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완화와 금융 시장의 내성 확인 전까지는 공격보다 수비가 우선

[머니 인사이트]
사진=코스피가 43.23포인트(1.57%) 내린 2704.48로 마감한 2월 14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사진=코스피가 43.23포인트(1.57%) 내린 2704.48로 마감한 2월 14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사람이 적금과 예금을 깨고 간접 투자 자금을 회수해 주식 시장에 투자했다. 하지만 물밀 듯이 증시에 유입됐던 자금 흐름이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주식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20조7000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0년 5월 이후 20개월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특히 개인 자금의 유입 강도가 눈에 띄게 저하된 모습이다. 지난해 초 32조원에 달했던 개인의 거래 대금은 지난 1월 14조원에 그쳐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주식 시장에 유입된 대규모 개인 자금의 규모가 사실상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빚투’ 열풍 서서히 식어 가
이후 상황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증시와 연계된 주변 자금의 흐름이 활발하지 못하다. 주식 시장의 대기성 자금으로 볼 수 있는 고객 예탁금 규모는 현재 70조원 수준으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 청약으로 며칠 새 20조원이 감소했다가 증가하는 등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이전 30조원 수준이던 고객 예탁금 규모가 주식 투자 열풍이 본격화되면서 2020~2021년 상반기 중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지만 이후 비우호적 시장 환경과 함께 정체 양상을 이어 가고 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빚투’ 열풍 역시 서서히 식어 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산한 신용 잔액은 최근 22조원이다. 지난해 9월 26조원 수준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무리하게 빚을 내기가 부담스러운 투자 환경으로 바뀐 데다 주요 증권사들이 이미 제공할 수 있는 신용 공여 한도를 상당 부분 소진함에 따라 빚투 자체가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출 규제로 인해 은행권에서 자금을 차입해 투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 여건 악화와 자금 흐름의 정체는 유동성 환경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기 여건의 정상화와 물가 상승 압력이 주요국의 통화 정책 변화를 촉발했고 국내외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산 배분의 커다란 원칙이 변화하고 있다. 그간 팽창된 유동성을 기반으로 위험 자산(주식·부동산)으로 쏠림이 나타난 글로벌 유동성이 상품·예금 등으로 분화되면서 가파르게 상승한 자산 가격에 대한 가격 부담(밸류에이션) 이슈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높아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에 대한 매력도를 크게 약화시켜 금융 자산 전반의 가격 조정이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예상 대비 높게 나타나고 있는 물가 상승 부담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보다 빠른 대응을 재촉하고 있고 금융 시장 참가자들이 체감하는 유동성 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통화량 지표를 보면 광의의 유동성을 의미하는 금융회사 유동성(Lf)은 명목적으로 10%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차감한 실질 유동성은 6%대로 지난해 4분기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이러한 유동성 여건의 변화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식 시장은 빠르게 가격에 선반영하고 있다.
유동성 억제 환경 이어질 전망
최근 은행권의 대출 금리 수준을 보면 시장 금리보다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은행의 대출 금리를 구성 요소별로 분해해 보면 대출의 기준이 되는 준거 금리(기준금리)에 위험 프리미엄을 감안해 가산 금리를 합산하고 고객의 거래 실적 등에 따라 우대 금리를 차감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준거 금리는 시장 금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은행이 실질적으로 가져가는 마진이 가산 금리라고 볼 수 있다. 특징적인 부분은 최근 은행권의 가산 금리 수준이 금융 위기 이후 최고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 주택 담보 대출은 이미 가산 금리가 2%포인트를 웃돌고 있고 신용 대출 역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가계 대출에 대해 강한 총량 규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이후 가계 부채 통제 기조가 강화됨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 공급을 줄이는 대신 가산 금리의 폭을 최대한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처럼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의 기준금리가 상승하는 데다 가산 금리 수준까지 높아짐에 따라 은행의 예대 마진을 의미하는 순이자 마진(NIM)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특징적 부분은 이러한 현상이 은행의 전체 대출이 아닌 가계 대출 부문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은행이 취급하는 기업 대출의 가산 금리 수준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변동이 없었고 지난해 하반기 이후로는 가계 대출 금리가 기업 대출 금리를 지속 웃돌고 있다. 이는 가계 대출 부문에서 은행들이 높은 마진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제 주체들 가운데 개인이 자금을 차입하는 비용이 기업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가장 안전한 대출로 여겨지는 가계의 주택 담보 대출 금리가 경기 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 대출 금리에 비해 높게 형성되는 등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특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 당국과 정치권에서 과도한 대출 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 조치를 마련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금융 당국과 은행권의 간담회를 통해 적절하고 투명한 대출 금리 산정과 금리 인하 요구권(연봉 인상 등 개인의 재무 여건 개선 시 은행에 대출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활성화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 지난 1월 정치권에서 은행의 예대 금리 차를 공시하고 과도한 예대 금리 확대를 감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조치가 포함된 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대표 발의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만일 이러한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금융 소비자들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은행권은 대출을 강제로 억제해야 함에도 가산 금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금리 상승 환경과 가계 부채 통제 기조에서는 개인이 자금을 빌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차입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최근 주식 시장 내 개인의 신규 자금 유입이 억제되고 있는 이유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올해 1월 들어 개인의 증시 거래 비율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70%를 밑돌고 있고 개인 투자자의 활동성을 대변하는 코스닥 시장의 시가 총액 회전율 역시 550% 수준을 기록해 지난해 평균 710%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유동성 여건의 변화가 증시를 둘러싼 자금 흐름에 미치는 파급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문제는 이러한 유동성 억제 환경이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급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고 글로벌 경기 여건이 정상화됨에 따라 미국을 필두로 한 주요국의 통화 정책 변화가 순차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최소 1~2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브라질을 비롯한 일부 이머징 국가들은 물가와 환율 방어를 위해 이미 공격적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향후 관건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통화 정책 전환이 진행되느냐다. 시장 참가자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연속적으로 금리 인상이 진행되거나 공격적인 형태로 과잉 유동성 흡수 조치가 병행되면(QT 등) 시장 변동성이 재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부채로 인한 크레디트 위험에 대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물가 상승 압력을 제어하기 위한 금리 상승 위험은 이제 시작이다. 시장은 변화했고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은 유동성 회수다. 우려의 선반영 논리로 위험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유동성 환경 변화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금융 시장의 내성이 확인되기까지는 공격보다 수비가 우선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