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장예림 인턴기자] 하루를 무사히 보낸 우리에게 낯선 두 글자 ‘죽음’. 이 두 글자와 27년째 함께하고 있는 명장이 있다. 바로 유재철 대한민국 장례문화원장이다. 대한민국 전통장례 명장 1호이자 국가 무형문화재 111호 사직대제 이수자인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축복’이라고 한다. “죽음을 알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 혹자가 묻길, 어떻게 하면 잘 죽는 거냐고 한다. 잘 사는 게 잘 죽는 것이다.”
1994년부터 장례 일을 해오고 있는 유 원장은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을 시작으로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지낸 뒤 ‘대통령 염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기회라는 게 엉뚱하게 생기잖아요. 친구 따라서 장의사가 됐는데 하다 보니까 잘 맞고 보람도 돼서 여기까지 왔지요. 전통장례 전문가가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유 원장은 2002년부터 해인사, 통도사 등 전국의 사찰을 돌며 불교 장례(다비, 茶毘)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했다. 201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80번의 다비를 진행한 유 원장은 ‘사람 중심’의 장례문화를 바로 세우는 게 장의사로서 마지막 목표라고 한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손님 ‘죽음’. 그 죽음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유 원장을 직접 만나보았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사(死)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어릴 적부터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면 집안에서 직접 염을 했다. 제가 처음 염을 하게 된 것도 조모 염을 할 때 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들어가서 처음 했었다. 당시 나이 20살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다른 집안에서도 염을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외부의 도움은 받지 않고 관만 사서 오고 나머지는 우리 집안사람들이 다 했다. 수의, 상복도 어머님과 외숙모님께서 직접 지어서 장례를 치르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보니 장례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염’을 하게된 시기는 언제인가
“1994년이었다. 친구 중에 장의사 일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장의사라는 직업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장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집안 어른들이 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계기로)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염을 직접 하셨다고 들었다
“전직 대통령 중에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임종하셨을 때 도움을 드렸던 것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27년 만에 지내는 대통령 장례였기에 정부에서도 매우 막중한 국가 행사로 여겼다. 2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문 장의사 혹은 장례전문가가 없었기에, 그 당시 장례 쪽으로 가장 경력이 많았던 나에게 자연스럽게 의뢰가 왔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 장례에 대한 분석이나 기록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조선 왕실의 염습 및 입관 의식부터 역대 대통령 장의록을 분석해 명정 문구와 축문 양식 등 세세한 부분까지 문헌의 고증을 거쳐 장례를 진행했다. 그 이후로 노무현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제가 직접 염을 해서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례는 언제인가
“10년 전 법정 스님 장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0년 3월, 딱 10년이 넘었다. 역대 대통령들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의 큰스님 마지막 길도 여럿 모셨지만, 제가 일생에 가장 존경했던 인물인 법정 스님을 직접 모셨던 것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두 달 반쯤 전에 의뢰가 왔었다. 그때 당시 법정 스님의 일곱 제자 중의 한 분인 길상사 주지 스님, 송광사 총무, 봉은사 부주지스님과 함께 장례를 기획했다. 일반인 장례와는 다르게 조문객들이 수만 명이 오는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때문에 단순히 장례 진행뿐만 아니라 조문객 맞이, 주차, 식사대접 등 까지 모든 행사의 과정들을 세심하게 기획했었다.”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인가
“현재 한국의 장례는 3일 장, 5일 장 등과 같이 장례 ‘기간’에 대한 관례는 있는데, ‘절차’나 ‘형식’에 대한 관례는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고인의 지난 삶이 중심이 되기보다 조문객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끝나버리는 형식적인 장례문화가 돼 버린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인이 떠나기 전 추모식 행사에서 전통 판소리와 국악 연주 등으로 고인을 기리는 장례 식순 등을 만들었다. 또 아직까지 일본식 장례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데, 상주의 팔뚝에 완장을 차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완장 대신 나비 모양 베 상장을 달고, 일본의 국화 대신 다른 꽃을 장례 꽃으로 쓰는 등 전체적인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바꾸기 위해 힘쓰고 있다.”
원장님이 지향하는 장례문화가 있다면
“결혼식, 돌잔치만 해도 사람 중심의 행사이지 않는가. 행사에 온 사람들에게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해 준다. 하지만 장례식은 그렇지 않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한 관심은 없다. 지인들끼리 모여 앉아 술 한잔 걸치는 자리가 돼버린 지금의 현실이 참 안타깝다. 고인 중심의 장례문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지향하는 바이다.”
언제까지 염장이 일을 하실 생각인가
“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례문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일평생 이어가고 싶다. 장의사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장의사라는 직업 인식 개선과 장례문화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딸과 함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장례지도사에 대한 강의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장례지도사 자격증 가진 사람이 15000명 정도 되는데, 그분들에게 우리 장례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
장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직업에 귀천이 없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나도 ‘(직업이 장의사라) 딸 시집 어떻게 보낼거냐’는 탄식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장례도 문화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또한 장례지도사, 장의사라는 업은 고인을 만나는 일인 만큼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일로써 접근해서는 어렵다.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는 마음으로 매사 임해야 한다. 끝으로 장례와 관련된 산업은 사회복지 분야 중에서도 그리 공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장례 분야에서) 본인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장님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이란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손님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을 보면 ‘죽음’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운명’이라고 하지 않느냐. 그도 17살 때부터 줄곧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오늘이 일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순간순간 선택에 있어서 확실해진다. 삶은 맞이하는 죽음과 당하는 죽음이 있다고 한다. 이 둘 중 전자의 경우가 되기 위해서는 삶 속에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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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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