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Waste Fighter (1) -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 ‘테라사이클’
미국 뉴욕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려간 뒤 도착한 뉴저지 주 트렌턴의 테라사이클 본사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신문 등을 유통하던 창고들을 매입해 사무실로 ‘재활용’하고 있다. 건물 외부에는 강렬한 초록빛과 함께 장난스럽게 그래피티들이 칠해져 있고 ‘무한대’ 기호를 닮은 테라사이클의 로고가 눈에 띈다. 마치 ‘대학 동아리’나 ‘환경 단체’와도 같은 분위기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더욱 신기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곳 테라사이클의 사무실은 ‘컴퓨터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재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장에 달린 조명은 맥주병과 와인병을 모아 제작했고 사무실에 놓인 책상들 사이에는 오래된 레코드판으로 만든 파티션이 놓여 있다. 빈 페트병은 사무실의 벽으로 바뀌었고 테라사이클의 로고 하나도 칫솔과 병뚜껑 등 다양한 제품들이 그 모양 그대로 붙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무실을 지나 조그만 정원으로 나가니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나무다. 테라사이클의 홍보를 맡고 있는 라우렌 테일러 책임자는 “이 제품들도 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빨대나 병뚜껑, 칫솔의 솔 부분처럼 재활용하기 어려운 제품들이 재료”라고 설명한다.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마스크와 일회용 진단 키드 등 개인 보호 장비(PPE)로 인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전 세계 국가들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2050년을 목표로 ‘플라스틱 없는 사회’를 추진 중인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을 통한 ‘순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마스크와 같이 재활용하기 어려운 쓰레기들의 재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는 곳이 ‘쓰레기 없는 세상’에 도전하고 있는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기업 테라사이클이다.
한경비즈니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코로나19 쓰레기 전사들의 사례를 찾아 나섰다. 그 첫 주자로 지난 7월 26일 미국 테라사이클 본사를 방문했다. 쓰레기로 돈 버는 기업 ‘테라사이클’ 테라사이클은 톰 자키 최고경영자(CEO)가 2001년 설립했다. 프린스턴대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학생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지렁이에게 먹였다. 자키 CEO는 그 배설물을 다 먹고 남은 음료수 공병에 담아 팔기 시작했다. ‘쓰레기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겠다(Eliminating the idea of waste)’는 원대한 꿈이 시작된 순간이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테라사이클은 현재 연간 수익만 몇 천만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1년 기준 총매출액은 3350만 달러(약 439억5000만원)에 이른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21개 국가에 진출해 있다. 월마트·하기스·코카콜라·로레알과 같은 글로벌 기업 500군데 이상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모레퍼시픽·빙그레 등과 친환경 사업을 함께 추진 중이다.
테라사이클은 이들 기업들의 폐기물 처리를 도맡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모레퍼시픽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면 소비자들이 다 쓰고 난 뒤 ‘빈 병’이 남기 마련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 빈 병을 수거해 테라사이클에 전달한다. 테라사이클에서는 이 빈 병들을 세척한 뒤 새로운 제품으로 재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일반적인 ‘재활용 쓰레기 기업’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테라사이클이 짧은 기간 안에 빠르게 성장하며 글로벌 친환경 산업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따로 있다. 테라사이클은 ‘재활용하기 어려운 제품들’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상에 재활용하지 못하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는 철학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접근이다. 대표적으로 담배꽁초, 일회용 기저귀, 아이들이 신는 고무 신발 그리고 정수기 필터 등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테라사이클의 재활용 목록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 있다. 바로 마스크, 의료용 투명 안면 마스크, 비닐장갑, 일회용 진단 키드와 같은 개인용 보호 장비(PPE)들이다.
다 쓴 마스크, ‘제로 웨이스트 박스’에 버리세요
테라사이클이 추구하는 ‘순환 경제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축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쓰레기 수거’다. 순환 경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라사이클은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수거를 위해 다양한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 마스크와 일회용 비닐장갑 등 PPE를 위한 수거 박스인 ‘제로 웨이스트 박스’를 별도로 운영 중이다.
PPE를 재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소재에 따른 재활용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 외에도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지역의 재활용 업체가 기존 시스템의 방식 대로 이와 같은 제품들을 처리하기에는 재활용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PPE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테라사이클이 ‘제로 웨이스트 박스’를 시작한 이유다.
