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회장은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의 국산화에 나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놨다

뭘 해서 대기업인데?…·세계 1등 사업 거느린 ‘알짜기업’ 효성 [안재광의 대기만성's]
기업인 중에 대기만성한 분들이 꽤 있어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TSMC를 54세에 창업한 대만의 모리스 창, 53세에 맥도날드를 공동 창업한 레이 크록, 48세에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일본 식품기업 닛신의 창업주 안도 모모후쿠 등이 대표적인데요. 한국인 중에 꼽으라면 단연 이분입니다. 56세의 나이에 효성을 창업한 조홍제 회장이요.

효성이란 회사 이름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실제로 뭘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아는 분은 잘 없죠. 하는 사업 중에 소비재가 없고 기업에 납품하는, 이걸 B2B(Business to Business)라고 하는데요. B2B 위주로 이뤄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근데 심지어 세계 1등 사업을 갖고 있어요. 레깅스의 소재인 스판덱스, 타이어에 들어가는 타이어코드 등등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이 회사가 한국 최고의 부자 가문에, 한국 최고의 인맥과 혼맥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죠. 까면 깔수록 뭔가 계속 더 나오는, 스토리가 정말 많은 효성입니다.

◆나일론으로 기틀 다져

우선 창업주 조홍제 회장을 볼게요. 이분 고향이 경남 함안인데요 인근에 한국 최고 부자들이 몰려 살았어요. 진주에서 구인회 LG 창업주와 허만정 GS 창업주가 나고 자랐고, 의령에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태어났어요. 함안, 진주, 의령이 다 붙어 있어요. 조홍제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각 씨와 친구였고요. 이병철 회장이 삼성물산 창업할 때 사업 자금을 대주면서 같이 동업도 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8년이었어요. 당시 직급이 이병철 사장, 조홍제 부사장이었어요. 삼성물산에서 무역업으로 돈을 많이 번 뒤엔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설립에 주도적 역할도 했고요. 제일제당 사장도 지냈죠.

하지만 동업이란 게 끝이 안 좋을 때가 많잖아요. 이 두 사람도 그랬어요. 1962년이었는데요. 이병철 회장이 동업을 끝내자고 했고 ‘단돈’ 3억원을 제시합니다. 조홍제 회장 입장에선 14년간 동업했고, 사업 자금도 본인이 많이 대줬고, 심지어 회사 키우는 데 일조했는데 나가라고 했으니까 얼마나 서운했겠어요. 소송까지 생각했다가 접었다고 해요. 그리고 뒤늦게 설립한 게 효성입니다. 삼성보다 더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 효성으로 했다는 말도 있어요.

어쨌든 이분이 효성을 세우고 제일제당처럼 제분업도 했고 무역업도 했는데요. 결정적으로 나일론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됐죠. 1966년에 울산에 나일론 공장을 세웠어요. 나일론은 193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나온 합성섬유입니다. 합성, 그러니까 석유 화합물이란 의미고요. 섬유는 가느다란 실을 의미해요. 당시 듀폰의 광고가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다’였대요. 천연 섬유에 비해 질기고 잘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나일론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게 여성 스타킹이었어요. 이후에 가방이나 옷의 소재로도 엄청나게 많이 쓰였고요. 또 산업용 소재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효성의 나일론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효성그룹은 나일론뿐 아니라 타이어 사업, 이건 나중에 한국타이어가 됐죠. 타이어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타이어코드, 군화나 부츠 소재를 만드는 피혁, 전력망 설비 사업 등등으로 확장하고요. 한때 재계 서열 10위 이내에 들 정도로 사세가 커져요. 한때라고 말한 건 지금은 서열이 많이 내려갔기 때문인데요. 여러 번 위기도 맞았고 그룹이 쪼개지기도 했고요.

조홍제 회장은 아들이 셋 있었는데요. 장남인 조석래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줬어요. 둘째인 조양래 회장에게는 한국타이어를 줬고요. 지금은 한국앤컴퍼니로 이름이 바뀌었죠. 셋째 조욱래 회장은 잘 알려지진 않았는데 대전피혁을 물려받았어요.

◆스판덱스·타이어코드 세계 1위 등극
조석래 회장도 대기만성 스타일입니다. 원래 이분은 기업인이 아니라 교수나 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해요. 일본 와세다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화학공학 석사도 했어요.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가 1966년에 조홍제 회장이 “한국에 돌아와서 사업을 도와라”라고 해서 부랴부랴 짐을 싸 들어왔다고 합니다.

