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맥주’로 돌아간 아사히 vs ‘홈술’ 공략하는 기린맥주

[글로벌 현장]
아사히가 '슈퍼 드라이' 홍보를 위해 띄운 비행선. (사진=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아사히가 '슈퍼 드라이' 홍보를 위해 띄운 비행선. (사진=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아사히맥주는 주력 상품인 ‘슈퍼드라이’ 홍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2개월 동안 일본 도심 상공에 광고판으로 꾸민 비행선을 띄웠다. 광고판 비행선은 북쪽 홋카이도에서 남쪽 규슈까지 8002km를 날아 일본 열도를 종단했다. 슈퍼드라이를 처음 출시한 1987년 비행선을 내세웠던 홍보 전략을 재현한 것이다.

일본 주류업계는 2022년을 ‘맥주 귀환의 해’로 평가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서 음식점과 술집이 밤늦게까지 영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맥주의 해를 맞아 일본 맥주 회사들은 주력 맥주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상품을 그대로 내세워서는 까다로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사히맥주가 35년 전의 광고를 재현한 이유다.
아사히의 대표적인 맥주 '슈퍼 드라이'. (사진=한국경제신문)
아사히의 대표적인 맥주 '슈퍼 드라이'. (사진=한국경제신문)

1위 뺏긴 아사히 대공세 예고

지난 2월 아사히맥주는 슈퍼드라이를 전면 업그레이드했다. 슈퍼드라이는 1987년 출시 이후 한 번도 제조법을 바꾼 적이 없었다. 아사히는 올해 슈퍼드라이의 업그레이드를 계기로 2001년 이후 최대 규모의 광고비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사히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이유가 있다. 슈퍼드라이는 발매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가볍고 알싸한 맛으로 1970년대 일본 맥주 시장의 60%를 차지하던 기린의 ‘라거’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1990년대 초에는 시장점유율이 70%까지 오르기도 했다. 슈퍼드라이가 일본 시장을 석권하자 아사히는 ‘브랜드병’에 걸리고 말았다. 슈퍼드라이가 워낙 잘나가 회사의 전력을 몽땅 이 브랜드에 의존하는 ‘외다리 경영’을 한 것이다.

그 결과 2020년 아사히는 기린에 일본 맥주 시장 1위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일본 맥주 시장 1~2위가 바뀐 것은 2001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도 기린은 37.5%, 아사히는 35.2%로 격차가 0.4%포인트 더 벌어졌다.

일본 주류업계에서 아사히가 기린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말이 안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슈퍼드라이의 일본 시장점유율이 여전히 50%를 넘기 때문이다. 맥주 점유율 50%의 브랜드를 가진 아사히를 무너뜨린 것은 코로나19 사태였다.

일본의 맥주 시장은 맥주와 맥주의 원재료인 맥아 비율을 낮춘 발포주, 맥아를 전혀 쓰지 않고 맥주 맛을 내는 다이산, 일본 소주에 탄산수를 섞은 주하이 등으로 구성된다. 아사히는 슈퍼드라이로 맥주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장에서는 주종별로 강자가 따로 있다. 다이산 시장에서는 기린의 혼기린, 주하이에서는 산토리의 레몬사와 등이 1위 브랜드로 평가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맥주계 음료 시장에서 비율이 가장 높은 주류는 맥주였다. 맥주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한 아사히가 20년 동안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외출이 제한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상황이 변한다. 이자카야에서는 생맥주와 병맥주가 주로 팔리지만 집에서는 다이산을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다이산이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는 0.5도 정도 높으면서 가격은 1000원(2020년 10월 주세 개정 이전 기준) 정도 더 싸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0년 다이산의 점유율이 2004년 출시 이후 처음으로 원조인 맥주를 제치고 맥주계 음료 시장 1위에 올랐다. 다이산의 점유율은 46%로, 1년 새 6%포인트 늘어난 데 비해 일반 맥주 점유율은 41%로 7%포인트 줄었다.

