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 사진=연합뉴스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이 5월23일 미국의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과 5G 무선 주파수 반도체 부품을 미국에서 개발하기 위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브로드컴과의 거래는 미국 경제에 4300억달러(약 567조원)를 투자하겠다는 2021년 계획의 일환이다. 애플이 반도체 공급망 미국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은 2025년까지 인텔, 퀄컴 등에서 공급받던 반도체를 자체 칩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반도체 자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자사 맥컴퓨터에 들어간 중앙처리장치(CPU)를 자체 개발해 인텔과는 절연에 성공했지만, 휴대폰 모뎀 반도체 개발에서는 어려움을 겪으며 퀄컴에 계속 의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브로드컴과 손잡고 퀄컴이 장악한 모뎀 반도체를 새롭게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스마트폰 모뎀 반도체 퀄컴 의존 역시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날 양사가 공개한 합의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앞으로 애플에 5G 라디오 주파수 부품과 무선 연결 부품을 공급하게 된다. 정확한 계약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150억달러가 넘는 계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브로드컴은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를 비롯해 미 곳곳의 제조허브에서 5G 라디오 주파수 부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 계약은 2026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애플과 브로드컴의 협력은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이미 일부 부품을 브로드컴에서 공급받고 있다. 수년 전 150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모뎀 반도체 개발 계획으로 덩치를 키운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특히 이번 계약을 통해 애플이 2025년부터 브로드컴의 부품을 끊을 것이라던 추측도 잠재우게 됐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혼란이 가중되며 미국에 더 많은 제조시설을 배치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다. 애플의 입장에서 미국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이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브로드컴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조달 가능성을 높였다. 애플측은 “브로드컴과의 계약을 통해 엔지니어 및 기타 기술자들과 함께 중요한 자동화 프로젝트 및 기술 향상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이미 콜로라도주 브로드컴 생산시설에서 11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도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 공장 가동이 중단되며 제품이 없어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이후 애플은 생산 협력사인 대만 폭스콘과 함께 중국 생산설비 일부를 최근 수년에 걸쳐 베트남과 인도로 이동하는 등 중국 의존도를 줄여 나가는 중이다.

쿡 애플 CEO는 이번 브로드컴과의 협력에 대해 "미국의 미래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미 경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미국은 현재 전세계 반도체의 약 12%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 내 투자와 생산시설 확대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실제 최근 미국의 반도체법 이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업체들의 미 생산시설 확대가 줄을 잇고 있다. 현재 애플의 주요 반도체 공급원인 TSMC 또한 미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