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라스트 마일’ 수단으로 각광…위험성 논란 커지고 규제도 오락가락에 이용자 급감

[비즈니스 포커스]
안전모를 쓴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전모를 쓴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교에서 타이어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밥벌이 3년 차 김아름 씨의 출퇴근 교통수단은 ‘전동 킥보드’다. 김씨의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엔 조금 짧은 거리지만 전동 킥보드로 편리함을 챙기는 것뿐만 아니라 통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난해 방영된 MBC ‘아무튼 출근’의 한 장면에서 나온 요즘 직장인들의 출근 모습이다.

전기 자전거(e-bike)와 전동 스쿠터(e-mopeds), 전동 킥보드(e-scooter)와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기존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교통 체증과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으며 빠르게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로 위 안전’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불씨를 키운 것은 전동 킥보드다. 규제 강화 1년 만에 글로벌 업체들이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하는 등 산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전동 킥보드가 고전하는 사이 전기 자전거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단거리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도로 위 무법자 된 전동 킥보드, 안전 규제 강화

전동 킥보드가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무렵부터다. 2018년 9월 올룰로가의 ‘킥고잉’ 서비스를 시작으로, 2019년 세계 최대 전동 킥보드 업체인 ‘라임’과 싱가포르의 ‘빔’ 등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만 해도 씽씽·스윙·지쿠터 등 20여 개의 업체들이 6만여 대의 전동 킥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히 늘어난 도로 위 전동 킥보드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행정안전부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전기 자전거·전동 킥보드를 포함하는 개인형 모빌리티(PM)로 인한 교통사고는 2018년 225건에서 2021년 1735건으로 급증했다. 전동 킥보드에는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도로 위 무법자가 된 전동 킥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2020년 5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했지만 ‘만 13세 이상 전동 킥보드를 허용’ 등으로 사고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국회는 2020년 12월 도로교통법안을 재개정해 ‘만 16세 이상 면허취득자’로 연령 제한을 높이는 등 법적 규제를 다시 강화했다.
지난 2021년 5월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인도에서 마포경찰서 경찰들이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시민에게 재개정 관련 내용 홍보 및 계도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 2021년 5월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인도에서 마포경찰서 경찰들이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시민에게 재개정 관련 내용 홍보 및 계도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21년 5월부터 적용되고 있는 이 강화된 도로교통법 개정안 가운데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헬멧 의무 착용’ 문제다. 만약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면 개인에게는 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문제는 ‘라스트 마일’ 교통수단으로 활용도가 높은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용자들이 헬멧을 항시 소지하고 다니도록 하는 법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부 업체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킥보드 옆에 무료 헬멧을 비치하고 대여해 주는 등의 시도를 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치명타가 된 것은 서울시와 지자체 등의 ‘전동 킥보드 불법 주차 견인’ 조치였다. 주차 장소가 없는 독리스(dockless)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전동 킥보드는 도로 위 곳곳에 널부러져 있어 통행을 막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서울시는 2020년 5월부터 불법 주차된 전동 킥보드를 견인하고 대당 견인 비용 4만원과 보관료를 업체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우려하던 대로 이용자는 급감했다. 전동 킥보드 업체 라임은 강화된 규제가 시행되기 전인 2021년 4월 사용자는 24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2022년 5월 기준 8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규제 시행 1년 만에 이용자가 67% 급감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당 4만원의 불법 주차 견인 비용은 전동 킥보드 업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주 원인으로 지적된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한국에 들어왔던 글로벌 전동 킥보드 업체들도 잇달아 짐을 싸고 있다. 2021년 9월 독일 킥보드 업체인 ‘윈드’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데 이어 12월에는 싱가포르의 ‘뉴런모빌리티’가 사업 철수를 밝혔다. 최근에는 ‘전동 킥보드업계의 우버’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라임’이 6월 30일 한국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 ‘헬멧’이 운명 갈랐다

