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30위권도 위태…인적자원·속도 면에서 선진국에 뒤처져
[글로벌 현장]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 회전이 나보다 3~4배 빠른 게 느껴졌다.”“이 회사에서 나는 하위 그룹에서 중간 정도의 인간이겠구나 싶었다.”
일본에서 최고 두뇌를 자랑하던 인재들이 20여 년 전 구글에 입사할 당시 받았던 첫인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이 왜 디지털 경쟁에서 패했는지 20년 전까지만 해도 신생 기업에 불과했던 구글에 입사한 일본인의 시각을 빌려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구글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의 하나로 성장한 반면 일본의 디지털 경쟁력은 후퇴를 거듭했다.
日 디지털 경쟁력 64개국 중 28위
스위스 비즈니스스쿨 IMD가 지난 10월 발표한 ‘2021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은 64개국 가운데 28위에 그쳤다. 2013년 20위였던 순위가 30위권에 들 정도로 처졌다. 2013년 38위였던 중국은 15위로 일본을 크게 앞질렀다. 미국은 2018년 이후 부동의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한때 미국과 세계 1위를 다투던 일본의 경쟁력이 왜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IMD는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인재가 부족해 시대에 대응하는 스피드가 결여돼 있다. 그 결과 세계에서 승부할 수 있는 사업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약점이 미국 등과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IMD의 분석대로 일본은 특히 인적 자원과 관련한 항목에서 약점을 보였다. ‘디지털 및 테크놀로지 관련 기술’에서 62위였고 빅데이터 활용 능력에선 63위였다. 국제 경험과 기업의 민첩성 등 2개 항목에서는 64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기술력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일본이 디지털과 IT에서 세계 최하위권으로 처진 원인은 투자 부족 때문이다. 2019년 일본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부문의 연구·개발비는 5400억 엔(약 5조6000억원)으로 2008년보다 10% 줄었다. 반대로 미국의 ICT 연구·개발비는 11조4000억 엔으로 2008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과 일본의 ICT 연구·개발비는 20배까지 벌어졌다.
구글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이 회사에 입사해 미국 IT 기업의 진면목을 몸소 체험한 일본인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수평적인 회사 풍토, 스피드, 스케일을 일본의 패인으로 지적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가 나보다 3~4배 빨리 돌아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는 말은 2003년 구글에 입사한 도쿠세 겐타로 검색 담당 디렉터가 면접관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도쿠세 디렉터는 ‘내가 구글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책의 저자로도 일본에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수재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 들어가면 하위 그룹의 중간 정도겠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구글은 인재의 집합소였다. 도쿠세 디렉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조직과 자금력으로 승부를 보던 당시 구글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즉시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는 천재들이 우글거린 곳이었다.
2006년 후지쓰연구소에서 구글로 전직한 고토 마사노리 기술개발본부장은 스피드를 구글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는다. 고토 본부장은 구글맵의 다양한 기능을 개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2005년 구글맵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미국과 영국 지도뿐이었고 지금은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목적지 찾기나 경로 검색 기능도 없었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에 위성 사진을 표시하는 구글어스, 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스트리트뷰 등의 기능이 순식간에 추가됐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진화하면서 구글맵은 매월 1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필수 툴’이 됐다.
또 하나는 스케일의 차이였다. 2008년 소니에서 전직한 이마이즈미 료이치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기술로 세계를 더 좋게 만든다’는 단순하지만 낙관적인 구글의 사고방식에 깜짝 놀랐다. 보통의 회사라면 매출 10% 증가, 이익률 5% 개선 같은 현실적이고 달성 가능할 법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구글은 ‘10배 혁신’ 같은 큰 스케일을 권장했다.
그는 “일본에서 올해 사업 목표를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밝히면 웃음거리가 되지만 구글은 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현하기 위해 회사의 전력을 총동원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임직원 15만 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 플랫폼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는 구글. 초창기 성장할 때의 모습은 여전히 배울 게 많다고 당시 구글에 입사한 일본 수재들은 조언했다.
日 장인 정신이 트랜스포메이션 발목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는 뉴노멀 시대가 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은 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트랜스포메이션(사업 전환)에 성공하느냐다. 성장기 구글의 체질은 뉴노멀 시대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반면 일본 기업의 강점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특질들이다. 일본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부품과 소재 산업의 근간은 ‘모노즈쿠리’, 즉 장인 정신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성심성의껏 반복하면 무엇이든지 조금씩 개선할 수 있다는 자세다. 하지만 이 장인 정신이 일본 기업의 빠르고 정확한 트랜스포메이션을 어렵게 해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다.
최근 서비스업의 주류는 애자일 개발 방법론(agile software development)을 따른다. 일단 기본 기능을 출시한 뒤 다수의 작은 기능을 계속해 추가하고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플랫폼이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장인 정신의 전통이 뿌리깊은 일본 제조 업체들은 어설픈 제품을 내놓는 것을 수치스러워한다. 최고 품질의 완성품을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제공하는 것에 사활을 건다. 하루하루 트렌드가 변하는 현대의 사업 모델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도 자만할 때가 아니다. 많은 한국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를 내세우며 한국이 여전히 디지털 최강국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AI와 빅데이터가 플랫폼과 접목되는 시대다. 스마트폰 보급률이나 인터넷 속도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의 중요성은 낮아지는 추세다.
스위스 IMD의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 8위에서 올해 12위로 밀려났다. 일본보다 순위가 높았지만 11위에서 8위로 순위가 오른 대만에 역전을 허용했다. 2위 홍콩, 5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쟁 국가에 비해서도 순위가 뒤처졌다. 일본이 디지털 전쟁에서 패한 요인을 한국도 곱씹어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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