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용의선상에 오른다면…

[서평]
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본 적이 있나요?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리안 모리아티 지음 | 김소정 역 | 마시멜로 | 1만 6800원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실종됐다. 자식들에게 ‘잠적’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긴 했지만 곧 70세를 바라보는 69세의 노인이 휴대전화도 집에 둔 채 1주일이 넘도록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은 늘어만 가는데 실종 신고 후 뜻밖에도 경찰의 시선이 가족의 일원을 향한다면, 그것도 70대인 아버지를 용의자로 의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바로 우리 가족에게 불어닥친 상황이라면….

소설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하루가 다르게 위험천만한 사건 사고가 늘어만 가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가정사의 문제와 상황에서 시작된다. 시드니에서 오랜 기간 델라니 테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해 온 스텐과 조이 부부는 금실 좋기로 이름난 지역의 명사다. 얼마 전 테니스 아카데미를 정리하고 제2의 황금기가 될 은퇴 준비까지 모두 마친 후 한가로운 생활을 영위하던 부부는 2남 2녀의 네 자녀를 둔 누가 봐도 완벽한 가정의 표본이었다. 엄마가 잠적해 버린 밸런타인데이 그날, 부부 싸움이 있기 전까지는….

하지만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가정사 뒤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게다가 따로 살고 있는 장성한 자식들이 나이 든 부모에 대해 얼마나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까. 이때부터 경찰은 네 명의 자식들을 차례로 취조하기 시작하고 녹록하지 않은 인생의 무게와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던 네 남매는 엄마의 부재를 두고 각자의 시선으로 가족의 문제들을 재해석하기 시작한다. 각기 다른 추측과 의심, 엇갈린 진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지난 모든 흔적들은 놓칠 수 없는 위험 신호가 된다.

소설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끼리 오히려 잘 모르고 있었던 지난날의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점입가경의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50년 동안 함께 산 부부라고 해도 결코 알 수 없는 진짜 속마음, 아무리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대 간의 갈등, 같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이기에 유독 더 크게 느껴지는 미묘한 질투와 경쟁 등…. 수십 년 동안 내재돼 있었지만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 간의 오해와 상처들은 독자로 하여금 “맞아, 우리 집과 비슷해”라는 공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엄마의 실종이 불러온 치유의 나비 효과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맺어진 열매지만 다른 성격을 지닌 델라니 남매가 저마다의 민낯으로 바라본 자신들의 가족사는 제대로 성취해 내지 못한 ‘테니스’처럼 때로는 괴롭고 버거운 것이지만 또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뭉치는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엄마의 실종’이 불러온 파장, 한 가정의 위기와 충돌, 오해와 대립이 아버지에 대한 무죄와 유죄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를 지나 뜻밖에도 자식들 사이에 얽혀 있었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치유의 나비 효과 같은 반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듯이 당연히 사과는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 그것을 받아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타이틀처럼 소설은 묘한 블랙 코미디적인 색채와 함께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안긴다.

골든 글로브상을 휩쓴 인기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의 원작자이기도 한 리안 모리아티는 출간과 동시에 브라운관에서 러브콜을 받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듯하다. 이 책 역시 2021년 가을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 종합 1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는 물론 각종 언론 매체에서 꼽은 ‘최고의 책’,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등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가능한 한 서둘러 이 책을 읽어 보라. 곧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엄마 실종 사건’의 범인은 정말 아버지일까. 혹시 아버지가 아니라면 그럼 누구일까.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까. 자신이라면 이런 위기의 순간에 우리 가족을 온전히 믿어 줄 수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도 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그리운 엄마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이혜영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