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금융위 가이드라인 발표, 국내 금융사들 시장 선점 움직임
=BCG, 비유동자산의 토큰 증권 시장이 2030년까지 16조 달러에 달할 것

[스페셜 리포트 - STO, 토크노믹스 시대 열까]
16조 달러 시장 열어 갈 '게임체인저', STO 대해부
“다음 세대의 증권과 시장은 ‘자산의 토큰화’가 이끌어 갈 것이다(The next generation for markets, the next generation for securities, will be tokenization of securities).”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지난해 11월 한 말이다. ‘자산의 토큰화’를 통해 디지털 결제가 보다 간편하고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수수료 절감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식·채권·부동산 등 실물 자산을 비롯해 와인이나 선박 등 대체 자산까지 분산 원장을 통해 투자하고 거래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란 얘기다.

이 발언은 토크노믹스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줬다. 블랙록의 운용 규모뿐만 아니라 그가 이전에 제기했던 이슈의 파급력을 경험한 터였기 때문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세계적 확산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혁신’은 오래된 화두다. 2007년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시작된 초연결 시대는 우버와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시켰다. 정보기술(IT) 혁신은 이제 유통·제조·금융 등 전통 산업 부문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혁신이 기대되는 분야는 금융이다. 최근 디지털 금융 혁신의 중심에 ‘자산의 토큰화’, 즉 STO(Security Token Offerings : 토큰 증권 발행)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의 미래’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STO는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6월 8일 STO를 비롯해 금융과 같은 전통 산업의 미래 플랫폼을 엿볼 수 있는 ‘한경·INF컨설팅 산업 플랫폼 혁신 포럼’이 개최됐다. 이를 계기로 금융업의 미래를 주도해 나갈 STO에 대해 살펴봤다.
금융위 가이드라인 발표, 새롭게 판 깔린 STO 시장
지난 2월 독일에서 의미있는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독일에서 시가 총액 기준으로 셋째로 큰 상장 기업 지멘스가 ‘디지털 채권’을 발행했다는 뉴스였다. 지멘스는 폴리곤 블록체인을 통해 1년 만기로 6000만 유로(약 821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기존 채권 발행과 다른 점은 투자은행을 끼지 않고 직접 발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행한 채권은 독일 전자증권법에 따라 데카뱅크·독일중앙조합은행(DZ Bank)·유니온인베스트먼트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직접 판매됐다. 이 과정에서 중앙의 통제와 서류 기반의 글로벌 인증서는 필요 없었다. 지멘스는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기존 채권 발행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거래를 실행할 수 있었다”며 “실물 글로벌 인증서 없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채권을 투자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최근 들어 ‘디지털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은 사례가 적지 않다. 2021년 3월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미국 스타트업 ‘시큐리타이즈’와 제휴해 토큰 증권 방식을 통한 자산 유동화를 진행했다. 신용카드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토큰 증권을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이 시큐리타이즈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해 발행하는 구조다. 토큰 증권 기반의 유동화 상품 최초로 신용 평가 기관으로부터 ‘투자 적격 등급(A-1)’을 취득하기도 했다.

2021년 7월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이 부동산 자산 운용사인 케네딕스와 협업을 통해 부동산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토큰 증권을 발행했다. 케네딕스가 제공한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 임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 투자자들이 분배 받는 구조다. 자사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프로그맷(Progmat)을 통해 공모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케네딕스는 2022년 2월 한 번 더 부동산 토큰 증권을 발행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쓰이물산이 물류 시설, 온천 시설, 거주용 부동산 등 각종 부동산을 기초로 토큰 증권을 발행, SBI증권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미 해외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STO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ST(토큰 증권 : Security Token)는 부동산·미술·저작권 등의 다양한 실물 자산을 토큰 형태로 발행한 디지털 자산을 일컫는다. 이 ST를 발행하는 것을 STO(Security Token Offering)라고 한다. 주식 시장의 기업공개(IPO)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STO는 ‘증권성’을 띤 투자 상품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이라는 디지털 자산의 형태로 발행하는 것이다.

STO 시장의 탄생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 저작권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다. 뮤직카우는 2020년 무렵, 군부대 위문 공연 영상으로 역주행 신화를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효과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2만원대에 거래되던 노래 가격이 6개월 만에 130만원까지 치솟으며 젊은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뮤직카우의 사업 모델이 사실상 주식을 상장한 뒤 사고파는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투자업 인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뮤직카우가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뮤직카우의 ‘증권성’을 인정한 것이다.

