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 이후 금, 비트코인 가격 급등…가장 큰 변수는 미 Fed의 통화 정책 기조 변화

[비즈니스 포커스]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역습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3월 10일 파산했다. 이후 미국 뉴욕의 시그니처은행과 샌프란시스코의 퍼스트리퍼블릭뱅크 그리고 세계적 투자은행인 스위스 크레딧스위스(CS)의 위기설까지 글로벌 금융 시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금융 리스크가 불거지고 혼란에 휩싸이면서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SVB 파산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탄 국내 금 시세는 1돈(3.75g)에 30만원을 넘어섰다. 금뿐만이 아니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고 불안감이 확산될수록 비트코인 또한 자금이 쏠리고 있는 모습이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는 ‘미국 은행 위기의 확실한 승자는 비트코인’이라는 칼럼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안전 자산 선호 심리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지금 투자를 시작해도 괜찮은 것일까. 2023년 하반기 금과 비트코인의 전망과 투자 전략을 짚어 봤다.
금융 리스크 확산에 ‘날개 단’ 금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금은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가 우려될 때 매력이 더욱 높아진다. 금 투자의 가장 큰 특징인 ‘환금성’ 때문이다. 자산의 가치를 온전히 현금화할 수 있는 ‘환금성’ 덕분에 금은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통화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가치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가 가능한 투자 상품인 것이다. SVB의 파산 이후 금융 리스크 위기가 부각되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의 피난처’로 금에 유독 자금이 몰리는 이유다.

사실 금 투자자들은 2022년 기대에 못 미치는 한 해를 보냈다. 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금 시세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상승세로 전환된 뒤 올해 2월 일부 조정을 받았지만 최근 SVB 사태 이후 안전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KRX 금시장에서 1kg짜리 금 현물의 1g당 가격은 지난 3월 2일 8만3490원을 기록했는데 2014년 3월 24일 KRX 금시장이 거래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이다. 이후 소폭 하락했음에도 3월 22일 기준 8만1605원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금융 리스크 부각되며 상승세 탄 금, 비트코인…지금 투자 해도 괜찮을까? [비즈 포커스]
금 시세 또한 상승 추세가 뚜렷하다. 국제 금 시세를 파악할 수 있는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 가격의 4월 인도분 금은 지난 2주간 약 11% 가까이 상승했다. 3월 21일 장중 한때 2000달러 선을 돌파하며 작년 3월 이후 1년 만에 최고치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 달러 강세와 글로벌 금리 상승이라는 강력한 역풍이 있었지만 국제 금값은 최근 활발해진 소매 구매와 지정학적 충격, 중앙은행의 대규모 매수 등에 힘입어 금 시세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각국 중앙은행의 대규모 구매에 따라 금 연간 수요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것이 금값 상승세를 이끄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앙은행 수요는 3분기(445톤)와 4분기(417톤)에 걸쳐 급증하면서 이 부문의 연간 구매 규모가 직전 해 대비 250% 넘게 증가한 1136톤을 기록했다. 지정학적 충격과 정치적인 역학 관계를 고려해 신흥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금 실물에 직접 투자하는 것으로, 금을 직접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구매할 때 부가세 10%가 부과되며 구입 제품에 따라 수수료나 세공비가 부과되기도 한다.

‘골드 뱅킹’이라고도 불리는 금 통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금통장에 입금하면 해당하는 금액만큼 무게로 환산돼 통장을 통해 금에 투자할 수 있다. 0.01g 단위로 거래할 수 있어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고 언제든지 입출금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사고팔 때 1% 내외의 수수료가 부과되고 실물을 인출할 때는 부가가치세 10%와 수수료가 붙는다. 은행에서 가입하지만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 또한 주의해야 한다.

KRX 금시장을 통해 금 현물에 투자할 수도 있는데 증권사에서 KRX 금 계좌를 개설한 뒤 주식 매매와 유사하게 실시간으로 투자할 수 있다. 거래 시간은 주식 투자 시간과 동일하다.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되지 않고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나 배당소득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금 상장지수펀드(ETF)나 펀드를 통한 투자가 특히 큰 관심을 얻고 있다. 금 ETF는 대부분 금(선물·현물) 가격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이고 금 펀드는 금광 회사와 같은 금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금값이 상승세를 타며 한국의 대표적인 금 ETF 또한 높은 수익률로 주목받고 있다. KODEX 골드선물(H) ETF는 3월 20일 1만3105원으로 연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3월 10일 SVB 파산 이후 9.6% 급등했다. TIGER 골드선물(H) ETF도 9.5%의 수익률을 보였고 2배 레버리지 상품인 ACE 골드선물 레버리지 ETF(합성H)는 같은 기간 19.1% 급등했다.

