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예금·보험·RP 등에 높아지는 투자자 관심…"지금은 달러 '팔 때', 신중한 접근 필요"

[비즈니스 포커스]
'킹달러 시대’…달러 투자,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
원·달러 환율이 9월 22일 달러당 1400원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미국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20일(1412.5원)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 9월 15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턱밑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다급해진 외환 당국이 개입에 나섰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결정의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정책 강화로 인해 한동안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 연말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지속되는 ‘달러 초강세’ 현상에 예금·펀드·보험 등 달러 투자 상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환테크를 염두에 두는 투자자라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달러가 고점인지 아닌지에 따라 투자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달러 투자’를 시작해도 괜찮은 걸까.
금보다 나은 달러? 긴축 강화로 ‘강달러 지속’ 전망
미국의 긴축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주식 시장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 주식 시장이 휘청거리며 주식 투자자들 또한 타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다우지수는 최근 6개월 만에 3500대에서 3000대까지 떨어졌고 같은 시기 2800까지 근접했던 코스피지수 또한 현재 230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코인 등 가상 자산도 위기를 맞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3월 4만6000달러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두 달여 만에 1만9000달러로 폭락했다. 부동산마저 하락세가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위험 자산 투자가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의 눈길이 향하고 있는 곳은 금이나 달러와 같은 안전 자산이다. 단기간에 큰 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큰 손실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이 경제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피난처’라고 일컬어지던 금마저 맥을 못 추고 있다는 것이다. 금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 8% 정도 하락했다. 이처럼 자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달러는 연일 상승 흐름을 이어 가며 전혀 반대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올 1월 95에 머무르던 달러 인덱스는 9월 20일 기준 110.77을 기록하고 있다. 달러 인덱스는 유로화와 일본 엔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비한 미 달러의 평균 가치를 보여주는 지수다. 달러 인덱스는 100을 넘어가면 달러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본다.

달러는 2021년 기준 전 세계 외환 보유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2위인 유로의 비율은 21%다. 각국의 국제 통상을 위한 결제 수단과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달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그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외환 보유액 비율 외에 글로벌 결제 통화, 글로벌 부채, 글로벌 대부의 달러 비율이 증가 추세라는 것이다. 그만큼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인한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점점 더 많은 달러가 미국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성이 높은 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 금리도 높아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안정성을 갖춘 데다 높은 금리까지 제공하는 투자 자산이 되는 것이다. 전 세계 국가들에서 달러가 빠져나가게 되면 달러는 ‘귀한 몸’이 되고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다른 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킹달러’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월 19일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달러 초강세’ 현상”이라고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다. 한국에서 달러 투자에 관심이 특히 많은 이들은 20~40대의 ‘영 앤드 리치’들이다. 하나은행이 발표한 ‘2022 코리안 웰스 리포트(2022 Korean Wealth Report)’에 따르면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은 일반 대중에 비해 외화 예금과 보험 등 외화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20~40대 영 앤드 리치의 65%가 외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강달러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달러를 통한 외화 예금이나 펀드 상품, 달러 보험 상품 등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9월19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 9월19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달러 투자, 단기 환차익보다 ‘포트폴리오 분산’으로 접근해야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방법은 해외 주식, 예금, 채권, 달러 상장지수펀드(ETF), 달러 보험 등 다양하다. 그중 환테크 초보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품은 일명 ‘달러 통장’으로 불리는 외화 예금이다. 원화 예금과 마찬가지로 은행에서 외화 통장을 만든 뒤 달러를 넣어 두면 된다. 예금 이자에 더해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볼 수 있고 연간 금융 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부과되는 금융 소득 종합 과세도 내지 않는다. 각 은행마다 예금 상품별로 이자율이 다른 만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외화 예금에 가입하는 데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향후 달러가 더 오른다면 환차익을 기대하며 더 많은 ‘달러’를 통장에 넣어둘 수 있지만 현재 달러 가치가 꼭짓점이고 앞으로 내려갈 것으로 판단한다면 차익 실현에 나설 때이기 때문이다. 최근 달러 초강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 4대 시중은행에 예치된 달러 예금 잔액이 소폭 줄어든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9월 15일 발표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달러 예금 잔액은 519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7월 말 526억5800만 달러를 기록했던 달러 예금 잔액은 환율 급등이 시작된 지난 8월 513억4500만 달러로 소폭 줄어들었다. 달러가 고점을 찍었다는 판단에 차익 실현에 나선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던 영향이다.

하지만 최근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달러 예금 잔액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9월 달러 예금 잔액은 8월과 비교해 5억 달러 정도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성진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혹은 그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이미 원·달러 환율이 고점에 올라와 있는 만큼 지금은 달러를 ‘살 때’가 아니라 ‘팔 때’”라고 조언했다.

달러 보험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 보험사들 가운데 삼성생명·푸르덴셜생명·메트라이프생명 등이 달러 보험 상품을 판매 중이다. 특히 한국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해외 진출이 더뎌 현재 외국계 보험사들이 달러 보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달러 보험은 일반 예금보다 높은 금리로 장기적으로 달러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며 최근 들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망·질병 등 위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데다 10년 이상 보유 시 비과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달러 보험은 보험료 납입과 보험금 지급이 달러로 이뤄진다는 것 외에 기본적인 구조는 원화 보험과 동일하다. 다만 보험은 장기 상품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환차익을 기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로 환차익을 강조한 외화 보험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외화 보험 적합성 진단 제도가 도입됐다. 가입 목적과 경험, 기대 수익 등 가입자의 성향이 외화 보험과 맞지 않으면 설계사는 가입을 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달러 보험은 소액 적립식으로 달러 자산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금융 상품”이라며 “한국 가계의 자산이 대부분 원화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환율에 상관없이 원화에 집중된 자산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를 위한 목적으로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외화 예금과 달러 자산 외에 보다 공격적으로 ‘환테크’를 원하는 투자자들은 달러 선물 ETF,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달러 선물 ETF는 달러 선물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달러화 가치가 상승할수록 수익을 내는 구조다. ETF 중 가장 거래가 활발한 삼성자산운용 ‘코덱스(KODEX) 미국달러선물’ ETF는 최근 3개월 수익률이 10.46%를 기록했다. 달러 RP는 증권사가 보유한 달러 표시 채권을 투자자에게 판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약정 가격에 증권사가 다시 사들이는 상품을 말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하루 평균 달러 RP 거래 잔액은 2020년 기준 27억9387만 달러(약 3조7600억원)에서 올 상반기에는 86억98만 달러(약 11조5900억원)로 늘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달러 ETF나 달러 RP 투자 또한 지금과 같이 환율 변동성이 높은 시기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사이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을 고려하면 달러화 강세 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간 환차익을 노린 투자보다는 자산의 변동성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