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시간도 'OTT 시청'으로 바꾼 코로나19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내 취향' 믿어도 될까

[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 / 전누리 대학생 기자] 김영곤(단국대 3)씨는 최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김 씨는 "보통은 여가시간에 친구들과 축구를 즐겼지만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밤 9시 이후 식당 영업 금지 조치 등 제한이 많아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취미는 힘들다. 여가시간이 무언가를 시청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코로나19와 콘텐츠 이용: 변화와 전망'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이 코로나19 이후 영상 콘텐츠 플랫폼에 지출하는 월평균 금액은 대폭 증가한 상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평균 소비지출 금액은 6650원이었으나 코로나19 발생 이후의 금액은 13119원으로 거의 두 배 증가했다. 한 가지 OTT 서비스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이 다중 OTT 구독자로 변화하기도 했다. 콘텐츠를 이용하는 공간 역시 코로나19 발생 이전 '집에서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답한 수준은 52%에서 코로나19 이후 약 68%으로 크게 증가했다.
△일라이 파리저의 필터 버블에 관한 테드 토크.(사진=유튜브)
△일라이 파리저의 필터 버블에 관한 테드 토크.(사진=유튜브)
'취향 대로 추천하는 콘텐츠', 정말로 내 취향일까
장가린(인하대 4)씨는 최근 자신의 취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장 씨는 평소 이용하는 플랫폼에서 추천하는 영상들을 자주 시청한다. 알고리즘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지속적으로 추천해주는 시스템 속에서 장 씨는 특정 연예인, 장르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장 씨는 그러한 상황에서 "내 취향대로 알고리즘이 추천을 해주는 것인지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다보니 실제 취향이 바뀐 건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 씨와 같은 상황은 알고리즘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현상이다. 필터 버블이란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필터링 된 정보 안에 갇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터 버블은 미국 시민단체 무브온(Move On)의 이사장 일라이 파리저(Eli Pariser)가 저술한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처음 제기됐다. 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는 "필터 버블에 갇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용자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필터 버블에 거부감을 갖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버블 안이 편하고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용자는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고 좋아할 만한 것을 추천한다. 물론 사용자는 그 추천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런 '선택-추천'의 과정이 누적될수록 인공지능은 사용자가 정확히 원하는 콘텐츠에 대한 부가적인 이해도를 쌓아간다. 누적된 데이터로 추천한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추천 서비스 제공자는 대부분 사기업이다. 추천의 목적은 추천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해당 서비스에 오래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용자의 개인적, 사회적 취향을 고려하여 그쪽으로 몰아갔을 때, 더 오래 해당 서비스에 머물기 때문에 필터버블을 조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고리즘은 많은 사용자들이 쓰면 쓸수록 정확해진다. 부 교수는 넷플릭스가 가장 좋은 예라고 강조했다. 추천을 잘할 뿐만 아니라 그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같은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기까지 한다. 없던 걸 예측해서 만들어내고 성공까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전개라는 것이다.
△필터 버블을 형상화한 그림.(사진=미디엄)
△필터 버블을 형상화한 그림.(사진=미디엄)
맞춤형 콘텐츠 소비가 이끄는 '지배 당하는 소비자들'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의 발달은 분명히 이점을 갖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으며 그에 따른 피로감도 느낀다. 테크 기업들은 편리한 사용자 환경을 위해 알고리즘 추천을 이용하는 것이다. 왓챠 이용자인 장 씨는 "시청 이력과 취향을 기반으로 영화를 추천해줘서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필터 버블은 개인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 2020년 발표된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신유진 씨의 논문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한 필터 버블 현상 연구'에선 이러한 필터 버블 현상으로부터 오는 문제점을 조명했다.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계정을 2개 개설해 일주일간 각 계정을 보수와 진보 성향으로 훈련시켰다.

분석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 계정에선 보수 성향의 영상이, 진보 계정에선 진보 성향의 영상이 추천되는 게 확인됐다. 부 교수는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짜장면만 먹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짜장면만 있는 줄 아는 것. 이게 필터버블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필터 버블의 또다른 문제점은 사용자들이 상업적 가치가 있는 것에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들 중 서비스 운영자에게 이윤이 가장 많이 남는 콘텐츠가 우선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맞춤형 서비스가 발전할수록 소비자가 서비스에 종속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비슷한 현상으로는 '에코 챔버'가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오직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해 점차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부 교수는 에코 챔버 현상 역시도 사회적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한다. 특히 극단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정보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필터 버블과 유사한 문제점을 가진다.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도 있다.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고, 얼마나 자주 시청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개인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군가 자신의 시청 이력과 기호를 끊임없이 살펴보는 것에 대한 경계는 늦출 수 없다. 축적된 데이터가 제3자에게 넘겨져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에는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해가는 시기인 만큼 필터 버블이 끼칠 수 있는 영향이 더욱 치명적이다. 성인의 경우에도 편향된 세계를 인지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과정은 어렵다.

맞춤형 서비스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생겨난 서비스인 만큼 맞춤형 서비스로 누릴 수 있는 효용 역시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들이 각자의 개인적·사회적 취향에 몰두하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또는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특히 디지털에 민감한 아동 성장 과정에서 다양함과 새로움이 주는 장점들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