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역삼동 업비트 라운지 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한국경제
지난 24일 서울 역삼동 업비트 라운지 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한국경제
“그래서 코인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게 있어? 왜, AI나 인터넷처럼 말이야.”

필자에게 이 질문을 한 친구는 2017년에나 비트코인 거래를 했고 최근 크립토 시장의 현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전통 금융투자업계 종사자이다.

이 친구는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정말 그동안의 업계 및 기술 변화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이 친구의 질문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년간 업계에서는 블록체인 확장성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었고 실제로 무수히 많은 실험적인 개념들이 등장했다.

확장성을 개선하는 레이어2, 상호 운용성을 지원하는 솔루션, 월렛 UX/UI 개선, 계정 추상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보안을 활용한 리스테이킹, 저렴한 가스비(심지어 가스비가 무료인 솔루션도 있다), 빠르고 저렴한 레이어1 등 실제로 과거 대비 기술 및 인프라단에서의 개선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블록체인 사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그러나 블록체인은 백엔드 기술이기에 관련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게다가 디파이(defi), NFT, 게임, 소셜 등의 앱은 크립토 월렛 사용이 익숙한 소수의 유저들만 사용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전혀 공감하기 어렵다.

스테픈(걸으면서 돈을 버는 move to earn 앱), 프렌드 테크(창작자가 자신의 소셜 영향력을 토큰화하여 거래할 수 있게 만든 앱) 등의 컨슈머 앱이 등장하며 대중화 촉매제 역할을 하는 듯했지만 토큰이 출시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서비스에 대한 인기는 떨어졌고 유저들은 이탈했다.

이후 판타지 탑(크립토 인플루언서들을 기반으로 한 카드 게임), 캣티즌(텔레그램 기반 모바일 게임), 워프캐스트-파캐스터(탈중앙화 SNS) 등이 등장했지만 아직은 여전히 크립토에 익숙한 사람들만 사용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남아 있다.

크립토 앱을 사용하고 지갑 사용 및 온체인 거래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일간활성이용자수(DAU)의 최대 풀을 필자는 1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봇이나 에어드랍 목적의 공장은 제외한 수치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충성도가 매우 낮은 유저들이라는 것이다. 앱을 사용하는 동기가 대체로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현재 사용하는 앱이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토큰을 출시했는데 가격이 하락) 아니면 더 나은 수익 기회가 보이면 (아직 토큰이 출시되지 않은 새로운 앱이 출시) 지체없이 떠난다. 따라서 앱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서비스 출시 초기 유저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시 이후 유저를 잔류시키는 것이 어려운 과제다.


한때 암호화폐 대중화(크립토 매스어덥션), 웹 2.5라는 슬로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마치 우리가 TCP/IP 프로토콜이나 모바일 OS 작동원리를 몰라도 매일 편리하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듯이 언젠가 암호화폐-블록체인을 잘 모르는 대중도 관련 앱 서비스를 매일 사용할 날이 온다는 뜻이다. 이메일과 포르노가 인터넷 대중화에 기여했듯이 언젠가 암호화폐-블록체인도 킬러앱이 등장하면 금세 대중화가 될 수 있고 여기에 기존에 존재하는 웹2 기업들이 가진 인프라와 네트워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소셜 카지노게임 된 코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암호화폐 대중화에 대해서 조금 회의적이다. 이때 대중화의 정의는 ETF를 통해 금융자산화되고 투자자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블록체인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을 뜻한다.

물론 크립토가 일부의 영역에서 대중적으로 쓰일 점은 거의 확실해보인다. 가령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송금·결제에 활용되는 사례, 비자·마스터카드와 같은 결제 네트워크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사례, 블록·페이팔 같은 페이먼트 업체가 비트코인 구매 및 결제를 지원하는 사례, 텔레그램 같은 글로벌 메신저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지원하는 사례 등을 고려하면 크립토는 일부 영역에서 대중화될 잠재력이 크다. 다만 크립토 네이티브 앱이 일반 대중에게 어필하고 수백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하는 것은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크립토는 일종의 2030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게임, 소셜 트레이딩, 카지노, 엔터테인먼트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산업이다.

“그래서 코인이 우리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냐”라는 질문에 코인을 위에 언급한 산업으로 대체해도 답은 동일하다. 위에 언급된 산업들이 인류의 삶에 딱히 유익한 가치를 제공하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암호화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크립토를 금융·기술 산업으로 분류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최근 들어 관심 경제(온라인상에서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관심이 희소한 자원이 되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와 밈코인이 득세하면서 크립토가 더더욱 게임·카지노·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가까워진 것 같다.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고 앞으로 없어질 것 같지 않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따라서 크립토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거나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사람, 혹은 투자·트레이딩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코인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게 있어? 왜, AI나 인터넷처럼 말이야.” 친구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한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글쎄, 글로벌 결제 및 송금 분야에서는 확실히 쓰임새가 있는 듯 하고 인프라가 많이 발전하기는 했는데 일반인들이 체감하기는 어렵지. 나는 크립토를 부를 창출하고 이전하는, 젊은 세대가 즐기는 일종의 인터넷 커뮤니티이자 소셜 카지노 게임라고 생각해.”

답변을 들은 친구는 이렇게 답변했다. “아, 그럼 돈은 되겠구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안 화폐를 꿈꾸며 비트코인을 만들었던 사토시 나카모토는 오늘날 코인판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한중섭 ‘어바웃 머니’, ‘비트코인 제국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