 무효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투자 계약은 A의 유상 증자에 참여해 원고 주주의 지위를 갖게 되는 피고들에게 신주 인수 대금을 전액 돌려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며 “투하 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인 동시에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투자 계약 체결 시점이 주주의 자격을 취득하기 전이라거나 신주 인수 계약과 별도로 투자 계약이 체결됐다는 사정이 있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재판부는 수익금을 회사에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7월 9일 해당 사건에 대해 “주주들은 A로부터 지급받은 수익금을 반환하라”며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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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연이은 ‘주주 평등 원칙 강화’…한계 기업 타격 예상

법원에서 연이어 ‘주주 평등 원칙’을 강화하는 내용의 판결이 나오고 있다. 신주 인수인이 다른 주주보다 많은 수익금을 받는 약정뿐만 아니라 회사의 중요 정책 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받는 행위 역시 계약 무효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다.

서울고법 민사16부(부장판사 차문호)는 올해 10월 28일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A가 컴퓨터 시스템 제조·판매 회사인 B를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B는 자금 사정이 악화돼 신주를 발행했고 이를 A가 인수했다. 그러면서 A는 ‘투자 자금 회수’를 담보하기 위해 B가 향후 신주를 추가 발행하는 경우 ‘사전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특약을 맺었다.

또 해당 약정을 위반하면 투자금을 조기 상환하고 투자금 상당액의 위약벌을 부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B는 A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또다시 신주를 발행했다. A는 계약을 어겼다며 “투자금 회수와 위약벌로 총 40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는 출자금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심 재판부는 “A는 이번 계약으로 회사 중요 정책 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과 이를 위반할 경우 ‘조기 상환 청구권’과 ‘위약벌 청구권’이라는 추가적인 경영·재산상 권리를 취득하고 있다”며 “다른 주주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라고 설명했다.

또한 “출자금의 배액을 초과하는 금액을 반환받을 수 있게 해 실질적으로 투하 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며 “해당 계약은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자금 조달 과정에서 경영상 의무를 직접 부담하거나 불리한 계약을 하지 않아도 돼 기업의 경영권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기존 주주와 신주 투자자 사이에 불거지던 지위 불평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투자 위험을 줄이는 수단이 사라지게 돼 기업 간 투자를 시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어려운 기업의 자금 조달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이사 선·해임권부주식’ 등과 같이 회사 경영과 관련해 일부 주주에게만 특수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주식 발행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촉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