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데이비드 콜먼 교수. 사진=한미글로벌
데이비드 콜먼 교수. 사진=한미글로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첫째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2006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 명예 교수가 유엔 인구 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언급하며 이렇게 경고했다. 콜먼 교수는 옥스퍼드대 인구학 교수와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 학장을 지내며 40년 이상 인구 문제를 연구한 세계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다. 당시에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17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경고는 무섭게 빠른 속도로 ‘현실’이 되고 있다.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2013년부터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합계 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2020년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데드크로스’를 지난 한국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다. 감소 속도도 예상보다 빠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인구는 12만3000명 넘게 감소했다. 2021년에는 약 5만7000여 명 줄었다.

콜먼 교수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콜먼 교수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5월 17일 열린 ‘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 : 국제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현실과 전망’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주최하고 이화여대·한양대·포스코가 공동 주관했다.

콜먼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지금까지 한국에 네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를 바꾸기 위한 민·관의 협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산율 낮은 동아시아 국가들 “일 많이 하고 교육열 과도”
콜먼 교수는 기후 변화의 시기에 ‘인구 감소’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던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콜먼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인구 감소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1970년대 이후 이들 국가들의 출산율이 매우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콜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큰 변화없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2750년 국가가 소멸할 위험이 있고 3000년까지 지구상에서 모든 일본인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종말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변수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경고하는 포인트는 2750년이라는 시기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이라는 인구 소멸의 전제 조건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콜먼 교수는 출산율이 낮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의 비교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빠르고 압축적으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했고 이에 따라 인식의 변화와 사회 변화와의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콜먼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특히 가족 중심주의와 가부장제 문화가 강하다”며 “‘시민으로서의 책임’보다 ‘가족으로서의 책임’이 큰 문화적 특성에 따라 여성에게 부여된 가사 노동의 부담이 매우 크다”고 꼬집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까지 주어지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결혼’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결혼율’이 줄어들고 있는데 혼외 출산의 비율이 낮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또한 저출산과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다.

콜먼 교수는 이와 함께 ‘과도한 업무 문화(workism)’와 ‘입시 과열’ 현상도 저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셋째로 노동 시간이 길다. 그는 ‘지나친 사교육 열풍’에 대해 “한국의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들은 바로는 입시에서 ‘고득점 경쟁’이 과열되면서 엄마들이 자녀들 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헌신하고 있다”며 “자녀의 입시 성공에 대한 부담이 여성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업무 문화와 지나친 사교육 열풍과 같은 것들이 결국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 가족 친화적 업무 문화 만들어야”
콜먼 교수는 출산율이 높은 유럽·영어권 국가들과 결정적 차이점도 얘기했다. 콜먼 교수는 “이들 국가는 사실 구체적인 ‘출산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환경의 차이가 두드러진다”며 “이들 국가는 ‘포괄적인 복지 정책’이 있고 그 무엇보다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는 ‘출산 저해’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 국가들은 19세기부터 점진적으로 경제 성장을 했고 유연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고 대규모 이민을 통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성평등 의식과 일과 삶의 균형 또한 눈여겨봐야 할 차이점이다.

콜먼 교수는 특히 “이들 국가는 1950년대부터 사회 변화를 통해 만혼과 비혼, 동거와 비혼 출산의 비율이 높다”며 “적어도 출산의 30% 이상이 비혼 출산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선진국도 1.6 이상의 출산율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봤을 때 한국의 출산 정책 역시 ‘결혼의 의미를 보다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콜먼 교수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 정책을 통한 문화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한국은 특히 ‘일과 삶의 균형’과 관련된 측면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기업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는 방법들 가운데 해법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간을 단축해야 하지만 이는 기업들에는 생산성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며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출산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유연한 노동 환경을 조성하고 더 많은 시간을 안심하고 가족과 보낼 수 있도록 친가족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일할 수 있는 문화와 고용 안정, 직장의 보육 지원 등의 중요성도 함께 말했다.

콜먼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6년간 약 280조원에 달하는 출산 장려 예산을 썼지만 이 같은 금전적 지원 정책은 효과가 있더라도 일시적”이고 “노동 인구 유지를 위한 이민 정책 또한 제한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저출산의 해결책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이민 정책’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지금과 같은 인구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생산 가능 인구의 비율과 같은 인구 구조를 고려할 때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인이 한국으로 이민해 와야 할’ 만큼 많은 수의 이민이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외부에서 인구를 유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중이 ‘얼마나 많은 이민’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도 이민 정책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콜먼 교수는 출산율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2022년 기준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은 1.8명이다. 프랑스는 양육 비용이나 교통 등 매우 포괄적이고 탄탄한 출산 정책을 갖고 있다. 1930년대 이후 여당 혹은 여당에 상관없이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일관되게 정책을 수립하고 이어 나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또한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일관된 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