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경고음 울리는 대한민국 경제 지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버팀목인 수출 전선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반도체의 부진을 자동차와 2차전지가 채워 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지속되는 고금리와 고물가는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정부도 지난 2월 ‘경기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인정한 후 석 달째 부정적인 진단을 이어 오고 있다. 하지만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10가지 숫자로 살펴봤다.
1, 1.5%. 또 낮아진 경제성장률
경고음 울리는 대한민국 경제 지표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11일 ‘세계 경제 전망(WEO)’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예측했다. 지난 1월 1.7%에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IMF는 지난해 7월부터 네 차례 연속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IMF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한국의 ‘수출’과 ‘투자’가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고 정부의 긴축 정책 등으로 ‘소비’가 약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이 수치가 위험한 것은 세계 경제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IMF는 한국과 달리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41개 선진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올 1월 전망치보다 상향 조정했다. 특히 IMF는 지난 1월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1.6%에서 1.8%로 상향 조정하며 한국과 일본의 성장률이 ‘역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과 비교해 더 낮았던 것은 1967년 이후 65년간 두 차례뿐이었다. 1980년 오일쇼크와 1998년 외환 위기 때다. 2. 496억 달러. 줄어드는 수출
경고음 울리는 대한민국 경제 지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가장 위험한 숫자다. 지난 4월 한국의 수출은 496억2000만 달러(약 66조5400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월 대비 14.2% 감소했다. 3개월 만의 최저치로, 시장 예상치인 13.5%보다 감소 폭이 컸다. 반도체 부진의 영향이 컸다.

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월별 수출액이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 작년 동월 대비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이후 7개월 연속으로 수출액이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월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줄었다. 지난해 동기 대비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이 밖에 석유화학(-23.8%), 철강 제품(-10.7%), 디스플레이(-29.3%) 등의 수출이 줄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26.5% 감소한 영향이 컸다. 또한 미국(-4.4%)과 아세안(-26.3%) 수출도 줄었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수출’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표가 개선될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3. 250억 달러. 급증한 무역 수지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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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부진은 무역 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올 들어 4월 20일까지 누적 적자는 250억 달러에 달했다. 벌써 작년 연간 무역 적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의 월간 무역 수지는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무역 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17개월 연속으로 무역 적자가 난 이후로 가장 긴 연속 무역 적자다.

무역으로 발생하는 국제 수지를 뜻하는 ‘무역 수지’는 국가의 해외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쉽게 말해 ‘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다.

무역 적자가 더 문제가 되는 배경도 있다. 최근 가뜩이나 높은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 또한 더욱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4월 17일 대외 의존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이 100.5%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 지표가 100%를 돌파한 것은 2013년(101.1%) 이후 처음으로,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가 그만큼 ‘외풍’에 취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월 들어 적자 폭이 26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점이 위안이라고나 할까.
4. 1340원. 나 홀로 약세 원·달러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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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적자는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월 2일 서울 외환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37.7원) 대비 4.4원 오른 달러당 1342.1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340원을 넘은 것은 지난해 11월 28일(1340.2원) 이후 처음이다. 금리는 미국에 비해 낮고, 무역 적자로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들자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환율 상승에 무역 적자가 미치는 영향이 40%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원화 가치도 주요국 통화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4월 달러 자체는 전세계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원화가 더 약세를 보여 환율이 상승했다. 4월 주요 26개국 통화 가운데 원화는 하락 폭(-2.7)이 셋째로 컸다. 원화보다 더 많이 하락한 화폐는 지난 2월 물가 상승률이 100%에 달한 아르헨티나의 페소(-6.1%)와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루블(-2.8%)화뿐이었다.

국가 간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환율’은 그 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지표다. 수출과 수입은 물론 물가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입 상품과 함께 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원자재 수입 가격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5. 3.7%. 진정된 물가 상승률? 유가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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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은 표면적으로 진정된 숫자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7% 상승했다. 지난 3월 4.2%에 비해 소폭 낮아졌다. 지난해 2월(3.7%) 이후 가장 낮은 상승 폭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가가 안장세를 찾았다는 점이다. 유가를 제외하면 소비자 물가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는 ‘근원물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변동성이 비교적 작은 품목들의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4.6% 상승했다. 지난 1월(5.0%), 2월과 3월(4.8%)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에 대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물가지수의 전년 대비 변화율을 뜻하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지표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소비자의 구매력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6. 3.69bp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폭, 불황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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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기준 한국의 10년물 대 2년물 스프레드는 마이너스 3.9bp(1bp=0.01%포인트)다. 현재 한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329%로 기준금리(3.5%)보다도 0.2~0.3% 낮다.

