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부정적→안정적’으로…글로벌 수요 증가에 윤활유 판매량↑

[마켓 인사이트]
SK루브리컨츠의 대표 엔진오일 '지크' 사진=SK루브리컨츠 제공
SK루브리컨츠의 대표 엔진오일 '지크' 사진=SK루브리컨츠 제공
SK루브리컨츠의 신용도가 회복되고 있다.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면서 기존의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털어냈다. 영업 현금 흐름이 좋아지면서 차입금도 큰 폭으로 줄었다. 단, 배당 부담과 공급 확대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신용도 개선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나온다.

고급 윤활기유 사업이 1조 이익 이끌어

올해 4월 초 신용 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은 SK루브리컨츠의 신용 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기존 ‘부정적’ 전망을 ‘안정적’으로 바꿨다. 현재 SK루브리컨츠의 신용 등급은 ‘AA’다. 신용 등급은 비교적 우량 등급에 속하지만 ‘부정적’ 등급 전망은 언제든지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정적’ 등급 전망 탓인지 기관투자가들은 SK루브리컨츠에 대한 투자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해 왔다.

신용 평가사들은 2021년 6월 일제히 SK루브리컨츠의 신용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달았다. 경기 둔화로 인한 이익 창출 규모 감소가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SK루브리컨츠는 최근 수년간 대규모 배당을 하면서 재무 안정성 역시 나빠졌다. 우수한 잉여 현금 흐름을 가지고 있지만 SK루브리컨츠는 2017~2019년 연평균 3400억원의 대규모 배당을 실시했다.

특히 2020년에는 배당금이 5000억원으로 늘었다. 당시 신용 평가사들은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과 미·중 무역 갈등 등의 요인을 봤을 때 SK루브리컨츠의 실적 불확실성이 비교적 높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정유 기업들은 지난해 가동률을 조정하는 한편 대규모의 설비 정기 보수에 나서면서 제품 공급이 빠듯해졌다. 코로나19 사태의 부정적 여파가 조금씩 줄면서 수요 개선도 이뤄지기 시작했다.

윤활기유 스프레드(제품 판매 가격과 원재료의 가격 차) 강세도 이어졌다.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고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이 반영되면서 SK루브리컨츠는 연결 기준 1조원에 근접하는 대규모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서의 지위도 탄탄해 올해도 이익 창출 능력이 우수하게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신용 평가사들은 급하게 SK루브리컨츠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회복시켰다.

SK루브리컨츠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3조8336억원이다. 윤활기유가 85%, 윤활유가 15%를 차지하고 있다.

핵심 사업인 윤활기유 부문의 판매량 중 고급 윤활기유 비율은 75% 안팎이다. 나머지는 중급 윤활기유 제품이다. 윤활기유는 고도화 설비에서 생산되는 미전환유를 원료로 생산된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고도화 설비를 갖추고 있는 정유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원가 경쟁력과 원재료 조달 안정성 측면에서 크게 앞설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루브리컨츠는 이번에 ‘부정적’ 신용 등급을 떼어 내면서 향후 공개 모집 회사채 시장 등에서 더 적은 조달 비용을 들여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이익 늘고 신용도 오르고…날개 단 SK루브리컨츠
고배당 정책·마진 축소 부담은 여전

SK루브리컨츠는 글로벌 윤활기유 시장에서 3위권 수준의 대규모 생산 능력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등에 판매 법인도 보유하고 있고 윤활기유와 윤활유에서 각각 인지도 높은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다.

신호용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고급기유일수록 수요자의 요구 조건에 맞춘 품질 조건이 요구되고 있다”며 “관성적인 구매 패턴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어 SK루브리컨츠 수요 기반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이후 위축됐던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SK루브리컨츠의 EBIT는 2018년까지 4000억원대를 유지하다가 2019년 293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20년에도 2622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다시 960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이후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확산되고 각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시행으로 수요가 회복된 덕분이다. 공급망 혼란으로 정유 기업들의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지속한 것도 SK루브리컨츠의 이익 창출 능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신호용 연구원은 “올해 이후 업계의 가동률 상승이나 증설 등의 수급상 부담 요인이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성 역시 있다”며 “글로벌 이동 수요 회복과 올해 1분기 국제 유가 상승에 연계된 재고 효과로 당분간 안정적인 이익 창출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익 창출 능력이 좋아지다 보니 차입 부담도 빠르게 줄었다. 2020년 말 연결 기준 1조원을 웃돌던 총차입금(1조1316억원)은 지난해 기준 9698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말 장·단기 리스 부채를 제외한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약 1300억원에 그친다.

지난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0.3배다. 지난해 말 별도 기준으로 SK루브리컨츠의 현금·현금성 자산, 단기 금융 상품은 4178억원이다.

하지만 SK루브리컨츠의 재무·사업 전망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신용 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기업평가가 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와 달리 현재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재무·사업 전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는 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와 동일하게 SK루브리컨츠의 장기 신용 등급을 ‘AA’로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 6월 달아 놓은 ‘부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3월 새롭게 SK루브리컨츠의 신용 등급을 평가하면서도 ‘부정적’ 등급 전망을 이어 갔다.

신용 평가사들 간 신용 등급 전망에 이견에 생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SK루브리컨츠의 재무·사업 전망에 변수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영업 현금 창출에 힘입어 순차입금이 줄기는 했지만 차입금 의존도 자체는 지난해 말 연결 기준 28.8%다. 2018년 이전까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유지했다. 미국의 이상 한파 등으로 상승세를 보이던 윤활기유 스프레드는 올 들어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가 다른 신용 평가사와 달리 SK루브리컨츠의 신용도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비경상적 요인들이 해소되면 정유 기업들의 가동률이 상승해 기존보다 마진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한 유가, 러시아 제재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수요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마진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 주주인 SK이노베이션이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회사에 대한 배당 요구를 지속하고 있는 점도 향후 신용도에 부담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사모펀드가 주요 주주(지분율 40%)에 편입된 상태여서 중기적으로 배당 부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 연구원은 “비록 대규모 투자 계획이 없더라도 고배당 정책이 예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양호한 영업 활동 현금 흐름에도 유의미한 재무 안정성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