1966년은 동양나일론이 세워졌을 때잖아요. 당시에 한국은 나일론을 만드는 기술이 당연히 없었고요. 독일 설비와 기술을 들여왔는데, 조홍제 회장이 공장 설계와 운영은 독자적으로 하겠다고 나섰어요. 당시엔 굉장히 큰 도전이었던 게 공장 짓기 위해서 외국에서 돈을 빌렸거든요. 잘 안 되면 쫄딱 망할 수도 있었어요. 조홍제 회장이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첫 시운전 때 직접 가지도 못했다고 해요. 화학공학 전문가인 조석래 회장을 대신 보냈다고 합니다.

조석래 회장은 엔지니어, 기술자였으니까요. 기술에 당연히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 들어온 이듬해인 1967년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갔는데요. 신혼여행지가 동양나일론 기술자들이 제조 공법을 배우고 있었던 이탈리아 포를리란 곳이었어요. 여기서 다른 직원들과 밤 늦도록 기술을 갖고 토론을 했다고 해요.

조석래 회장은 나일론 기술을 빠르게 익힌 뒤엔 또 다른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로 확장해요. 폴리에스터는 나일론과 유사한데, 가격이 좀 더 저렴하고 염색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어서 옷에 더 많이 쓰이고요. 또 이런 응용 제품 말고, 아예 석유화학 분야까지 진출해보자고 해서 폴리프로필렌 사업에도 도전해요. 폴리프로필렌은 쉽게 말해 플라스틱 원료인데요. 열에 강해서 음식 담는 용기 같은 걸로 많이 쓰이죠.

여기에 나일론을 소재로 타이어코드 국산화에도 나서 1978년 성공했고, 결국 세계 1등까지 했죠. 현재 효성의 주력 사업인 스판덱스도 있어요. 1992년 세계에서 4번째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해요. 스판덱스 사업은 코로나 팬데믹 때 ‘대박’이 나요. 이 사업 하는 효성티앤씨가 2021년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넘깁니다. 스판덱스가 레깅스의 소재거든요. 나일론이 스타킹으로 꽃을 피웠다면 스판덱스엔 레깅스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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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세로 이익 급감
조석래 회장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3세인 조현준 회장과 그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이 끌고 가야 해요. 실은 이들 형제 사이에 조현문 씨가 있는데요. 부친과 형의 경영 방침에 맞서 싸우다가 2011년에 축출됐어요. 이때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검찰 수사도 받고 그룹이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어요. 조석래 회장은 이때부터 암 투병을 했죠. 그래서 일찍부터 계열분리를 염두에 뒀어요. 효성티앤씨를 비롯해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을 형인 조현준 회장에게 주고요.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에겐 타이어코드 사업을 하는 효성첨단소재를 맡기기로 해요.

문제는 전반적으로 효성 계열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이죠. 효성티앤씨는 코로나 때 대박이라고 했는데, 이후에 레깅스 열풍이 조금 꺾인 데다 중국에서 무식하게 스판덱스를 많이 찍어내서 공급과잉 상태가 됐어요. 조 단위로 이익을 냈던 게 2023년 21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어요. 효성화학은 이익이 감소하다 못해 수천억원씩 적자를 냈어요. 석유화학 분야도 중국에서 너무 제품이 많이 나와서 공급과잉 상태가 이어졌거든요. 또 다른 캐시카우인 효성첨단소재 또한 타이어코드가 잘 안 팔려서 2021년 4000억원대 이익을 낸 뒤에 계속 감소하고 있어요. 2023년 영업이익은 1000억원대 수준이었고요.

효성은 화려하진 않지만 굉장히 탄탄한 사업을 일궈왔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룹 차원에서 수소 사업을 키우고 있는데요. 수소가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히고 있어서 이 시장을 선점하려고 해요.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를 키운다고 해요. 탄소섬유는 ‘슈퍼섬유’로도 불리죠. 과거 나일론 광고할 때처럼 강철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이건 실제로 그렇고요. 항공기 소재로 많이 쓰여요. 일본 도레이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인데, 효성이 계속 공장 설비를 확장하고 있어요. 이왕이면 여기도 세계 1등 하면 좋겠습니다. 효성 3세들은 또 어떻게 회사를 키워갈까요. 조홍제 회장의 바람대로 재계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될지 궁금합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