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특수' 사라진 게임업계…P2E, NFT 등 혁신으로 돌파구, 수익성 증명이 관건

[스페셜 리포트]
 엔씨소프트의 '리니지W'.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의 '리니지W'. 사진=엔씨소프트
게임업계가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의 게임사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잇달아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주가 폭락 등 후폭풍이 거세다. 실적 고공 행진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K-게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대표적 수혜주인 데다 메타버스와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지며 큰 주목을 받아 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장성을 제대로 입증해 내지 못한 것이다. K-게임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내고 다시 날 수 있을까.
K-게임, 줄줄이 ‘어닝쇼크’에 등 돌린 투자자들
한국의 주요 게임 상장사들의 2021년 실적 발표가 마무리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 등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역대급 실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지난해와 달리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영업이익과 순이익의 하락이 도드라진다.

한국 게임업계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엔씨소프트는 2월 15일 2021년 4분기 및 연간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3088억원, 3752억원으로, 매출(전년 대비 -4%)과 영업이익(-55%)이 모두 하락했다. 충격을 준 것은 영업이익의 하락 폭이다. 전년 대비 50% 이상 급감하며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당기순이익 또한 3957억원으로 33% 줄었다.
K-게임 ‘고난의 시기’, 다시 날 수 있을까
다른 게임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중 2월 8일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넥슨은 2021년 매출 2745억 엔(약 2조8530억원), 영업이익 915억 엔(약 9516억원)을 기록하며 마찬가지로 매출(-6%)과 영업이익(-18%)이 모두 감소했다. 2월 9일 실적을 발표한 넷마블은 지난해 매출 2조5059억원을 기록하며 3N 3사 중 유일하게 매출이 전년 대비 0.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545억원으로 43.2% 줄어들었다.

한국 게임사들의 실적 하락은 3N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크래프톤·펄어비스 등 한국에서 매출 상위권을 기록 중인 대부분 게임사의 2021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이다. 2월 10일 발표된 크래프톤은 연결 기준으로 매출 1조8863억원, 영업이익 6396억원, 당기순이익 519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7.3% 줄었다. ‘검은 사막’의 지식재산권(IP)으로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펄어비스는 매출 4038억원, 영업이익 43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전년 대비 -17.4%)과 영업이익 모두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컴투스는 2021년 5560억원으로 연간 최대 매출(전년 대비 9.2%)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27억원으로 전년 대비 53.8% 하락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시작과 함께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게임은 실내 활동 증가의 수혜를 본 대표적인 산업으로 거론돼 왔다. 이에 힘입어 한국의 게임사들 역시 2020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일상으로의 회복’이 빨라지면서 지난해 ‘코로나19 특수’로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린 기저 효과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어닝쇼크의 후폭풍은 거세다. 실적 발표 직후인 2월 16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47만4500원으로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이후 4거래일 만인 2월 22일 46만2500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신저가를 또다시 경신했다. 지난해 2월 8일 장중 최고가였던 104만8000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주가가 56.2% 급락한 것이다. 게임 대장주인 넷마블은 실적 발표 후인 2월 11일 기준 장중 9만7200만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넷마블의 주가가 10만원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1년 7개월여 만이다. 크래프톤은 실적 발표 직후인 2월 11일 전일 대비 12.79% 하락한 25만9000원까지 주가가 내려갔다.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46만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여 만에 43.7%나 하락한 가격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회사 주식 매입’에 나서며 주가가 소폭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2월 23일 기준 주가는 여전히 28만원대로, 공모가(49만800원)의 절반 수준이다.
'혁신 부재' K-게임, 기업 가치 25조 증발
한국의 게임주들이 줄줄이 폭락하며 올해 들어 사라진 한국 게임사들의 기업 가치만 25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증권 정보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의 발표에 따르면 2월 13일 기준 한국의 상장 게임사 29곳의 시가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총 83조5232억원에서 2월 11일 종가 기준 57조8462억원으로 30.75%나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K-게임 ‘고난의 시기’, 다시 날 수 있을까
지난해만 해도 대표적인 ‘성장주’로 화려한 주목을 받았던 한국 게임업계의 분위기가 1년여 만에 이토록 달라진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지목된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신작의 부재’다.

우선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게임사들의 신작 게임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넥슨은 해마다 신작 10개 안팎을 내놓으며 ‘다작왕’의 면모를 뽐내 왔지만 2021년엔 단 2개의 신작을 발표하는 데 그쳤을 정도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발표한 신작 ‘리니지W’가 4분기 매출을 견인했지만 기존 게임들과 유저층이 겹치는 자기 잠식 효과를 극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크래프톤 또한 지난해 출시한 신작 ‘배틀그라운드 : 뉴스테이트’의 흥행 실패가 뼈아팠다.

