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훈 CEO “부품난 때문에 생산 차질”…항공기 구매 확대로 전망은 밝아

[글로벌 현장]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보잉의 렌톤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항공기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보잉의 렌톤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항공기 제조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 업체 보잉이 최근 내놓은 3분기 재무제표에서 3개월간 순손실이 33억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추락 사고 여파에 따른 후유증이 컸던 2019년부터 4년 연속 대규모 연간 적자를 낼 게 확실시되고 있다.

보잉은 이번 실적 발표 때 “앞으로 항공기 고정 가격 판매에 유의하겠다”고 강조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충격에다 공급난까지 겪어 온 보잉이 판매 정책 실수도 인정한 것이다. 2019년 초 주당 400달러를 넘었던 주가가 현재 200달러를 한참 밑도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잉의 부활을 의심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에어버스와 함께 글로벌 여객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잉은 언제쯤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2019년부터 4년 연속 적자 예상되는 보잉…‘정상화’ 가능할까 [글로벌 현장]

‘트럼프 협상’에 밀려 대규모 손실

보잉의 3분기 실적을 뜯어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일회성 요인을 제외한 조정 기준 주당순이익(EPS)은 6.18달러 적자였다. 월가 추정치(-7센트)보다 약 9배 많았다. 보잉은 “신형 에어포스원(미 대통령 전용기) 2대와 공군 공중 급유기 등에서 대규모 손실이 추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매출은 159억6000만 달러로, 시장 전망치(177억6000만 달러)를 밑돌았다. 팬데믹 충격이 컸던 작년 동기 대비 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나마 787 드림라이너를 적극 인도한 게 매출에 기여했다. 드림라이너 인도는 제조 결함 문제로 지난 2년여간 지연됐지만 올 8월 재개됐다.

현금 흐름이 플러스로 돌아선 게 위안이 됐다. 2분기 말 기준 마이너스 5억700만 달러였지만 3분기 말 30억 달러로 전환됐다. 올해 전체로도 플러스 흐름(15억~20억 달러)을 유지하고 내년엔 30억~50억 달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게 회사 측의 기대다.

올해 737 맥스(8·9시리즈) 인도량은 375대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올 1월만 해도 500대는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적 발표 당일 주가가 8% 넘게 급락했던 배경이다. 다만 내년엔 400~475대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브 칼훈 최고경영자(CEO)는 “공급난 때문에 생산 차질이 여전하다”며 “737 맥스의 7·10시리즈 인증을 받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737 맥스는 여객기 크기에 따라 7~10의 4종류로 나뉜다. 현재 8·9만 인도하고 있다.

3분기 실적 부진의 주범으로 꼽힌 것은 미국 정부와의 계약이었다. 에어포스원과 공중 급유기 KC46, 군사 훈련기 T-7 등의 계약 손실만 28억 달러에 달했다. 3분기 전체 손실(33억 달러)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잉이 대통령 전용기 공급 계약을 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였던 2018년이었다. 계약액은 총 39억 달러였다. 문제는 납품 차질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보잉은 2대의 747-8 점보 제트기를 에어포스원으로 개조하는 작업에서만 7억6600만 달러의 손실이 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최근 “예상보다 손실액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애초 계약액이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했다.

게다가 부품 값 등이 아무리 뛰어도 추가 청구할 수 없는 고정 가격 계약이었다. 다만 보잉은 팬데믹이란 초유의 재난 사태가 발생한 만큼 최소 5억 달러 정도 추가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용하는 에어포스원 2대는 조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인 1990년 취항한 항공기다. 이미 30년 이상 지난 것이다.

에어포스원 제작이 자꾸 지연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 통신 장비 설치 등 기술적 문제까지 겹쳤다. 기밀 사항이 많은데 보안 허가를 받은 인력을 찾는 것도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초엔 제작 중인 에어포스원 날개에서 심각한 허점이 발견돼 일제 재점검이 이뤄지기도 했다.

미 대통령은 현재의 낡은 에어포스원을 2028년까지는 타야 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계약 당시의 신형기 인도 시점(2024년 말)과 시험 운항 시기를 감안하면 최소 2~3년 늦는 것이다.

잇단 항공기 추락 후 암흑의 4년

보잉 주가가 지지부진한 것은 약 4년 전의 잇단 추락 사고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2019년 3월 에티오피아에서 737 맥스 항공기가 떨어졌다. 총 346명이 사망했다. 제조 결함이 지적된 것은 한참 후다. 중국 항공 당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737 맥스의 자국 내 운항을 금지했다.

이후 운항 금지는 서서히 해제됐지만 일부 신형 항공기의 인도 재개는 미뤄지고 있다. 특히 워싱턴과 베이징 간 대립 때문에 인도 재개 승인이 당분간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737 맥스가 운항 중단됐던 2019년부터 작년까지 보잉이 소진한 현금은 28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연방항공청(FAA)이 737 맥스의 8·9시리즈 승인은 내줬지만 7·10에 대해선 인증하지 않고 있다. 7은 가장 작은 모델이지만 연료 효율성이 높고 10은 초대형이다.

특히 7·10시리즈 인증 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보잉이 연내 FAA의 기한 연장을 받지 못하면 7·10 시리즈에 추가 경보 장치를 달아야 한다. 제작 지연과 비용 상승을 뜻하는 것이어서 보잉이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칼훈 CEO는 “기한 연장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악재가 산적해 있지만 장기 전망은 밝다는 게 보잉의 설명이다. 2025~2026년 현금 흐름은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봤다. 2016년 후 처음 연 ‘투자자의 날’ 행사를 통해서다. 2026년 이후 분기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 환원 정책을 다시 내놓겠다고도 했다.

보잉은 “2026년엔 연간 생산량 800대에 매출 1000억 달러, 이익률 1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실 2018년만 해도 현금 흐름 136억 달러, 매출 1000달러를 기록했다.

항공사들의 잇단 구매 계약도 숨통을 틔워 주는 요인이다. 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항공사들이 서둘러 주문량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계 에어버스와 양분하는 글로벌 여객기 시장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점도 유리하다.

아메리칸항공·델타항공·유나이티드항공·사우스웨스트항공에 이어 미국 내 5위인 알래스카항공은 최근 52대의 737 맥스를 2026년까지 추가로 받기로 결정했다. 알래스카항공은 이미 94대를 발주한 상태였다. 그러면 알래스카항공은 총 146대의 737 맥스를 운항하게 된다.

이번 계약엔 보잉과 알래스카항공의 오랜 인연도 한몫했다. 알래스카항공 본사가 시애틀인데 보잉 창업지도 시애틀이다. 보잉은 737 맥스를 여전히 시애틀 공장에서 제조하고 있다. 알래스카항공은 “모든 운항 항공기를 737 맥스로 통일할 것”이라며 “연간 7500만~1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항공기 점검과 부품 교환, 조종사 교육 등 측면에서 크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보잉의 든든한 후원자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월가에선 보잉의 장기 턴어라운드 전략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골드만삭스의 노아 포포낙 분석가는 “여전히 펀더멘털이 탄탄하고 현금 흐름도 개선 중”이라며 “주가가 12개월 내 80% 뛸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