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시민들과 함께 나고 자란 ‘태화루’
[막걸리 열전]“내도 30년 넘게 태화루만 마신다꼬. 을매나 맛있는지 안 마셔보면 몰라.”
울산탁주·태화루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의 ‘태화루’ 예찬이 이어진다. 운전사뿐만 아니라 울산에서 만난 울산 시민들 모두가 하나같이 태화루에 대한 애정이 듬뿍하다. 어딜 가든 “막걸리 한 병 주세요”라면 당연한 듯 태화루가 나온다.
태화루는 주로 울산에서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선 인기를 체감하지 못하다가 울산을 방문했을 때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된다. 대체 어떻게 만들기에 이토록 사랑받는지 궁금증을 안고 울산탁주·태화루의 이범형 연구실장을 만났다. 옛날 막걸리 그대로
1969년 울산에 있는 12개의 탁주 공장을 합친 ‘울산탁주공동제조장’이 지금의 울산탁주태화루가 됐다. 처음부터 막걸리에 태화루란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처음 만들 당시엔 울산을 대표하는 ‘태화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980년대 들어 ‘태화루’로 이름을 바꿨다. 태화루로 40년, 태화강까지 합하면 반세기가 넘게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태화루 병을 보면 누군가는 예스럽다고 하고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게 바로 태화루입니다. 옛날에 먹던 맛 그대로를 고집스럽게 지켜 온 우리의 방식을 느낄 수 있죠.”
가격 또한 막걸리는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친근한 술이라는 신념을 그대로 반영했다. 750mL 한 병에 1600~1700원으로,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태화루를 마실 수 있다. 태화루의 울산 지역 내 시장점유율이 약 90%라고 하니 시민들도 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하다. 맛은 그대로 제조는 최첨단으로
태화루의 맛은 예전 그대로이지만 설비는 최첨단이다. 하루 평균 2만~3만 병이 출고되는 태화루의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작업장에서 오늘 술이 좋다는 말이 들리면 바로 한마디 합니다. 오늘 술이 좋아서는 안돼요. 우리가 만드는 태화루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똑같이 좋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마셔도 같은 맛이어야 해요.”
대규모 양조장만의 기술이 태화루에 담겼다. 지하 암반수를 7단계에 거쳐 정수해 모든 단계에 사용하고 대용량 증자기로 2톤에 달하는 쌀을 한 번에 투입해 고두밥을 제조한다. 또한 첨단 시스템으로 효모 양부터 온도와 습도 등의 발효 조건을 제어하고 포장까지 오차 없이 일정하게 위생적으로 태화루를 제조한다. 한 번 더 깎은 쌀알
태화루의 단순하지만 깔끔한 맛의 비결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도정’ 과정에 있다. 태화루는 농협에서 구매한 울산·울주 지역 햅쌀을 한 번 더 도정해 쌀알의 단백질과 지방을 최소화한다.
“청주를 떠올리면 쉬워요. 술이 아주 맑고 맛도 깔끔하죠. 일본 청주 등급을 매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도정률’이에요. 청주에 사용하는 쌀알을 보면 동글동글해요. 쌀알을 40% 가까이 깎아 내기 때문이죠. 전분을 둘러싼 단백질을 깎아 내는 게 중요합니다. 효소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되면 아미노산이 생성돼 여러 가지 복잡한 맛을 내죠. 단백질 없이 전분만 분해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알코올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밥이 아닌 술을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선 이미 10% 정도 깎은 햅쌀일지라도 한 번 더 깎아 태화루의 맛을 살린다. 효모 강국을 꿈꾸며
“탄산이 없는 탁주를 유통 기한 30일로 만드는 회사는 한 군데 있지만 자연스럽게 탄산을 살리면서 유통 기한이 긴 탁주를 만드는 것은 어떤 탁주 회사도 아직은 할 수 없어요.” 탄산 없는 태화루를 만들고 싶지 않아 다음 제품 연구에 힘을 쏟는다.
이범형 연구실장이 택한 것은 ‘효모’다. “예를 들어 붉은색을 내기 위해 우리는 홍국 등을 넣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하얀 쌀에 특정 효모를 넣으면 술이 붉게 만들어져요. 아예 주조협회에서 그런 효모를 개발할 수 있게 연구비도 지원하고 관리합니다. 우리도 계속 새로운 것만 찾아내려고 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효모를 연구하는 게 중요해요.”
실제로 연구실에는 복숭아·녹차·미나리 등을 활용한 효모 배양이 한창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효모를 개발해 활용할 수 있다면 울산탁주·태화루뿐만 아니라 한국 주조업계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이 연구실장은 말한다. 태화루의 전통을 지키며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 울산탁주 태화루가 나아가고 있는 길이다.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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