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난 심화하며 ‘원전 활용’ 목소리 높아져…넷 제로 달성 위한 ‘전환 기술’ 중점

[비즈니스 포커스]
‘원전=그린 에너지?’ 세계는 지금 뜨거운 논쟁 중
한국 정부가 9월 20일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환경부는 이날 친환경 에너지 산업 등을 규정한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에는 △원자력 핵심 기술 연구·개발·실증(녹색 부문) △원전 신규 건설 및 원전 계속 운전(전환 부문) 등 원전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의 이 결정은 7월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경제 활동으로 포함한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 규정안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그린 에너지’일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가장 위험한 에너지’로 여겨져 왔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봐야 한다는 논란이 이토록 뜨겁게 불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적인 원전의 친환경 에너지 논란을 들여다봤다.
원전의 위험성, 오해일까 사실일까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는 어마어마한 ‘핵폭탄’의 위력을 목격했다. 핵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발전은 강력한 장점이 존재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한 번 건설하고 나면 에너지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한 데다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1956년 영국에서 상업적인 용도의 세계 첫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고 세계 각국의 정부 또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나섰다.

하지만 건설 비용이 어마어마한 데다 관련 기술 또한 복잡했기 때문에 몇몇 강대국을 제외하곤 원자력 발전을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분위기가 바뀌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오일 쇼크다. 유가가 급등했고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당시 에너지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원자력 발전이었다. 1970년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붐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다.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1970년 78개에서 10년 만인 1980년 284개, 1989년 420개로 급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에 있는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전경. 1979년 사고로 손상된 2호기는 영구 폐쇄됐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에 있는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전경. 1979년 사고로 손상된 2호기는 영구 폐쇄됐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시기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져 갔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높아졌다. 1980년대 이란과 같은 국가들이 원자력 발전을 빌미로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가 높아졌다. 1980년대 후반까지 급증하던 전 세계 원자력 발전소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2018년 무렵까지 원자력 발전소는 450여 개에 머물렀다.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논란이 본격화됐다. 때마침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됐다. 실제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 또한 430여 기로, 2018년과 비교해 소폭 줄어들었다. 상당수의 국가들이 원전의 신규 건설 계획을 폐기하고 나선 결과다.

일본은 사고 이후 최장 60년이 경과한 원전을 폐쇄할 것을 법률로 정했다. 독일은 사고 3개월 뒤인 2011년 6월 가동 중인 17개 원전을 완전 폐쇄하는 계획안을 최종 승인했다. 벨기에는 2025년까지, 스위스는 2034년까지 가동 중인 원전을 전부 폐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프랑스도 ‘탈원전’ 흐름에 동참했다. 2025년까지 원전 17기를 폐쇄한다는 계획과 함께 ‘에너지 전환법’을 통해 원자력 발전 비율을 당시 75%에서 2025년 50%로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원전 가동 1위 국가인 미국은 공식적으로 ‘탈원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승인된 129기 중 이미 공사가 시작된 53개를 제외한 나머지 원전 건설 계획을 취소했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전체 에너지 시장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 미국 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원전 발전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뜨거워지는 “원전=친환경 에너지” 논란
탄력을 받은 듯 보이던 ‘탈원전’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의 영향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각 국가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면서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넷 제로(실질적인 탄소 배출량 0 목표)’와 같은 친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전의 ‘친환경 에너지’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역시 EU의 그린 택소노미다. EU의 그린 택소노미는 올해 7월 가결돼 2023년부터 실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EU 내 국가들은 그린 택소노미를 두고 찬반 국가들이 논쟁을 벌이는 중이다. 반대 진영의 대표 주자는 독일이다. 현재 독일의 울라프 슐츠 총리는 “원전은 그린 에너지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 외에 룩셈부르크·덴마크·스페인 등의 나라도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그린피스와 세계자연기금(WWF)·클라이언트어스 등 환경 단체들 또한 9월 19일 공식적으로 EU 집행위에 그린 택소노미 결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며 법적 행동에 나선 상황이다.

EU의 그린 택소노미에 찬성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가동률 세계 2위 국가다. 그만큼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탈원전’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최근 에너지난이 심화되면서 ‘원전 사용의 필요성’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EU에서 탈퇴했지만 영국도 친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원전 활용’에 적극적인 상태다. 영국 정부는 2035년까지 ‘넷 제로’를 목표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클린 에너지’로의 원자력 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그 결과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미국도 넷 제로를 달성하는 데 원전을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올해 4월 폐쇄 예정인 원전을 되살리는 데 60억 달러(약 7조4000억원) 규모를 투자하기로 했다. 2050년까지 넷 제로 목표를 추진 중인 일본 또한 ‘원전 사용론’이 힘을 얻으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불붙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위험한 에너지’로 여겨졌던 원자력 발전이 하루아침에 ‘친환경 에너지’로 꼬리표를 바꿔 달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원전의 안전성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원전이 위험한 에너지’라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실상 매우 안전한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한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된 전력 1테라와트(TWh)당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석탄(약 25명)이나 오일(약 20명)과 비교해 원자력 발전은 0.3명에 불과하다. 풍력(0.4명), 태양광(0.2명)과 비슷한 수치다. 그뿐만이 아니다. 탄소 배출량 또한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 원자력 발전이 적은 편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생산된 전력 1기가와트(GWh)당 탄소 배출량을 살펴보면 원자력 발전은 약 40톤 정도로 석탄(약 800톤)이나 오일(약 750톤)과 비교해 현저히 적다. 태양광(약 50톤)이나 풍력(약 40톤)과 비슷한 수치다. 그 무엇보다 넷 제로 달성을 신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량으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 원자력 발전과 병행할 때 더욱 효율적인 넷 제로 달성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원전=그린 에너지?’ 세계는 지금 뜨거운 논쟁 중
하지만 논란에 대한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해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소형화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U의 그린 택소노미는 원자력 발전을 기후 위기와 맞서 싸우기 위한 ‘전환(transitinal)’ 기술로 분류한다. 원자력 발전소가 이 자격을 인증받기 위해선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달린다. 새로 짓는 원자력 발전소는 2045년 이전에 건설돼야 하고 2050년까지 매우 구체적인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운영 계획 등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EU의 그린 택소노미가 모든 원자력 발전 자체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그린 에너지’ 논란이 뜨거워지는 중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최근의 논란의 초점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대명제를 전제로, 원자력 발전을 어떻게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탈원전’ 논란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