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반도체 자급률15.9%에 불과…대학·기업까지 반도체 굴기는 ‘진행 중’

[글로벌 현장]
중국 반도체 굴기의 허와 실 [글로벌 현장]
중국이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따라잡을 반도체 기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거액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반도체의 자국 생산 비율(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자급률은 여전히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기업 발표와 중국 관영 매체 보도, 지방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지난 3년간 최소 6개의 새로운 대규모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들에 투입된 금액은 최소 23억 달러(약 2조7600억원)로,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단 한 개의 반도체조차 만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 업체인 우한훙신반도체(HSMC)와 취안신집적회로(QXIC)다. 삼성전자와 TSMC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14나노미터(nm, 1nm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를 제조하겠다며 설립된 회사들이다.

2017년 우한에 설립된 HSMC는 총 투자액 목표로 1280억 위안(약 22조원)을 제시했고 중앙 정부와 우한시 등에서 153억 위안을 받아냈다. TSMC의 미세 공정 개발을 주도했던 장상이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반도체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QXIC도 막대한 연봉을 내걸고 대만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허와 실 [글로벌 현장]

사기극 속출에 핵심 기업들도 도산
두 회사는 막대한 투자금을 날리고 지금까지 단 하나의 칩도 상업용으로 생산하지 못했다. HSMC는 2021년 6월 폐업했고 QXIC는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 밖에 청두거신·화이안더화이(HIDM)·난징더커마 등에도 수억 달러 이상의 정책 자금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설립자들이 이렇다 할 기술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애초부터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금을 노린 사기극이라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한때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불렸던 칭화유니그룹이 작년 파산 구조 조정에 들어간 주요 원인도 반도체 제조 부문의 무리한 투자가 꼽힌다. 칭화유니는 반도체 설계 중심 기업이었지만 2016년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창장메모리를 설립했다. 자본금 386억 위안(약 7조원) 중 칭화유니가 51%, 나머지는 중국 중앙·지방정부가 투입했다.

창장메모리는 반도체 중에서도 중국이 특히 취약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부분을 수입 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지 공장에 의존하고 있다. 창장메모리는 2019년 중국 최초로 64단 3차원(3D) 낸드플래시 생산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 128단 3D 낸드를 개발했고 올해부터 생산에 착수했다.

창장메모리는 2020년 말 월 30만 개의 칩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었지만 모기업의 자금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이 겹치면서 사실상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업계에선 창장메모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앞으로 10년간 5000억 위안(약 9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부펀드 컨소시엄이 칭화유니그룹 인수자로 확정되면서 창장메모리가 정상화될 것인지도 관심이다. 파산 구조 조정을 진행 중인 베이징 중급인민법원은 베이징즈루(北京智路)자산관리와 베이징젠광(北京建廣)자산관리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을 칭화유니그룹 전략 투자자 후보로 선정해 채권단 회의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도록 결정했다.

채권단 회의에서 통과된 구조 조정안에 따르면 베이징즈루 컨소시엄은 늦어도 2022년 3월 말까지 600억 위안 투자를 집행해 이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다.

반도체 자급률 70% 내걸었지만

중국은 세계 반도체 판매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지만 반도체 공급량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걸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4년 1390억 위안, 2019년 2040억 위안 규모의 국가반도체산업투자펀드(빅펀드)를 조성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시장 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로 전년 대비 0.3%포인트 올라가는 데 그쳤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외국 기업의 현지 공장 생산분을 뺀 중국 기업의 생산 비율은 6%대에 그친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허와 실 [글로벌 현장]
중국 정부의 빅펀드 지원금을 챙기기 위해 요식업과 시멘트 제조사를 포함한 수만 개의 기업이 반도체 관련 회사인 것처럼 등록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1기 빅펀드는 투자 대상을 너무 많이 선정해 성공 사례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중국은 2기 빅펀드를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중신궈지(SMIC)에 절반 가까이 몰아주는 한편 장비와 소재 등 특히 취약한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는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베이징대가 반도체대학원을 설립하는 등 중국 명문 대학들이 잇따라 반도체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다.

베이징대는 2021년 7월 반도체 부문 인재 양성을 위해 반도체대학원을 설립했다. 베이징대 반도체대학원은 반도체 설계·제조 분야 기술자를 양성하고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같은 달 항저우과학기술대는 우한시에 반도체 관련 단과대를 개설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시의 신흥 명문 대학인 선전기술대도 반도체 관련 단과대학을 신설했다. 선전기술대의 반도체대학은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중신궈지와의 협업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앞서 4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교인 칭화대가 반도체 단과대학을 설립했다.

중국에서 반도체 분야에 대한 인재 수요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대우도 좋아지고 있다. 반도체 시장 정보 업체 샤먼마이크로플러스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 지역에서 근무하는 반도체 분야 종사자의 2020년 평균 연봉은 32만 위안(약 5640만원)으로 중국의 1인당 연평균 소득 3만2189위안의 10배에 달한다.

중국의 반도체 분야 종사자들의 2020년 평균 연봉은 1년 전보다 8% 올랐고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보산업발전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분야 종사자는 2019년 51만2000명에서 2022년 74만50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빅테크 기업들도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세제 지원과 보조금 지급, 합작 투자 등의 형태로 반도체 분야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는 2021년 12월 독자 설계한 3종류의 칩을 공개했다. 이미지·동영상·자연어 처리 등에 특화한 인공지능(AI) 칩인 ‘즈샤오’, 영상 해석용 칩인 ‘창하이’, 네트워크 통제용 칩인 ‘수안링’ 등 3종이다.

텐센트가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동시에 사업 영역을 기존의 게임, 모바일 결제, 소셜 미디어 분야에서 반도체 분야로까지 확대하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의 다른 빅테크인 알리바바와 바이두는 이미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다. 중국 최대 검색 엔진이자 AI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바이두는 2018년 첫 독자 개발 AI 반도체인 ‘쿤룬’의 양산에 들어갔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도 2018년 ‘핑터우거’라는 반도체 부문을 설립한 뒤 이듬해 자체 개발한 AI 칩을 선보인 바 있다. 알리바바는 최근 5nm 공정의 자체 칩을 공개하기도 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