금값이 단기간에 급상승한 만큼 단기 조정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기가 반등에 성공하면 안전 자산으로서 금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은 금 시세가 한동안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향후 금 시세의 흐름을 결정하게 될 가장 중요한 변수는 3월 23일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여부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3월 2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결정을 내린 뒤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때문에 올해 금리 인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는 금 투자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 연구원은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같은 지정학적 충격이 금 수요를 견인하고 있고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과 같은 정치적 역학도 금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매수가 국제 가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향후 금값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뱅크런 위험 없는 자산, ‘비트코인 모멘트’ 왔다
글로벌 은행이 잇달아 쓰러지면서 자금이 쏠리는 또 다른 투자처가 있다. ‘탈중앙화’를 표방하는 비트코인이다.

그동안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만큼 안전 자산인 금 시세와 동떨어져 위험 자산인 미국 기술주 등과 연결성이 강화되는 흐름이 강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루나 사태와 FTX 사태 등을 겪으며 가격이 크게 폭락하는 등 변동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었다. 당장 3월 8일에도 암호화폐 거래 은행인 실버게이트가 청산을 발표하며 비트코인 가격이 한 차례 급락했다.
금융 리스크 부각되며 상승세 탄 금, 비트코인…지금 투자 해도 괜찮을까? [비즈 포커스]
하지만 이틀 뒤인 3월 10일 SVB 사태가 터지자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날 이후 가격이 급등하며 3월 13일 2만4000달러 선까지 올랐고 3월 17일에는 2만6000달러를 넘어섰다. SVB 사태 전 비트코인 가격이 1만9500달러 선에서 움직였던 것을 감안하면 1주일 사이에 약 37% 상승한 것이다. 3월 22일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약 2만800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2만80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다. 비트코인 가격의 흐름이 미 증시와 탈동조화하며 다시 안전 자산인 금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에 대한 업계의 진단은 하나로 모아진다. 은행의 실패가 비트코인 시세에 강력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의 조지 칼루디스 연구원은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은행의 실패와 금리 인상을 둘러싼 논란에 힘입은 바가 크다”며 “최근 붕괴 중인 은행의 위기를 비트코인 시세의 강력한 호재”라고 진단했다. 기존의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실패로 인해 은행이 파산하면 돈을 빼 비트코인을 사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전통 금융권의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는 대안 투자처로서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모멘트(bitcoin moment)’가 왔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마이클 노보그라츠 디지털 갤럭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불안해지고 경제 혼란이 커질 때 비트코인이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지금이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하는 ‘비트코인 모멘트’”라고 주장했다. 디지털 갤럭시는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기술 산업을 전담하는 산업은행이다.

현재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 중 가장 낙관적인 수치를 내놓은 인물은 억만장자 벤처 기업가인 팀 드레이퍼다. 그는 2023년 연말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25만 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낙관적인 근거의 기반이 되는 것은 2024년 예정된 비트코인 ‘반감기’다. 비트코인 반감기는 약 4년을 주기로 전체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의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앞서 2009년에 비트코인이 생성된 이후 2012년, 2016년, 2020년까지 총 세 차례의 반감기가 있었는데 비트코인의 가격은 반감기를 기준으로 매번 폭등한 바 있다.

팀 드레이퍼 만큼 높은 비트코인 가격을 전망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올 하반기에는 비트코인의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다만 금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 역시 3월 23일 Fed의 금리 인상 결정으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조정받을 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이후 크레딧스위스 등 글로벌 은행에 대한 불안이 발생한 뒤 Fed를 비롯해 각 국가의 금융 당국이 개입하며 위기 봉합에 나섰지만 이로 인해 기존의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며 “비트코인은 특히 뱅크런의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대안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의 탄생 이유 자체가 은행 시스템과 정부의 금융 개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는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거나 사용하는 ‘기반’이 얼마나 크게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은 단기적인 급등세에 의존해 비트코인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다. 홍 연구원은 “이번 SVB 사태로 FTX 이후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대중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며 “다만 은행 시스템에 대한 불안이 완화되고 동시에 디지털 자산 규제 강화 기조가 이어진다면 단기 상승 동력은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 연구원은 이와 함께 “비트코인에 투자할 때는 가상 자산 거래소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웹(web)3 지갑 등에 직접 보유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권했다. 가상 자산 거래소에서 구매하는 것에 그친다면 비트코인을 거래소에 보관하게 되고 이때는 ‘뱅크런’과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