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문명의 씨앗 ‘통일벼’[김홍유의 산업의 窓]
한국의 산업혁명은 통일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벼는 1966년 개발돼 시험 재배를 거쳐 1972년부터 한국 전역으로 확대, 보급된 벼 품종의 이름이다.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 :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초청 연구원이었던 허문회 박사에 의해 개발됐고 일본 벼 유카라(Yukara, 자포니카 품종), 대만 벼 TN1(인디카 품종)과 국제 미작연구소의 IR8의 3원 교잡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품종은 국제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 품종이라고 해서 IR667이라고도 불리지만 한국에서는 이 품종을 ‘통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품종은 재배가 까다롭고 미질이 좋지 않아 1992년 이후 농가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뛰어난 생산성으로 1970년대 한국의 식량 자급을 이루게 한 녹색 혁명의 주역이다. 통일벼는 볍씨가 많이 열리지만 키가 작고 씨앗이 잘 떨어지며 밥맛이 월남 쌀처럼 푸석푸석했다. 하지만 그 통일벼를 시작으로 우리 역사 500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지속됐던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됐다.

통일벼는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의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오던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만든 기적의 볍씨였고 1977년 한국의 쌀 자급률 113%를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쌀밥을 먹고도 남았다. 통일벼 덕분에 눈부신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도 가능했다. 배가 든든했기 때문에 열심히 생산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고 아까운 외화를 식량 수입에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면서 경제가 성장한 사례는 없다. 중국을 보면 농산물 자급이 이뤄진 다음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통일벼가 없었더라면 산업화·공업화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가져다준 통일벼가 또 하나의 한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의 한류는 아시아를 바탕으로 문화에 초점을 뒀다면 지금부터는 인류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며 지구 환경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실천을 위한 K-라이스 산업이 한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연간 300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쌀을 생산하는 ‘K-라이스벨트’ 사업이 올해 가나를 시작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을 기아에서 구해낸 ‘통일벼’를 아프리카 기후에 맞게 개량한 신품종을 현지에서 재배하는 이 사업은 윤석열 정부가 국제 영향력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공적 개발 원조(ODA)의 대표 주자다.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에 자리한 세네갈은 서부 아프리카의 최대 쌀 소비국이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가 ‘벼’일 정도로 이 나라 국민의 쌀 사랑은 남다르다. 하지만 쌀 자급률이 낮아 국내 소비량의 절반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은 세네갈에 치명적이고 식량 수입이 국민의 영양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식량 안보 확보는 세네갈 정부의 첫째 국정 과제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하면 건조한 사막 기후로 쌀농사를 짓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는 아프리카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세네갈은 쾌적한 열대성 기후로 쌀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없다. 모리타니와의 국경 지역엔 세네갈강을 비롯해 감비아강 등이 흘러 수자원도 넉넉한 편으로 쌀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현지에서 재배하는 쌀 종자의 수확량이 시원치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통일벼’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먹거리가 풍부했던 4대강 유역이라는 것이다.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이 땅의 굶주림은 수천 년 동안 속수무책으로 지내다가 식량이 해결되니 산업화가 이뤄지고 국부(國富)가 증가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즉 배가 부르고 난 다음에야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산업 먹거리 성장을 위한다면 ‘통일벼’의 세계화 정신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