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액셀러레이터] ‘경쟁’ 대신 ‘공생’… ‘혁신’만이 살길, 금융권이 들썩인다

△ 지난해 12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오픈뱅킹 서비스 출범식’에 참석해 신한은행의 오픈뱅킹 활용 서비스 시연을 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DB


[한경 잡앤조이=이도희 기자] ‘안정’을 미덕으로 여겨온 금융사들이 ‘혁신’의 선봉장이 됐다.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로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는 등 기존 영업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제 ‘누가 먼저 변화하느냐’가 금융사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생존전략이 됐다.


국내 금융사들이 지속적인 저성장 저금리 기조의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다. 수년에 걸쳐 금리인하 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중은행 간 경쟁에 더해 이제는 인터넷은행뿐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T플랫폼 공룡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 특히 카카오는 카카오은행과 바로투자증권 투자 등을 통해 기존 금융영역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게다가 올 초 갑작스레 불어 닥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객의 금융자산을 다루는 만큼 ‘보수와 안전’을 미덕으로 여겨온 전통적 금융업이 잇따라 새로운 사업전략을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건 그래서다. 시장의 목소리에 특히 민감한 스타트업과의 협업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IT금융 스타트업 위해 발 벗고 나선 정부

이 같은 금융사와 스타트업 간 협력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는 ‘핀테크’다. 핀테크는 크게 지급 결제, 금융데이터 분석, 금융 소프트웨어, 플랫폼 서비스로 나뉜다. 즉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속 모든 서비스가 핀테크를 품고 있다.


금융감독원 핀테크혁신실에 따르면, 2019년 1월말 기준 시장가치가 1조원이 넘는 글로벌 핀테크 유니콘 기업은 총 39개사로 이들은 총 162조원의 가치를 보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2018년 기준 유니콘 기업은 16개로 한국의 간편송금 업체 ‘토스’는 이 안에 포함되는 유일한 국내 토종 스타트업이다.


핀테크 외에도, 기존 금융 산업이 탐내는 스타트업의 자산은 무궁무진하다. 정부와 경제계는 이 같은 IT금융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정부는 2019년 4월 1일자로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인가, 영업행위 등의 규제 적용을 최대 4년간 유예·면제함으로써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신속하게 테스트·사업화 할 수 있다.

제도 시행 후, 16개 기업이 시장으로부터 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아 총 1364억 원의 신규투자를 유치했다.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핀테크 기업 ‘페이플’은 자본금 2천만원으로 시작해 글로벌 VC로부터 3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반려동물 건강증진형 펫보험 플랫폼 서비스 기업 ‘스몰티켓’은 총 15억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온라인 대출비교 플랫폼을 운영 중인 핀다, 팀윙크, 핀셋은 서비스 출시와 함께 각각 45억원, 30억원, 20억원의 신규투자를 유치했다. 7개 핀테크 기업은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홍콩 등 총 14개국 진출을 추진 중이다.


[금융권 액셀러레이터] ‘경쟁’ 대신 ‘공생’… ‘혁신’만이 살길, 금융권이 들썩인다



자회사 VC에 육성기관 설립… 스타트업 주목하는 금융권

여기에 기존 대형 금융사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은행을 포함해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그룹들은 스타트업 투자와 같은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금융업계에서 불고 있는 벤처캐피털(VC) 바람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금융권은 단순 펀드 출자자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직접 투자를 위해 VC를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이 최초로 은행 VC인 KB인베스트먼트를 보유한 데 이어 하나금융이 2018년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형 하나벤처스를 설립했다. 하나금융은 현재 하나벤처스를 VC 자회사로 독립 운영 중이다. 작년에는 NH농협금융지주도 VC를 신설했다. BNK금융은 기존 VC를 인수해 BNK벤처투자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또 다른 지원 플랫폼은 육성기관인 ‘핀테크 랩(Lab)’이다. 은행은 이 곳을 통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 사업성 검토, 법률상담, 자금조달 등을 지원한다. VC를 통해 직접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당초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을 주 목적으로 했던 것을 최근에는 ‘은행과의 공생’이 가능한 모든 분야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 육성기관을 통해 스타트업과 이미 신사업 협력을 성사시킨 은행도 있다. 특히 챗봇·로보어드바이저 등의 영역에서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례가 두드러진다.


인공지능(AI) 플랫폼 전문 기업 ‘마인즈랩’은 하나은행의 스타트업 지원사업 ‘원큐애자일랩(1Q Agile Lab)’ 4기 출신으로, 2017년, 이 은행으로부터 1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울러 하나은행의 AI 금융 서비스 ‘하이(HAI)뱅킹’도 함께 구축했다.


원큐애자일랩을 담당하는 하나은행 오픈 이노베이션셀의 이영주 셀장은 “최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이뤄지면서 사물인터넷 등으로 모든 것이 다 연결되고 있다”며 “금융산업 역시 과거의 전통적인 형태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2017년 신한은행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 우선협상대상자로 인공지능(AI) 및 블록체인 기술 전문기업 ‘데일리인텔리전스’를 선정했다. 당시 금융권 인공지능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로 입찰 경쟁도 치열했는데, 스타트업인 데일리인텔리전스가 최종 선정된 것이다. 이 회사는 ‘다빈치’라는 인공지능솔루션을 핵심 서비스로 가지고 있다. 우리은행의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센터 위비핀테크랩 출신이기도 한 이 회사는 2017년 8월, 우리은행과 디지털 화폐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안창주 스타트업 VC ‘엔슬파트너스’ 이사는 “금융권이 대출 등 간접투자 형태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에 직접적으로 투자하면서, 주로 스타트업 초기단계에 투자하던 AC나 VC와 다른 시각에서 혁신 기업을 발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