이자율은 만기가 길수록 높아진다. 하지만 가끔 단기 이자율이 장기 이자율보다 높아질 때가 있다. 국채를 파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채 가격이 높아지고 이때 국채 금리는 하락한다. 장기 채권 이자율이 단기채 이자율보다 낮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채를 사려는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향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은 국채 장기물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장·단기 금리의 역전’ 현상을 경기 불황의 강력한 신호로 판단하는 이유다.

채권 시장에서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을 특히 주시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난 이후 1~2년 이내 경기 침체가 뒤따른 경우가 많았다.
7. 2.7%. 낮은 실업률…그러나
경고음 울리는 대한민국 경제 지표
실업률은 그나마 긍정적 지표다. 물론 이것도 한 꺼풀 벗겨 보면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
통계청의 경제 활동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23년 3월 한국의 실업률은 2.7%로 전월인 2.6%와 비교해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의 실업률은 2021년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올 1분기 기준 만 15~29세 청년의 실업률은 6.7%(청년 경제활동인구 417만 명 중 실업자 27만9000명)으로 1999년 6월 이후 역대 1분기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고용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근 낮아진 실업률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여성과 고령층 중심으로 취업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실제 최근 5년간 늘어난 전체 취업자 수 중 60세 이상이 49%를 차지한다. 청년층의 실업률이 낮아진 것 역시 최근 ‘배달 아르바이트’ 등에 뛰어드는 청년층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비정규직이나 시간제 등 ‘일자리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흐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일자리는 가계 소득의 원천이다. 이 때문에 실업자를 경제활동인구로 나눈 ‘실업률’은 그 나라의 고용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가 된다.
8. 105.1%.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 한국 경제의 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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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가계 부채 비율은 국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5월 3일 발표한 ‘가계 신용 누증 리크스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5.1%다. 가계 부채 비율은 명목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뜻한다. 가계 부채 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벌어들인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의미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가세가 가팔라지면서 한국 경제의 주체인 가계의 소득과 여건에 비해 과도한 수준까지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국은행의 보고서에서는 가계 부채 비율이 80%를 초과해 계속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가계 부채의 심각성은 실제로 다른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3월 3월 개인 회생 사건 접수는 1만1228건으로 전년(7455건) 대비 50.6% 급증했다. 개인 회생 제도의 월간 신청 건수가 1만 건을 웃돈 것은 2014년 7월 이후 처음이다.
9. 0.10%. 4년 만에 최고 찍은 어음 부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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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분명한 징후다. 한국은행은 2022년 한국의 어음 부도율(전국)이 0.1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0.07%)과 비교해 0.03%포인트 상승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의 어음 부도율은 관련 통계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0.1%대를 유지하다가 2018년 0.13%를 끝으로 2019년 0.08%, 2020년 0.06%, 2021년 0.07% 등으로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어음 부도율은 일정 기간 어음 결제소에서 거래된 총교환 금액 중 잔액 부족으로 부도가 난 어음 부도액의 비율이다. 지난해 기업 어음 부도율이 높아진 데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기업 전반의 자금 경색이 심화된 여파로 풀이된다. 지난해 부도 금액 역시 2조2520억원으로 2021년(1조9032억원) 대비 18.3% 급증했다. 이 또한 2018년(2조9159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10. 5만2333건. 3월 늘어난 주택 거래량
경고음 울리는 대한민국 경제 지표
부동산은 한국 가계 자산에서 비율이 매우 높다. 한국 가계에서 부동산을 포함한 비금융 자산 비율은 64.4%로 주요 4개국(미국·일본·영국·호주)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3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5만2333건으로 전월 대비 27% 증가했다. 한국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5월 이후 올해 1월까지 8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의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50만8790건으로 전년 동기(101만5171건) 대비 49.9% 감소했다. 2006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올해 2월 이후 소폭이지만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의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3월 기준 주택 매매 거래량을 전년 동월(22년.3월, 5만3461건)과 비교하면 2.1% 낮은 수치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누계된 주택 매매 거래량 또한 11만9285건으로 전년 동기(13만8349건) 대비 13.8% 감소했다. 누계 주택 인허가 실적 또한 3월 기준 전국 8만6444호로 전년 동기(11만2282호) 대비 2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