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유일한 인재 기준은 ‘학력’

스펙으로 줄 세워 막연히 똘똘한 사람 뽑는 방식은 한계

이직률 높고, 직장 만족도 낮아

학력, 학벌주의 청산은 피할 수없는 흐름

정권 바뀌어도 NCS는 지속될 것


최근 삼성의 그룹 공채 폐지설이 불거지며 공채 제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스펙 줄 세우기’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국내 대기업 공채 제도는 스펙 과열, 학벌주의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돼왔다. 교육부 차관을 지낸 나승일 서울대 농산업교육과 교수(산업인력개발학 전공)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통한 직무 중심 인재 선발이 공채 제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NCS는 정권과 무관...‘머리 좋으면 뭐든 잘한다’는 착각 버려야”


나승일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농산업교육과 학사,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에서 산업교육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성화고 선진화, 전문대 강화, 농업교육 등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2003년부터는 직무능력표준화 연구를 진행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교육부 차관을 역임했다.


Q 현재 기업 공채 방식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1957년 삼성물산이 국내 최초로 공채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공채 전형을 도입한 취지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을 배제하고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하자는 것이었죠. 그러한 목적은 달성했다고 봅니다만, 학교에서 신입생을 뽑듯 신입사원을 성적 순으로 뽑는 것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입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다양한 형태인데 출신 학교, 외국어 능력 등 객관적 지표로만 줄을 세우면 직무에 맞는 인재를 선발할 수 없습니다. 입사 후에도 본인의 의사와 별개로 다른 직무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도 퇴사율이 높아지고,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를 보게 되죠.


Q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 좋으면 뭐든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적성에 맞지 않거나 흥미가 없거나, 혹은 기대했던 대우를 받지 못하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죠. 때문에 직원을 채용할 때는 해당 직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야 합니다. 스펙으로 줄을 세워 막연히 똘똘한 사람을 뽑는 것과는 다르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 내 직무를 관련성에 따라 그룹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사관리, 사무직, 연구개발직, 영업직 등으로 분리하고 해당 영역에서 필요한 능력을 수집해야 합니다. 그것에 기초해 인재를 선발해야죠.

Q 최근 삼성의 그룹 공채 폐지설이 흘러나오는데요.

기업이 그룹 공채를 폐지하는 것은 긍정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준비하는 취준생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면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업에서는 채용 제도의 변화에 대해 미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트랙으로 인재를 뽑을 것인지 사전에 공지하고, 입사 후에는 어떤 커리어 패스를 쌓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합니다. 또 채용 계획을 1년 이상 일찍 공지해 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NCS는 정권과 무관...‘머리 좋으면 뭐든 잘한다’는 착각 버려야”


Q NCS 기반 채용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NCS의 핵심은 직무마다 필요한 능력을 기준으로 삼아 그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는 것입니다. 직무마다 필요한 능력이 다르기에 불필요한 비교 우위 경쟁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각자의 적성, 흥미에 맞춰 자신의 일을 찾아갈 수 있죠. 조직마다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제대로 채용할 수 있으니 생산성과 만족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Q NCS 준비 작업에 오랫동안 참여하셨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기억이 있습니까.

NCS를 연구할 때 외국 사례를 많이 봤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EU(유럽연합)의 경우 국경은 있지만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보니 A나라에서 성장한 사람이 B나라에서 일자리를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라마다 교육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인재를 평가하고 인증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죠. 그래서 EU에서는 직무마다 기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직업 종사자에게 필요로 하는 능력을 1부터 8까지 8단계로 나눴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에서 최고의 능력을 갖춘 사람(박사 학위 소지자, 자격증 소지자 등)을 레벨 8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인재 기준은 학력 내지는 학위더라고요. 제도적으로 완전히 공고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교사, 공무원의 호봉을 산정하는 규정도 학력을 기준으로 할 정도입니다. 9급 공무원의 경우 대학 졸업자는 고등 졸업자보다 4호봉 높게 받습니다. 교사의 경우 사범대 출신이 교직이수를 한 교사보다 1호봉 높게 시작하죠. 이러한 학력, 학벌주의를 청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Q 민간 기업의 참여가 아직은 저조합니다.

국정 과제라고 하면 안 해도 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인상이 있고, NCS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취지나 방법론이 제대로 전달되고, 순차적으로 성공 사례를 많이 알려나간다면 민간에서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간 기업에서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니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학력주의 문화를 해결하고, 모두가 만족도 높은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NCS는 정권과 무관...‘머리 좋으면 뭐든 잘한다’는 착각 버려야”


Q 새 정부가 들어서도 NCS 사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현 정부에서 NCS를 만들었다고 오해하는데, NCS는 오래전부터 시작된 사업입니다. 2002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국가직업능력표준(NOS)사업을, 2003년 교육부는 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 국가직무능력표준(KSS)이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가지 사업의 목표가 비슷하다 보니 2010년 NCS로 통합된 것이죠.


즉 NCS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정부에서 추진한 사업이었으나, 추진력이 부족한 상태라 주춤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개발이 급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학력, 학벌주의를 청산하고 능력 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기제인 만큼 정부와 상관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Q 직무 능력 중심 채용이 또 다른 스펙 쌓기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일부 관련 학원이 생기며 또 다른 스펙 쌓기로 비쳐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필요한 직무 능력을 습득하는 학원 교육이라면 다른 차원의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의대 교육이나 간호대 교육 같은 것은 전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니까요. 앞으로는 각 교육마다 의대, 간호대처럼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Q 학생들 입장에서 NCS 채용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우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하고,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인턴 등의 활동으로 해당 직무를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져야죠. 이를 통해 직무에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필요한 직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 하는 공부보다 실제 직무를 경험하며 체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담=장승규 편집장

정리=박해나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