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 파탄, SWIFT와 달러 패권 위력 실감 계기 돼
[경제 돋보기]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의 일환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주요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해외 금융회사에 분산 예치된 러시아 자산을 동결했다. 서방 세계의 조치로 러시아는 외환보유액 중 절반가량인 1600억 달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러시아는 4일 이내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 의지가 높은 가운데 러시아의 작전 실패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고강도 수출 통제 조치와 SWIFT 결제망 배제 효과가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러시아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신용 평가사인 피치와 무디스가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예고한데 이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러시아의 신용 등급을 디폴트 임박 단계를 의미하는 ‘CC’로 낮춘 지 1주일 만에 또다시 선택적 디폴트(SD) 등급으로 강등시켰다. 사실상 러시아 경제는 디폴트 수순을 밟고 있다.
SWIFT 결제망은 1973년 북미 지역과 서유럽의 240여 개 금융회사가 회원사 간 자금 이동 및 결제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든 메시지 유통망으로 출발했다. 해외로 수출입 무역 결제 금액을 송금하거나 수신할 때 전동 타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텔렉스를 사용했다. 텔렉스로 거래 내용을 단문 형식으로 전달하고 자금을 거래하는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혼선이 더러 발생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선진 금융권이 도입한 것이 SWIFT 결제망이었다.
국제 은행 간 통신을 위해 만들어진 SWIFT는 현재 세계 200여 개 국가의 중앙은행과 1만 개 이상의 금융회사와 기업이 가입한 협동조합 형태의 비영리 기관이다. 매일 4200만 건 이상의 거래 메시지가 전달되고 매년 메시지 증가율이 10%를 초과하고 있다. SWIFT는 국제 거래의 신경망 역할을 하고 있다.
SWIFT 가입 금융사는 8자리 혹은 11자리 고유 코드를 부여받아 해외 송금 시 이 코드를 사용해 SWIFT 결제망을 통해 거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한국 신한은행의 코드는 SHBKKRSEXXX, 우리은행의 코드는 HVBKKRSEXXX다. 이들 은행의 SWIFT 코드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코드 중간 이후 부분이 같다. SHBK는 신한은행을, HVBK는 우리은행을 나타내고 KR은 한국을, SE는 서울을 의미한다. 마지막 XXX는 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남겨둔 것이다.
영국 런던 소재 A 기업이 서울에 있는 S사에 송금한다면 A사는 거래 은행인 B은행을 통해 S사가 거래하는 C은행 SWIFT 코드를 적으면 은행 간에 SWIFT 통신망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 안전하게 송금을 완료하게 된다.
SWIFT 결제망은 주로 미국 달러를 결제해 페트로 달러와 함께 달러 패권의 기본 인프라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달러 패권이 무너질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극비리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움직여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달러를 석유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했고 2년 후인 1973년 유럽 국가들과 SWIFT 결제망을 만들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합병하자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때부터 러시아도 미국 주도의 SWIFT 결제망을 대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자연스레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간 거래 대금을 위안화와 루블화로 결제하기 시작했다. 최근 양국 간 무역 거래의 17% 정도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세계 1위 무역국이면서 ‘중국몽(中國夢)’ 실현 기치하에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는 중국 지도부는 미국 주도의 SWIFT 결제망에서 벗어나 위안화 국제 거래망을 구축하기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 2015년 중국은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을 가동했지만 미국의 달러 패권 수성과 위안화의 한계로 인해 달러 패권을 무너뜨릴 정도로 CIPS를 보급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기회로 위안화 통용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러시아의 경제 파탄은 오히려 SWIFT와 달러 패권의 위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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