맥주와 다이산의 구도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회사는 맥주에 ‘올인’한 아사히였다. 2020년 맥주 출하량이 6517만 상자로 22% 감소했다. 35년 전의 비행선을 다시 띄운 것도 부활을 염원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사히는 올해 슈퍼드라이의 판매 목표를 7070만 상자로 16% 늘려 잡았다.
기린 이치방 시보리. (사진=한국경제신문)
기린 이치방 시보리. (사진=한국경제신문)

글로벌화와 다각화의 갈림길

주류 회사들이 맥주 가운데서도 시대 변화에 맞춰 힘을 쏟는 분야는 집에서 마시는 ‘홈술’ 시장이다. 아사히가 슈퍼드라이를 업그레이드하자 기린맥주는 슈퍼드라이와 정면 승부를 피하는 대신 수제 맥주 전략을 들고나왔다.

회원제 정액 서비스 ‘홈탭’이 그것이다. 가정용 생맥주 서버를 임대해 주고 매월 두 차례 1리터짜리 수제 맥주를 배달한다. 월 8250엔(약 7만9218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인기가 좋아 대기 기간이 8개월에 달한다.

아사히도 작년 3월 홈술용 맥주 ‘슈퍼드라이 나마조키캔’을 내놓았다. 나마조키는 일본어로 ‘생맥주잔’을 뜻한다. ‘생맥주잔 캔’이라는 모순된 이름의 이 상품은 캔을 따면 생맥주 같은 거품이 나오고 위 뚜껑이 전부 열려 캔 자체를 생맥주잔처럼 사용한다. 작년 4월 6일 일본 전역의 편의점에 처음 내놓았는데 판매 이틀 만에 출하가 정지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옥션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가 될 정도였다.

일본의 인구가 주는 가운데 술 마시는 사람이 더 빨리 줄어들면서 주류 회사들도 다각화를 서두르고 있다. 본사 사옥과 사훈에서도 4대 맥주 회사마다 제각각인 사업 다각화 스타일이 잘 나타난다.

도쿄 다이토구의 아사히맥주 본사 사옥은 프랑스 유명 건축가 필립 스타르크의 설계로 아사히 창립 100주년인 1989년 10월 준공됐다. 황금색 건물과 옥상부의 하얀 돌출부는 생맥주잔과 맥주 거품을 형상화했다. 황금색 불꽃은 ‘맥주를 향한 아사히맥주의 뜨거운 마음’을 표현했다. 사옥 디자인에도 맥주에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는 다짐을 반영한 회사답게 아사히는 ‘오직 맥주’ 전략을 내걸었다. 2016년부터 해외 맥주 회사들을 인수해 세계 3위 맥주 회사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연간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1조2000억 엔을 들여 세계 최대 맥주 회사 안호이저부시의 호주 맥주사업부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호주 맥주사업부 인수로 아사히의 해외 사업 비율은 45%를 넘었다. 기린 역시 순익의 60%를 맥주와 청량음료에서 올리는 주류 회사다. 기린은 아사히와 달리 다각화를 택했다. 이소사키 요시노리 기린홀딩스 사장은 “올해부터 3년간 성장 투자 자금의 절반 이상인 1000억 엔을 건강과 의료 관련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건강과 의료 분야 투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소자키 사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의 생활 습관이 변했기 때문에 음주 횟수와 음주량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각화의 대표 주자는 산토리다. 산토리의 사훈은 ‘물과 함께 살아간다’다. 사훈처럼 산토리는 음료는 물론 건강 보조 식품까지 전 부문에 고르게 걸쳐 사업을 분산시키고 있다.

2008년 삿포로에 따라잡힌 이후 13년째 맥주 시장 4위인 삿포로는 부동산 전문 회사로 평가해도 될 정도다. 도쿄긴자의 오피스 빌딩, 삿포로역 주변의 상업 시설인 삿포로 팩토리 등 전국 1급지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도쿄의 대표 부촌 ‘에비스’의 지명도 삿포로의 브랜드인 에비스맥주에서 유래했다. 원래 맥주 공장이었던 부지는 에비스가든플레이스라는 쇼핑 명소로 거듭났다. 그 덕분에 삿포로는 본업과 비슷한 수준의 사업이익을 부동산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본업인 맥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아사히, 다각화로 주류 시장 축소의 충격에 대비하려는 기린과 산토리, 부동산 사업으로 맥주 사업의 부진을 만회하는 삿포로까지 ‘4사4색’인 일본 주류 회사의 대응 전략의 성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