전동 킥보드가 주춤하는 사이 전기 자전거가 한국 마이크로 모빌리티 혁신을 이끄는 선두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공유 전기 자전거 서비스는 일레클과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바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시가 운영 중인 공공 자전거 서비스 ‘따릉이’의 인기가 특히 높다. 출퇴근 시간이면 직장인들 사이에 ‘따릉이’ 예약 전쟁이 벌어질 정도다.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대중교통카드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2021년 대중교통 이용 현황’에 따르면 따릉이 회원 수는 약 388만 명으로, 서울시민 3명 중 1명꼴이다. 연간 이용 건수는 약 3205만 건으로 전년 대비 35.2% 뛰었다. 하루 평균 이용 건수 중 약 31.5%가 출퇴근 시간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 이용 건수가 지난 4월 누적 1억 건을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 이용 건수가 지난 4월 누적 1억 건을 돌파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전동 킥보드와 달리 전기 자전거가 시민들의 단거리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전기를 이용하지만 페달을 밟아 이동하는 전기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로 분류돼 적용 규정이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전동 킥보드 업체들에 가장 큰 허들로 여겨졌던 ‘헬멧 착용’이다. 전기 자전거는 헬멧 착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범칙금이 없다. 13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도 탈 수 있고 전동 킥보드와 달리 주차장(dock)이 따로 정해져 있는 전기 자전거는 불법 주차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새로운 모빌리티의 출현은 이동 선택권(mobility choices)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의 서로 다른 결과는 규제를 통해 ‘기술 혁신’과 ‘소비자 안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이동근 한국퍼스널모빌리티협회 사무국장은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 모두 마이크로 모빌리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규제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돋보기> 해외에서도 ‘안전 문제’ 시끌시끌…규제 강화 추세에도 킥보드 인기 여전 이유는
전동 킥보드 규제 강화 1년, 한국에서 짐 싸는 글로벌 기업들
전동 킥보드는 미국을 비롯해 독일·스페인·영국 등에서는 전동 킥보드가 1인용 이동 수단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스위스 세인트 갈렌대와 전 세계 10개국 23개 도시의 마이크로 모빌리티 이용 행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계기로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대중교통보다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영국 정부는 2020년 이후 영국 내 도시들을 중심으로 전동 킥보드 운행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나 전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대중교통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최근의 연료 가격 상승 또한 개인 차량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동 킥보드 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이 적어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실제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2018년 무렵부터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전동 킥보드 보급에 앞장선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하지만 전동 킥보드와 같은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교통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퍼스트 마일(집을 나선 이후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까지의 이동 수단)’과 ‘라스트 마일(대중교통 시스템에서부터 목적지까지의 이동 수단)’의 공백을 채워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예를 들어 집을 나서 전동 킥보드로 전철역까지 이동한 뒤 전철을 타고 장거리 이동하는 식이다.

그만큼 시장의 잠재력 또한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BCG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10년 동안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를 공유하는 업체들의 연평균 성장률은 10~30%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처럼 전동 킥보드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도로 위 교통사고로 인한 안전 문제는 해외에서도 마이크로 모빌리티 관련 규제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유럽 내 전동 킥보드의 인기를 선도하고 있는 프랑스는 2019년 전동 킥보드와 관련한 규제를 마련했다. 12세 이상 전동 킥보드 운행이 허용되지만 최대 속도는 시속 20km로 제한된다. 보행자가 있는 인도에서의 운행을 금지하는 대신 자전거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다. 독일은 14세 이상의 운전자에게 전동 킥보드 운행을 허용하고 있다. 속도 제한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시속 20km로 자전거 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다.

스페인은 전동 킥보드 속도를 시속 25km까지 허용해 주는 반면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스웨덴은 2018년 전동 킥보드를 합법화했는데 15세 이하 이용자는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유럽 내 ‘전동 킥보드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벨기에는 시속 25km를 넘지 않는다면 공공 도로에서 전동 킥보드 운행이 합법화돼 있다. 연령 제한은 18세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미국은 주마다 전동 킥보드와 관련한 규제가 다르지만 시속 20km로 속도를 제한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전동 킥보드 이용률이 높은 싱가포르는 2020년부터 인도 주행을 금지하고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운전면허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지만 온라인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에 디지털 인증서를 별도로 발급하고 있다.

세부적인 사항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 주행은 대부분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서 킥보드의 인기가 높아지는 데는 기본적인 인프라의 차이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스페인·독일 등은 자전거 도로가 비교적 잘 발달돼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서울만 보더라도 2020년 기준 총 도로 길이 8323km가운데 자전거 도로는 1258km 정도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 자전거 도로의 대부분이 보행자 겸용 도로로 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자전거 도로의 76%가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다. 안전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여전히 킥보드 등으로 인한 사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차두원 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전동 킥보드를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주행 공간과 안전 문제가 지속해 지적되고 있다”며 “운전면허, 헬멧 착용 여부 중심에서 안전 주행을 위한 공간 제공 등 실질적인 안전 강화를 위해 더욱 구체적이고 정밀한 법안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