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 사진 = 서범세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건만, 정작 손에 잡는 것은 얼마 안 된다. 충만했던 독서 의지는 매번 몹쓸 ‘귀차니즘’에 KO패 당하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혜성처럼 등장한 구세주 ‘북튜버’를 찾아보자. 이제는 책을 ‘읽지’ 않고 ‘보는’ 시대이니 말이다.
본명보다 ‘책읽찌라’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이가희(31) 씨는 웹 모바일 서비스 벤처기업 함(hham)을 운영하며 동시에 북튜버(책과 유튜버의 합성어)로도 활동 중이다. 국내 대표 북튜버로 손꼽히는 ‘책읽찌라’의 페이스북 팔로워 숫자는 4만8000명을 넘어섰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책읽찌라의 주요 콘텐츠는 책 한권의 내용을 요약해 3분가량의 짧은 영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한 권을 다 읽을 에너지는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을 위해 책 한권을 요점 정리해준다. 심야 라디오 방송 DJ도 울고 갈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족집게 과외 수준의 액기스 뽑기 신공으로 책읽찌라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6년 4월 시작 후 현재까지 약 290개의 콘텐츠를 업로드 했어요. 시즌 1, 2를 거쳐 지금은 시즌 3으로 주 2회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있어요. 영상 조회수는 평균 6만 정도인데, 가장 많이 나왔을 때는 50만 이상이 나온 적도 있죠. 평소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된 건지 저도 참 신기해요.”
△ 책읽찌라 영상 콘텐츠
‘장사 체질’ 덕에 유명 북튜버가 되다?!
이 씨는 크리에이티브나 방송인은 물론이거니와 책 관련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창업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을 뿐이다. 이 씨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장사 체질’을 자랑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CD를 구워 팔았고, 고등학교 때는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골라먹는 떡 카페를 모델로 한 사업계획서까지 손수 만들었다. 창업 꿈나무답게 대학을 진학할 때도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염두해 중국문화학을 선택했다. 친구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전생에 분명 아우네 장터에서 국밥을 팔았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 진학 후에는 창업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며 IT 관련 창업으로 관심사가 좁혀졌죠. 정보 불균형의 해소를 통해 IT가 만들어 가는 평평한 세상이 흥미로웠거든요. 직접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했고, 관련 업무를 좀 더 배우고 싶어 졸업 후에는 KT 온라인 커머스팀에 입사했죠.”
△ 사진 = 서범세 기자
장사꾼 DNA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 이 씨 역시 얌전히 회사 생활만 하지는 못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시간을 쪼개 모바일 서비스 등을 개발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모바일 앱의 기술적 업데이트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회사 생활보다 내 사업에 대한 갈증이 더 컸고, 결국 이 씨는 3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2013년 7월 퇴사했다.
이 씨는 퇴사 후 ‘원센텐스’라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스타트업을 꾸렸다. 원센텐스는 책 속의 좋은 글귀를 사진으로 찍으면 텍스트로 저장되는 모바일 앱이다. 스타트업을 위해 함께 모인 사람들 모두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떠올린 아이템이었다.
야심차게 시작했건만 기대만큼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7만 명 유저’라는 대박도 쪽박도 아닌 애매한 수치에서 맴돌았다. 이 씨는 적극적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팟캐스트, 카드뉴스, 서포터즈 모집 등에 힘을 쏟았다. 그 중에는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도 있었다.
“2016년 4월, 처음으로 페이스북의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페이스북에 라이브 기능이 새로 생긴 시기였거든요. 재미삼아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서 30분 간 책을 읽어주는 라이브 방송을 했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실시간으로 책을 읽어준다는 게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방송을 하며 태어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도 듣게 됐고요. 반응이 좋아 매일 밤 30분 동안 책 읽어주는 방송을 6개월 정도 했어요.”
△ 사진 = 서범세 기자
3분 영상에 책 한권이? 족집게 과외보다 나은 요점 정리 실력
책읽찌라가 입소문을 타며 출판사와 저자들에게서도 연락이 쏟아졌다. 광고 문의도 많아졌다. 사업 아이템인 ‘원센텐스’ 서비스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책읽찌라를 통해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씨의 장사꾼 피가 끓어 올랐다. 그녀는 사업 방향을 변경했다. ‘원센텐스’ 대신 책읽찌라의 영상 콘텐츠가 메인 비즈니스 모델로 거듭났다. 방송의 포맷도 변경했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페이스북 특성에 맞춰 30분간의 라이브 방송 대신 3분 가량의 편집 영상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하나의 영상에는 한 권의 책을 요약해 담았다. 모든 내용을 다 담기보다는 ‘액기스’라 부를 수 있는 핵심 내용만 압축한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시험 범위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던 스킬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은 책을 소개하기 위해 이 씨는 매일 최소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신간을 읽을 때도 있고, 직접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 페이스북 '책읽찌라' 페이지 캡처
“예전보다 책을 읽는 양은 늘어났죠.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자료를 찾아보는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읽었다면, 지금은 중요한 문장에 표시를 하는 방식이거든요. 표시한 문장은 다시 저만의 문장으로 정리하고, 그걸 스크립트로 만들어 영상 촬영에 사용하죠. 촬영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리는 편이에요.”
영상을 통해 소개하는 책은 깐깐한 기준으로 선택한다. 독자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는지, 흥미로운 내용인지, 추천·공유하고 싶은 내용인지 등의 질문을 모두 통과해야한다. 지식 습득의 욕구를 채워준다는 기획 의도에 맞춰 문학 작품보다는 자기계발 관련 분야의 도서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관련 도서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면 조회수가 훨씬 높게 나와요. 하지만 단순히 조회수만 높게 나오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국내 출판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싶거든요. 일 년에 도서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책이 7만 권이 넘지만 그 중 일부만이 주요 서점에 입점할 수 있죠. 책의 판매, 유통을 위해서는 출간 후 초기 판매가 굉장히 중요해요. 예전에는 도서 판매를 온오프라인 서점의 유통망에만 의존했지만 이제는 서평이나 카드뉴스, 영상 등 좀 더 많은 길이 열렸잖아요. 책읽찌라를 통해 좋은 책이 보다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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