뮤직카우는 토큰 증권의 제도권 편입 논의를 본격화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금융 당국은 지난 1월 조각 투자와 같은 증권형 디지털 자산을 토큰 증권이라고 이름 붙이고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STO라는 새로운 시장의 발판이 될 ‘ST의 발행·유통 규율 체계 정비 방안(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토큰 증권 발행은 일정 수준 이상 요건만 갖추면 조각 투자 사업자도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발행과 유통을 분리해야 하고 발행만 하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해 계좌 관리 기관인 증권사와의 제휴는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토큰 증권에 담길 투자 상품의 ‘증권성 판단 여부’에 대한 원칙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담고 있다. 발표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가상자산의 증권 해당 여부는 실물 증서 발행, 전자 등록 등 권리를 표시하는 방법과 형식, 특정 기술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권리의 실질적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STO 시장의 법제화는 이르면 2024년 하반기에서 2025년 상반기 중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토큰 증권 시장이 입법을 통해 정식으로 제도화하기 이전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토큰 증권의 발행과 유통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방침이다.

다만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토큰 증권은 가상자산 시장과 다른 것으로 구별 짓고 있다. 금융위의 정의에 따르면 토큰 증권은 결국 분산 원장(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증권’을 디지털화한 자산이다. 가상자산은 실물 기초 자산이 없다. 이에 비해 조각 투자를 포함한 토큰 증권은 부동산·미술품·음원 등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증권을 발행한다. 투자 대상이 되는 실물 자산에 따라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금융 상품이라는 점에서 ‘증권의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토큰이라는 형태보다 ‘증권’이라는 투자 상품의 내용에 더욱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웹 2.0과 웹 3.0 사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투자’ 시장 열린다
일방향 소통 구조를 갖춘 웹 1.0에서 ‘쌍방향 소통 구조’를 갖춘 웹 2.0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연 것은 스마트폰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웹 2.0의 주인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권한을 쥔 구글이나 메타와 같은 기업들이었다. 현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분산 원장(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해 ‘탈중앙화’와 ‘정보의 개인 소유’를 핵심으로 하는 웹 3.0으로의 진화를 얘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웹 3.0에도 문제가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웹 3.0의 경험을 원하고 있지만 위협적인 보안 프로토콜이나 토크노믹스에 참여하기 위한 지갑 생성 및 관리까지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웹 3.0이 열어 갈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 진전 속도가 모두의 기대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것이 웹 2.0과 웹 3.0 사이, ‘웹 2.5’라는 새로운 시장이다. 웹 2.5에 대한 딱 맞아떨어지는 개념은 없다. 다만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소비자(투자자) 관점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마찰 없이 사용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향후 토크노믹스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래 금융의 디지털 혁신 플랫폼에서 웹 2.5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STO가 주목받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에선 실제 상품에 해당하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발행해 투자자들이 실제 상품에 대한 포장이나 보관, 배송의 번거로움 없이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약 스탁엑스가 이 NFT를 증권 상품으로 발행하고 투자자를 모집한다면 이것이 STO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주목받았던 조각 투자 역시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루센트블록이 운영하는 소유는 고가의 상업 부동산을 소액 단위로 증권화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 밖에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테사 등도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컨설팅 업체들 중 웹 3.0과 비교해 웹 2.5의 시장 가치를 더욱 크게 전망하는 곳이 적지 않다.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는 블록체인이 창출하는 비즈니스 가치가 2030년까지 3조10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욱 대담한 전망치도 적지 않다. 씨티그룹은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향후 토큰 증권 시장이 최대 4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은 금·은·부동산 등을 포함한 ‘비유동자산의 토큰 증권’ 시장이 2030년까지 16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16조 달러 시장 열어 갈 '게임체인저', STO 대해부
증권사도 은행도 STO 군침, 빨라지는 합종연횡
새롭게 열리는 STO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한국의 증권사와 은행 등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3월 말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SK텔레콤과 토큰 증권 컨소시엄 NFI를 공식 출범시켰다. 최근에는 하나금융그룹도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토스뱅크·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함께 ‘ST 프렌즈’ 협의체를 구성했고 KB증권은 SK C&C, 블록체인 기술 기업 EQBR와 함께 한우·미술품·웹툰·영화 콘텐츠 배급사 등과 ‘ST 오너스’라는 협의체를 구성했다.

NH투자증권 역시 STO 인프라 구축을 위한 ‘STO 비전그룹’을 구성했다. 최근 NH농협은행과 케이뱅크가 새로 합류해 총 12개사가 참여 중이다. 신한투자증권은 다수의 테크핀,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STO 얼라이언스’라는 이름의 협의체를 구성해 올 하반기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된 플랫폼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키움증권은 뮤직카우를 비롯해 디지털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비브릭과 펀블,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테사 등 11곳의 조각 투자 플랫폼과 빠르게 업무 협약을 맺었다. 자사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에서 STO를 거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SK증권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인 금융사 중 하나다. 지난해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기업인 펀블과 함께 토큰 증권 기반의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을 출시, 롯데시그니엘 1개실을 공모 상품 1호로 출시해 판매한 바 있다.
‘탈중앙화’와 ‘투자자 보호’,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하지만 STO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금융 시장의 규제 문제다. 탈중앙화를 핵심으로 하는 토큰 증권을 통해 다양한 상품의 탄생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증권 상품으로서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다.

