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ETF, 7년 뒤 4배 뛴 '금 ETF' 재현할까[비트코인 A to Z]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월 10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11개를 승인했습니다. 세상은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이라며 환호했지만 어쩌면 2023년 6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를 신청하면서부터 ‘예고된 미래’였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랙록은 지금까지 577종의 ETF를 신청했는데 하나를 제외한 576건에 대해 모두 승인을 받은 대기록을 자랑합니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도 물론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튿날 바로 거래가 시작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곧 출시 한 달을 맞이합니다. 지금도 축포의 연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 환호성의 여운이 남아 있지만 정신없던 와중에도 어렴풋이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세 장면을 돌이켜 보며 앞날을 생각해 봅니다. ①상승장은 언제 오는가첫 장면은 가격입니다. 일단은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가격은 이를 배신하고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승인 발표 직후 한때 개당 4만9000달러에 육박했다가 이후 10여 일 동안 연일 하락을 거듭해 1월 23일 3만9000달러 아래로 주저앉았습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라는 투자 격언이 역시 진리인가 싶지만, 20% 넘는 하락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비트코인 ETF, 7년 뒤 4배 뛴 '금 ETF' 재현할까[비트코인 A to Z]
하지만 이후 반등에 성공해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30일에는 4만3000달러 선을 회복했습니다. 여기에 4년에 한 번씩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비트코인 반감기가 4월로 예정돼 있어 올해는 공급량 감소에 따른 상승장을 점치는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코인 시장은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에 대한 기대 덕분에 워낙에 낙관적인 장기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반면 앞으로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우선, 지난 2개월가량의 비트코인 상승장은 현물 ETF 승인을 선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코인 거래소 비트멕스 창립자 아서 헤이즈는 3만~3만5000달러에서 지지선이 형성될 거라며 3만5000달러 풋옵션 매수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적 추세는 차치하고, 전례에 비추어 당장 반감기 전까지는 하락장이 지속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전쟁에, 미국 금리에, 거시경제 환경도 지금 장세엔 좋을 게 없다고도 합니다. 미국 주식시장의 코인 관련 대장주인 코인베이스는 지난해 390% 상승했는데, JP모간은 최근 35% 하락 전망을 내면서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엇갈리는 등락 전망도 혼란스럽지만 무엇보다 비트코인 현물 ETF라는 새로운 현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전엔 생각하기 힘들었던 문제들이 이미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두 번째 장면입니다. ②어디서 무엇이 나올지 알기 힘들다비트코인 현물 ETF는 코인을 직접 거래하기 꺼리는 기관에 비트코인 투자 기회를 열어줄 거라는 전망 덕에 힘을 받아왔습니다. 신청한 자산운용사가 11곳이나 됐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SEC가 11개의 신청서에 모두 사인을 해줬더니 그중 한 곳에서는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가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최초의 비트코인 투자펀드를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입니다.

그레이스케일은 이전부터 기관투자가들을 대신해 비트코인을 매입하던 신탁 상품 GBTC를 판매해 왔고, 자산이 29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레이스케일은 GBTC를 이번에 승인받은 현물 ETF로 전환했는데, 문제는 이 상품이 이전엔 신탁이었다는 겁니다. 신탁은 비트코인 현물에 비해 할인율이 있었고 그레이스케일은 일정 기간 매도 제한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ETF로 전환하면서 모든 조건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그레이스케일이 책정한 수수료는 다른 곳들에 비해 5~6배 높았습니다.

결국 투자자들은 GBTC를 40억 달러어치 이상 팔아치우며 대거 이탈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중 4분의 1가량은 2022년 말 파산을 신청하며 코인 시장 폭락을 촉발했던 FTX의 보유분이었습니다. FTX는 현재 고객 및 채권자 자산 상환 관련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뒤늦게 GBTC가 하락장의 주된 원인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파급력 높은 구조적 문제를 이전엔 왜 몰랐을까요? FTX는 이제 더 이상 GBTC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제2, 제3의 FTX는 과연 없을까요? GBTC 대규모 보유자의 명단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③시장은 이미 다음을 바라본다
비트코인 ETF, 7년 뒤 4배 뛴 '금 ETF' 재현할까[비트코인 A to Z]
세 번째 풍경은 비트코인 현물 ETF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시장의 기대입니다. SEC의 승인이 떨어지기 전인 1월 초부터 코인 분야 인기 검색어에는 ‘이더리움 현물 ETF’, ‘리플 ETF’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리플 ETF 가능성을 짚어본 ‘비인크립토’ 기사는 자체 순위 조회수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SEC는 최근 블랙록과 그레이스케일이 신청한 이더리움 현물 ETF의 승인 심사 기간을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할 때 버틸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결정을 미루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미뤄지는 동안 비트코인 가격은 줄기차게 상승했습니다. 이더리움 현물 ETF의 경우 현재 적어도 6곳의 자산운용사가 신청서를 냈고 현재로서는 그 마지막 날이 5월 말입니다.

이더리움 가격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달리 최초 개발자와 투자자 등이 명확한 탓에 SEC가 이를 문제 삼아 증권성 시비와 소송으로 이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와 내년 새 정부 출범 등 정치적 일정을 넘겨 내년 말이 돼야 SEC가 결론을 낼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국에선 민주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코인 산업을 껄끄러워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이더리움 현물 ETF라는 문제는 SEC가 선거를 앞두고 무리해서 추진하지 않을 ‘정치적 사안’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복잡한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방정식에 더해 한국의 금융당국이 국내에서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를 허용하지 않은 반면, 홍콩 금융당국은 자국 내 첫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접수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금 현물 ETF가 출시된 것이 꼭 20년 전인 2004년입니다. 금을 사지 않고도 금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ETF에 1000억 달러가량이 유입됐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금의 선례를 찾아보면 될까요? ETF 출시 7년 뒤 금 가격이 4배 오른 것도 선례가 될 수 있을까요?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