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작품은 워홀이 1984년 미국의 연예 정보 잡지 베니티 페어의 의뢰로 제작한 팝스타 프린스의 얼굴을 담은 연작이다. 워홀은 당시 ‘퍼플레인’ 앨범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던 프린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문제는 워홀이 초상화 밑그림으로 사진작가인 골드스미스가 찍은 프린스의 흑백사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1981년 골드스미스가 프린스에게 보라색 아이섀도와 립글로스를 바르고 흰 배경 앞에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촬영한 사진이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이 프린스의 사진에 다양한 색을 입히는 초상화 시리즈를 제작했다. 워홀은 골드스미스의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은 채 이를 활용한 프린스 시리즈를 제작했고, 이 작품은 엄청난 관심을 모으며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됐다.
이 흑백 사진을 촬영한 사진작가 골드스미스는 2016년 프린스의 사망 후 특집기사에 워홀의 프린스 작품이 표지로 사용된 걸 보게 되면서, 워홀이 자신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워홀은 1987년 이미 사망한 이후였지만, 그의 작품과 저작권을 기반으로 활발히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워홀 재단에 “자신의 사진 저작권이 침해당했으며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원한다”는 입장을 전달한다. 하지만 워홀 재단은 이를 묵살했다.
소송은 워홀 재단이 먼저 시작했다. 워홀의 작품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면서 법원에 ‘비 침해 선언’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자 골드스미스도 맞소송을 냈다.
워홀재단은 “골드스미스가 프린스를 연약한 인간으로 묘사한 반면 워홀은 골드스미스의 사진을 자르고 크기를 조정하고 색조를 바꾸는 등의 변화를 줌으로서 인간성을 지우고 ‘시대의 상징’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했다”며 “이는 매우 변혁적이며 따라서 원 사진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새로운 창작물이다”는 주장이다.
반면 골드스미스는 “저작권법은 작품을 보고, 배포하고, 재생산하거나 각색하는 경우 등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으며 제작자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라이센스 산업이 바로 이 저작권법에 의존하고 있기에 저작권 보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심 법원은 워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골드스마스의 원본과 워홀의 작품 사이에 차이점이 분명한 만큼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공정이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이용은 미국 저작권법에서 저작권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락 없이 저작물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2심에선 판결이 뒤집어졌다. 공정이용으로 보기 위해선 두 작품의 예술적 목적과 특성이 완전히 달라야 하지만 워홀의 초상화가 그 정도로 차별성을 성취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2심 판결 이후 워홀 재단은 "기존 이미지를 전용하는 것은 수 세기 동안 사용된 예술적 기법이고, 현대 미술의 핵심"이라며 “이와 같은 판결이 현대 예술 전체를 위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팝아트 작가들 가운데는 기성의 이미지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세계의 사진 기반 2차 창작 관련 예술가들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법원 또한 2심과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서 "골드스미스의 원작은 다른 사진작가들의 작품처럼 저작권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면서 "이런 보호에는 원본을 변형한 파생적인 작품에 대한 보호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반면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저작권 침해 판결시) 모든 종류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새로운 예술과 음악, 문학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특히 지난 2013년 있었던 사진작가 카리우와 예술가 리처드 사이에서 있었던 저작권 침해 사건의 판결(사진을 변형했으니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공정이용에 해단된다)는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향후 예술가들의 사진 저작권과 관련해 그 여파가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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