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 프리랜서 디자이너 '다이노' 박종원 씨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을 즐겨 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다이노’. 영화 같은 분위기를 완성하는 사진 필터부터 고퀄리티의 여권 케이스, 아기자기한 배지 디자인까지 손대는 것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이너다.
‘다이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프리랜서 디자이너 박종원(24) 씨는 대학교 재학 중 여행 크리에이터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행 정보를 나라별로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이 그의 주 콘텐츠였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여행 관련 블로그 50개 이상을 찾아보며 알짜 정보를 수집했고, 산업디자인 전공자답게 근사한 디자인 레이아웃까지 완성해 보는 재미를 높였다.
△ 박종원 씨는 현재 KBS 예능 프로그램 '배틀 트립'의 스탬프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사진 제공=박종원)
20개국의 랜드마크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원 안에 그려 넣은 디자인도 여행 커뮤니티에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운 좋게 방송 작가의 눈에 띄어 여행 프로그램 ‘배틀 트립’의 스탬프 디자이너로 전격 채용되는 기회까지 얻었다. ‘다이노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보정 필터를 무료 배포하며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2017년 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100개 이상의 필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했는데, 덕분에 그의 SNS 팔로워 숫자는 1년 새 3만 명 이상 늘었다.
“여행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녔을 것 같은데 사실 해외여행 경험이 별로 없어요. 일본, 태국, 캄보디아가 전부죠. 여행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주는 정보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분들의 모습에 힘이 났죠. 일종의 ‘관종’이랄까요? 요즘은 ‘관종’이라는 단어가 좋더라고요. 그만큼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 같아서요.”
△ 최근 제작한 여권 케이스. 업드림코리아와 함께 하는 2차 크라우드 펀딩액이 1억원을 훌쩍 넘었다.
사극 마니아가 만든 여권 케이스, 1억 펀딩 달성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여행용품에도 관심이 향했다. 특히 여행의 빠질 수 없는 단짝, ‘여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일본 여권은 해당 국가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반면 우리나라 여권은 디자인 포인트가 약해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여권 케이스를 하나 구입할까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결국 박 씨는 자신만의 여권 케이스를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2015년에 경복궁을 테마로 한 여권 케이스를 제작했죠. 컴퓨터로 디자인을 한 뒤 케이스에 전면 프린팅 했어요. 혼자 보기는 아까워 개인 SNS에도 올렸는데 사람들의 판매 요청이 빗발치더라고요. 지금 와 생각하면 케이스에 프린팅만 한 것이라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는데도 당시에는 반응이 좋았죠.”
1만원 가격의 100개 한정 판매는 금방 매진을 기록했다.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그의 ‘관종’ DNA는 신나게 춤을 췄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여권 케이스를 꾸준히 제작하는 원동력이 됐다. 박 씨는 태극 문양, 호랑이 등을 콘셉트로 한 여권 케이스도 선보였다. 모두 100개 한정 수량으로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완판’을 기록했다.
△ 박종원 씨가 펀딩 전 제작했던 여권 케이스 (사진 제공=박종원)
다이노 여권 케이스는 모두 한국적인 요소를 테마로 잡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간 디자인은 해외 반응은 좋은 반면 국내에서는 흥행이 어렵다는 우려가 많다. 특히 2030세대는 한국적 디자인을 ‘촌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그들을 타깃으로 할 경우 실패 확률이 더욱 높다. 하지만 다이노 여권 케이스는 SNS의 주 사용자인 2030세대에게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적인 느낌이 담겨야 하는 제품군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권 같은 것이 그렇죠. 나를 대표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여권 케이스 디자인은 무조건 화려하고 예쁘게만 만들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느낌을 담자는 것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죠. 그리고 그 생각에 다른 분들도 많이 공감한 것 같아요. ‘한국 여권이니 한국 느낌이 나야지’라고요.”
네 번째 여권 케이스를 제작할 때는 기획에 좀 더 공을 들였다. 여권을 들고 있는 여행자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국민이 왕이다’라는 슬로건을 떠올렸고, 여권케이스에 왕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넣기로 했다. 박 씨는 왕이 입는 곤룡포의 오조룡 문양을 선택했다. 왕을 떠올리는 이미지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평소 사극을 즐겨본 덕에 오조룡의 이미지가 단 번에 뇌리에 꽂혔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 '다이노' 박종원 씨
고급스러움을 주기 위해 다색의 케이스는 단색으로 변경했고 전면 프린팅에 후가공을 더해 금박을 입혔다. 새로운 디자인이 공개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샘플 이미지만 올렸을 뿐인데 댓글에 구매 요청이 쇄도했다.
“여행 관련 사업을 하는 업드림코리아 대표님과 크라우드 펀딩까지 기획하게 됐어요. 여행을 좋아해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디어가 나왔죠. 여권 케이스로 펀딩을 하면 좋은 반응이 올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5천만원을 목표로 펀딩을 시작했는데 결국 1억원을 달성하는 엄청난 성과를 냈죠.”
1차 펀딩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최근 박 씨는 앵콜 펀딩을 시작했다. 파란색, 빨간색 두 가지로만 제작했던 것을 흰색, 녹색, 파란색, 빨간색 등 4가지로 늘렸다. 금박이 날린다는 피드백에 후가공에 더욱 신경 썼고, 포장 박스로 따로 제작해 퀄리티를 높였다. 반응은 1차보다 더 후끈했다. 1차 때는 마감 3일 전 1억원을 기록했던 것이 2차 때는 오픈 3일 만에 1억원을 넘어섰다.
△ 김연아 배지 컬렉션. 김연아 선수 생일선물로 전달 예정이다.
100만원 들여 만든 김연아 배지, 생일선물로 전달 예정
최근 좋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김연아 배지’로 SNS에서 또 한 번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 박 씨는 평창올림픽을 기념해 개인적으로 김연아 선수의 배지를 제작해 그 과정을 SNS에 올렸다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 연예뉴스 매체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평창올림픽 때는 개인 소장용으로 좋아하는 선수들의 핀배지를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김연아 선수의 배지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찾아보니 김연아 선수의 전신을 담은 배지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랑프리 파이널,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등의 굵직한 대회 때의 모습을 담은 17개의 배지를 제작했어요. 제작비만 100만원이 넘었죠. 배지는 김연아 선수의 생일 선물로 전달할 예정이에요.”
△ 평창올림픽을 기념해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배지에 담았다.
배지는 주얼리 공예에 속해 개당 단가가 7~8만원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대량으로 제작할 경우 단가가 내려가지만 딱 1개씩만 제작하다 보니 100만원 이상이라는 거금의 제작비가 나왔다. 박 씨는 생각보다 비싼 금액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배지 디자인에 대한 애착으로 쿨하게 제작을 진행했다.
“김연아 선수를 시작으로 좋아하는 셀럽의 배지 컬렉션을 꾸준히 만들어갈 계획이에요. 수익과 상관없이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그동안 무료 배포했던 필터를 모아 5월 중에는 사진 필터 앱을 출시할 계획도 있고요. 앞으로도 장르 구애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사진=이승재 기자
장소 협찬=스튜디오썸띵(02-33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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