제로 웨이스트 박스는 쉽게 말해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돈을 주고 구매하는 재활용 처리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지자체들은 제로 웨이스트 박스를 활용해 직접 수거하고 처리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민들의 마스크나 장갑 등 PPE 재활용을 독려할 수 있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기업이나 지자체 혹은 개인이라도 테라사이클의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 신청을 할 수 있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제로 웨이스트 박스가 배송된다. 소비자들은 이 박스에 사용을 완료한 마스크나 일회용 진단 키드 등을 담기만 하면 된다. 박스가 가득 차고 나면 테라사이클이 그 박스를 수거해 간 뒤 재활용 처리 작업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PPE를 위한 별도의 수거 박스 외에도 커피 컵이나 칫솔 등 다양한 제품들을 재활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제로 웨이스트 박스 등을 통해 수거된 PPE 쓰레기들은 어떤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될까. 기본적으로는 테라사이클을 통해 수거되고 있는 모든 쓰레기들과 같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테라사이클은 21개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인 만큼 쓰레기 수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 각 국가마다 다른 쓰레기 관련 규정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 수거 품목이 안전하게 수집되는 것은 물론 운반되고 보관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수거된 제품들은 21개국 35개 지역에 있는 테라사이클 재질 회수 시설(MRF)에 보내진다. 이곳에서는 각 수거품들을 재질의 특성과 구성에 따라 비슷한 물질로 구별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후 다시 한번 크기와 재질, 혹은 공기 밀도·중력·자기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선별 작업을 거친다. 이렇게 선별 작업을 거친 제품들은 세척·분쇄 과정을 거쳐 작은 가루로 만들어진다. 이를 재원료로 재활용 플라스틱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재활용 플라스틱의 활용처는 무궁무진하다. 실외 가구나 책상, 플라스틱 포장재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고 물뿌리개나 저장 용기로 변신하기도 한다. 건축 자재 중 바닥 타일 등으로 쓰이는 것도 적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터의 운동장과 놀이 기구 등으로 재탄생한 사례도 있다.
‘더러운 기저귀’도 재활용하는 기술, PPE에도 그대로 적용
‘쓰레기 수거’와 함께 테라사이클 재활용 사업의 또 다른 핵심 축을 맡고 있는 곳은 바로 연구·개발(R&D)센터다. 테라사이클 본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어니 심슨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는 “테라사이클의 재활용 혁신이 시작되는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심슨 최고과학자는 2010년 테라사이클의 R&D센터에 합류했다. 고분자 과학, 고분자 물리학(플라스틱 재료 과학)을 전공한 그는 1970년대 세계 최대 화학 회사인 듀폰과 글로벌 바이오 기업인 존슨앤드존슨 등에서 근무하다 2007년 은퇴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테라사이클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심슨 최고과학자는 “모든 쓰레기를 재활용할 방법을 찾는다는 테라사이클의 비전이 과학자로서 흥미로웠다”며 “특히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재활용 기업들과 접근법이 상당히 달랐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10년간 이곳에서 다양한 제품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데오드란트 용기 내부의 스틱을 재활용해 ‘비누’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실제 실험실 내부에는 하얀 알갱이들이 가득 담긴 용기들이 선반 곳곳에 놓여 있다. 그를 따라 조금 더 중장비들이 모여 있는 또 다른 실험실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인턴 연구원이 작업에 몰두 중이다. 그는 면과 같은 소재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재활용할 수 있는 원료로 만드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의류 등에도 합성 섬유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재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면으로 된 마스크는 물론 의료용 방호복 등을 재활용할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곳에 도착한 재활용품들은 가장 먼저 소재 분석을 실시한다. 하나의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소재들이 혼합돼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소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제품들은 대부분 ‘화학 처리’ 혹은 ‘열화학 처리’를 통해 재활용할 수 있는 원료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마스크와 같은 PPE들은 어떨까. 한 번 쓰고 버려진 마스크는 세균 등이 남아 있을 위험이 있고 다른 제품들과는 다른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심슨 최고과학자의 대답은 예상외다. 그는 “다른 제품들과 똑같은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마스크 중에서 귀에 거는 고무줄 부분은 기존의 고무 신발과 같은 방식으로 재활용된다. 얼굴 부분을 덮고 있는 부분은 소재를 얇게 분리해 내기 위해 ‘열처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높은 열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처리되는 것이다.
심슨 최고과학자는 “지난 10년간 재활용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던 품목이 일회용 아기 기저귀였다”며 “아기들의 똥이나 오줌 같은 것이 묻어 있기 때문에 다른 제품들과 달리 위생적으로 이 제품들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열 화학 처리’가 중요하게 사용됐다. 바로 이 방법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늘어난 PPE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데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PPE 쓰레기가 단시간에 급증했음에도 테라사이클이 이를 수거해 재활용 원료로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테라사이클은 특히 재활용에서 ‘업사이클링’을 강조하고 있다. 그저 제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슨 최고과학자는 “같은 제품도 재활용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제품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가방을 잘라 플래카드를 만드는 재활용은 물론 그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테라사이클이 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이 바로 ‘과학’인 셈이다.
심슨 최고과학자는 “‘쓰레기 없는 세상’이라는 게 상당히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테라사이클의 접근 방법은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이라며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PPE뿐만 아니라 생활 쓰레기가 전반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테라사이클의 최첨단 재활용 기술은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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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미국)=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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