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공간’을 통해 보는 여성의 삶
집, 거리, 일터, 그리고 현실 너머 세상으로
과거 여성들과 오늘날 우리의 삶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공간에 그려진 여성들의 꿈과 현실, 그리고 삶 [신간]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
이윤희 지음|이른비|1만8500원


그림 속 공간은 배경으로 인물을 돋보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인물의 꿈과 현실, 욕망 등 삶의 진실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인물이 머물러 있는 장소로서 그가 어디에 속해 있고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이윤희가 ‘공간’이라는 관점으로 명화를 살펴보며,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온 화가들과 그림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역사 속에서 공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안온한 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며 꿈을 실현해간다. 하지만 과거 여성들에게는 그러한 과정을 펼쳐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들은 공간을 확보하고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해왔다. 책에서 소개되는 그림들에는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자 했던 힘겨운 노정의 한 단면이 포착돼 담겨 있다.

그림 속의 여성들은 식당, 침실, 교실, 카페, 술집, 공장, 바다 등 그들은 다양한 장소에 머물며 저마다 주어진 일을 한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변화되는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면서 공간의 형태는 점차 변해왔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찮은 일을 하는 곳이라 여겨져 집의 바깥쪽에 있었던 부엌은 오늘날 위생적인 설비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며 명칭도 ‘주방’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공간은 그곳에 있는 사람과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공간에는 젠더 또는 계급적 특징과 삶의 부조리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하는 양상들이 드러난다. 저자는 집과 일터 등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더욱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간을 사유하기 위해 ‘구조’와 ‘영역’ 두 가지 측면으로 그림 속 공간을 살펴본다. 공간은 거리와 넓이, 위치에 따라 구조가 생기며 한 사람의 경제력과 신분, 성별에 따라 그 사용 범위가 달라진다. 17세기 가내수공업을 하던 가난한 평민들은 일터, 거실, 부엌이 구분되지 않은 비좁은 집에서 살았던 반면, 귀족들은 부엌, 식당, 거실이 따로 나뉜 저택을 거닐고 별실에서 휴식을 즐긴 것이 그 예다. 또한 영역으로서 공간은 여성의 다양한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중세에 자신만의 서재를 갖기 위해 결혼 대신 수녀의 삶을 선택한 소르 후아나와 1, 2차 세계대전 당시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기차 보일러실을 청소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하는 공간을 넓히며 사회적 자아를 확립해갔다.

저자는 여성들이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벗어나 거리·일터 등의 사회적 공간으로 나아가며 어떻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갔는지 차례로 서술한다. 우선 역사 이래 여성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온 집을 살펴본다. 부엌, 침실, 서재, 정원 등이 있는 그림에 나타나는 집 안에 묶여야 했던 여성의 삶을 성찰해본다. 그 다음으로는 거리에 나온 여성들이 어떤 유혹을 받고 거래를 했으며 위험에 맞서 싸웠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시장, 공장, 화랑, 병원 등 일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상을 벗어나 더 큰 세상과 이상향을 추구한 여성들의 모습을 전한다.

예전에는 여성 화가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기에 이 책에 소개된 그림 중에는 남성 화가가 그린 여성의 그림들이 많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을 대상화하기도 하고, 고흐처럼 여성을 친구와 동반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림에 그려져 있는 성별 간에 이루어지는 대립 혹은 대화의 장면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림 속 공간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들이며, 그림 속 여성들이 집을 나와 일터를 찾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가는 노정은 우리의 성장 과정과도 같다. 프리다 칼로의 욕실, 베르트 모리조의 정원, 나혜석의 부엌, 고흐의 카페, 라저슈타인의 아틀리에, 모네의 기차역, 르누아르의 배, 아르놀트 뵈클린의 섬, 정정엽의 바다 등 그림 위에 현재의 공간을 겹쳐보면, 예술이 내 삶의 질문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조아영 기자 joa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