STO 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투자 상품’의 개발이 필수다. 규제 장벽이 지나치게 높으면 정작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든다. 금융업계 디지털 혁신 플랫폼 전문가들은 STO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선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 당국이 기존에 발표한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 체계 정비 방안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금융사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토큰 증권 발행 시 예탁결제원의 사전 등록 심사 의무는 토큰의 내용과 운영 방식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 상품으로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 보호’ 문제다. 규제 장벽을 지나치게 낮추는 데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토큰 증권은 증권 상품으로서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받고 있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현재 가상자산의 일부도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같은 규제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토큰 증권의 경우 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상당히 모호한 점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음악 저작권을 기반으로 한 뮤직카우와 같은 투자 계약 증권은 다른 증권 상품의 유형들과 비교해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재 금융 당국은 각각의 사례마다 관련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사안별’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예시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겠다는 것이다.

전우종 SK증권 대표는 “금융 당국의 규제에 맞춰 STO와 디지털 자산 관리 관련 비즈니스를 준비해 왔다”며 “투자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STO가 확산된다면 후폭풍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다만 일정한 조건과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갖춘 시장의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규제 장벽을 조금 낮춰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STO의 자발적인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 당국의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16조 달러 시장 열어 갈 '게임체인저', STO 대해부
<돋보기> 증권의 진화, 실물→전자→‘토큰’ 시대 열렸다
금융위원회는 토근 증권 발행(STO)의 개념을 ‘음식’과 ‘그릇’에 비유해 설명한다. ‘증권성’을 띠고 있는 투자 상품이 ‘음식’이라면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릇’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보자. 결국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것은 ‘증권’이라는 투자 상품이다. 여기서 증권은 ‘법적인 소유자에게 현금이나 기타 재산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증서’를 일컫는다. 주식이나 채권 혹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자산 분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부여하는 모든 권리가 이에 해당한다.

이미 주식이나 채권 등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증권 상품’이다. 다만 이 ‘증권 상품’을 거래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주식이나 채권의 투자와 함께 가장 익숙한 방식은 그 소유권을 종이와 같은 곳에 기록해 보관하는 ‘실물 증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물 증권은 실제로 사람들이 증서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가 전산화된 전자 장부에 의해 관리되는 ‘전자 증권’ 형태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제 이와 같은 증권 상품을 거래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토큰 증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증권을 ‘토큰화한다’는 것은 특정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디지털화한다는 의미다.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하면 블록체인상에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된다. 전자 증권이나 실물 증권은 한국예탁결제원이라는 기관을 통해 모든 거래가 기록되고 관리된다. 중앙에서 소유권을 통제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이와 비교해 ‘토큰화’된 증권은 탈중앙화를 핵심적인 가치로 하는 분산 원장(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기존 실물이나 전자 증권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굳이 ‘증권’이라는 투자 상품을 기존의 익숙한 방식인 실물이나 전자가 아닌 토큰이라는 디지털화한 플랫폼에 담아 낼 이유가 있는 것일까.

독일의 지멘스는 ‘채권’이라는 증권 상품을 폴리곤 블록체인에 기반해 ‘디지털화’된 자산으로 유통했다. 그 덕분에 지멘스는 보다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채권이라는 증권 상품을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었다. 기업은 자금을 조달하는 새로운 통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크다.

이 밖에 장점은 또 있다. 일본의 미쓰이물산은 토큰이라는 디지털 자산의 형태를 빌려 온천 시설이나 거주용 부동산 등 기존에는 증권화하기 어려웠던 자산을 유동화하고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바로 여기에 ‘디지털 혁신을 통한 미래 금융’의 핵심이 담겨 있다. 토큰 증권은 기존의 채권과 같은 이미 투자자에게 익숙한 증권 상품을 담을 수도 있지만 기존에는 ‘유동화하기 어려웠던 자산’까지 투자 상품화할 수 있다. 부동산·미술·저작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선박이나 콘도 회원권 혹은 팔로워 500만 명의 인플루언서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채널도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STO 시장의 승패를 가를 핵심은 ‘얼마나 창의적인’ 증권 상품을 토큰이라는 플랫폼에 담아낼 것인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