게임업계의 경쟁이 과열되며 마케팅과 인건비 등 영업비용 증가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 게임업계는 지난해부터 ‘개발자 모시기’ 경쟁에 따라 치열한 인력 쟁탈전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실제로 ‘리니지W’를 출시한 엔씨소프트의 지난해 4분기 영업비용은 6477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4046억원보다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성우 씨지에스 씨아이엠비증권 한국지사 애널리스트는 “한국의 게임사들로서는 비대면이 일상화되며 늘어난 유저들을 붙잡기 위해 이제는 본격적으로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성을 증명해야 할 때”라며 “혁신 없이 기존 게임의 흥행에만 기대는 상황에서는 더 빨리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했다.
‘돈 쓰는 게임’에서 ‘돈 버는 게임’으로 패러다임 대전환
한국 게임업계의 ‘혁신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페이투윈(P2W) 과금 모델이다. 페이투윈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혜택(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해야 이길 수 있는 구조의 게임을 말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한국 게임업계들 대부분이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페이투윈 방식을 적용하며 ‘한국형 게임’의 수익 모델로 굳건히 자리 잡와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며 게임 유저들의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P2W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한국 게임사들은 앞다퉈 페이투언(P2E : pay to earn) 과금 모델로의 대전환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P2E 모델의 핵심은 유저가 돈과 시간을 투자해 얻은 게임상의 재화를 실제로 ‘현금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더 강한 캐릭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P2W과 동일하지만 이를 게임 밖의 세계로 이동해 환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와 연결된다.

이소중 SK증권 신성장산업분석팀 애널리스트는 “P2E 게임에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도입하면 ‘블록체인 게임’이 완성되는 것”이라며 “기존의 게임 사용자들은 투자한 시간과 돈을 돌려받지 못해 게임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면 게임 내의 재화·땅·캐릭터를 현금화할 수 있는 P2E가 도입되면 이용자들의 유료 결제 대금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게임사들에도 P2E 모델은 득이 크다. 유저가 게임 내 재화를 가상화폐 등을 통해 실제 현금으로 환금할 때 플랫폼 수수료를 취할 수 있고 NFT 아이템과 캐릭터를 유저 간 매매할 때 거래 수수료 또한 매출로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 게임사들의 주가를 끌어올린 데는 ‘메타버스’, ‘P2E’와 같은 키워드들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와 같은 ‘장밋빛 기대’를 실제 수익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암호화폐 위믹스 대량 처분으로 논란에 휩싸인 게임 업체 위메이드. 사진=한국경제신문
암호화폐 위믹스 대량 처분으로 논란에 휩싸인 게임 업체 위메이드.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 P2E 게임의 선두 주자로 알려진 위메이드는 지난해 출시한 대규모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가 큰 성공을 거둬 한국 P2E 게임의 열풍을 몰고 왔다. 유저들은 ‘미르4’ 게임 내에서 캐릭터로 흑철이라는 광물을 채굴해 유틸리티 코인 드레이코로 바꾸고 이를 다시 위믹스 토큰으로 교환한 뒤 거래소에 파는 시스템이다. 다만 광물을 채굴하는 중간에 다른 유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캐릭터가 강할수록 더 많은 광물을 캘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미르4’는 동시 접속자가 140만 명으로 MMORPG 장르 역사상 최대 동시 접속자 수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미르4’ 출시 이후 위메이드의 주가 또한 고공 행진을 이어 갔다. 2021년 초만 해도 2만원대에 거래되던 위메이드의 주가는 8월 ‘미르4’ 출시 이후 9월 5만9000원대, 10월 18만원대로 한 달여 만에 주가가 3배 가까이 폭등했다.

2021년 실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2월 9일 실적 발표에서 위메이드의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606억원, 325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44.1% 늘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논란이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위믹스를 팔아 발생한 매출 2254억원을 2월 9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에 반영한 것이다. 위믹스의 매도 매출을 제외한 연간 영업이익은 1006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적 발표 이후 위메이드의 주가가 급락한 결정적인 이유다.
‘규제 리스크’ 큰 P2E, 갈 길 먼 신사업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로 한국 게임사들은 다양한 신작 라인업과 함께 P2E 도입 등 적극적인 신사업 추진을 내걸고 있다. 넥슨은 2월 15일 온라인 신작 ‘커츠펠’을 공개한 데 이어 3월 24일 주요 IP인 ‘던전앤파이터’를 활용한 ‘던파 모바일’을 출시할 예정이다. 여기에 ‘카트라이더 : 드리프트(PC·콘솔)’ 등을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게임들이 대기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2월 14일 ‘쓰론 앤 리버티(TL)’ 등 개발 중인 신규 IP 5종의 티징(미리 보기) 영상을 공개했다.

‘메타버스 생태계 공략’ 등 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넷마블은 올 3월부터 6종의 블록체인 게임을 선보일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연내 글로벌 시장에 론칭이 예정돼 있는 신작 ‘모두의 마블 : 메타월드’는 실제 지도 기반의 부지를 매입해 NFT된 부동산을 거래하는 투자 게임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W’의 블록체인 게임 버전을 하반기 제2권역(북미·유럽 등)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이 밖에 컴투스·네오위즈 등 게임사들 또한 P2E 도입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갈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이 애널리스트는 “P2E 게임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결국 ‘게임의 재미’와 ‘경제 시스템’의 운영”이라고 설명한다. 유저가 게임에서 획득한 재화를 가상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만큼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P2E 게임이 유저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게임의 재미가 보장돼야 콘텐츠 소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게임 내의 재화와 가상화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조절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경제 시스템 운영 노하우를 갖춘 게임사들의 P2E 도입 성공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P2E 도입과 관련한 규제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는 사행성 문제로 P2E 게임이 금지돼 있는 데다 규제가 풀리더라도 게임 내 사용되는 가상 자산과 관련한 규제가 새롭게 추가될 가능성 또한 낮지 않다. 상대적으로 관련 규제가 약한 동남아나 중남미 등 해외 시장 공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용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거리 두기 정상화 기조와 함께 게임의 매출 하향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특히 한국 게임사들은 P2E·메타버스 등 새로운 영역에서 수익성을 입증해 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