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 산책]
지식재산권과 표현의 자유의 충돌[문진구의 지식재산권 산책]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의 지식재산권은 기업의 주요 자산이다. 이런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명품 브랜드사는 지식재산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명품 브랜드의 로고, 표장, 패턴 제품 형태 등은 상표권, 저작권, 디자인권 등이 지식재산권의 보호 대상이 되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저명한 표지 등에 해당한다.

명품 브랜드사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 로고 등을 개발하고 홍보한다. 이 때문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 등은 엄청난 재산적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높은 상징성과 심미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명품 브랜드의 로고 등은 예술의 영역에서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관해 2007년경부터 시작된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덴마크 출신 작가인 나디아 플레스너(Nadia Plesner)는 수단 다르푸르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태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흑인 소년이 패셔니스타 치와와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멀티컬러 핸드백을 들고 있는 ‘심플 리빙(Simple Living)’ 일러스트를 창작했다. 그리고 이 일러스트가 포함된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다. 그는 티셔츠의 판매 수익금을 수단 다르푸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한 재단에 기부했다.

루이비통은 플레스너에게 일러스트의 사용 금지를 요구했으나 플레스너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루이비통은 플레스너가 루이비통의 상표권과 저작권을 상업적 목적으로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프랑스 파리 법원에 티셔츠의 판매를 금지할 것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루이비통은 플레스너가 판매하는 티셔츠에 자사의 상표권이 무단으로 사용됐다고 하며 플레스너의 제품 판매 행위는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플레스너는 이는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있다며 루이비통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 법원은 루이비통의 손을 들어줬다. 플레스너에게 티셔츠의 판매를 금지할 것을 명하고,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하루에 5000유로의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 이후 플레스너는 티셔츠의 판매를 중단하였다.

그런데 몇 년 뒤 플레스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모티브로 해 ‘다르푸르니카(Darfurnica)’라는 회화 작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작품 중 한 부분에 ‘심플 리빙’과 유사한 이미지가 포함됐다. 이 때문에 루이비통과 플레스너 간에 소송이 네덜란드에서 다시 발생하게 된다.

플레스너는 유럽인권조약 제10조에 근거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루이비통은 유럽인권조약 첫째 부속협정 제1조에 근거한 재산권 보호를 주장했다.

플레스너는 쇼비즈니스가 다르푸르 사태에 비해 더 중요하게 매스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심플 리빙’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고 이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가 재산권의 보호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루이비통은 ‘심플 리빙’ 이미지로 인해 루이비통이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 있다는 인식이 생겨 브랜드 명성이 저해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결은 이전과 달랐다. 승자는 플레스너였다. 법원은 플레스너가 루이비통의 명성을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심플 리빙’ 이미지로 인해 루이비통이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증명되지 않았고, 루이비통은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로서 다른 권리자보다 비판적 목적의 사용을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표현의 자유가 지식재산권의 행사보다 우선된다고 결론 내리고 플레스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문진구 법무법인(유) 세종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