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공채 시대 마감하나


1957년, 삼성그룹이 처음 도입한 그룹 공채 제도가 60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이 올 상반기부터 그룹 공채를 폐지할 것이라는 소문이 그 진원지다. 재계 1위 삼성이 그룹 공채를 없앨 경우 다른 기업들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올해 4분기 연결기준 확정실적으로 영업이익 9조2천2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홍보관 모습/김범준기자bjk07@hankyung.com
삼성전자가 올해 4분기 연결기준 확정실적으로 영업이익 9조2천2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홍보관 모습/김범준기자bjk07@hankyung.com

삼성 직원이 회사 정문을 나오고 있다. 사진=한국경제DB



연초부터 삼성의 그룹 공채 폐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룹의 콘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의 해체가 사실상 확정 되면서 신입사원 채용 역시 각 계열사가 주관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삼성 측은 “아직 모든 게 미정”이라며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공채 일정 연기나 삼성 직무적성검사(GSAT)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정이라는 측면에서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확답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삼성은 그동안 공채 방식의 변화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2014년 대학총장추천제 도입, 2015년 서류전형 부활 등 그동안 삼성이 선택한 변화는 모두 ‘보다 효율적인 직무역량 평가’로 귀결된다. 그룹 공채 폐지 역시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어 한층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삼성그룹 공채 1기 기념사진. 사진=삼성물산 제공


1990년대, 학벌중심 채용에서 역량중심 채용으로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우리나라에 그룹 공채 제도를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삼성그룹이다. 1957년 삼성이 첫 시행한 그룹 공채에 당시 1000명이 지원했고 총 27명이 최종 합격해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으로 배치됐다.


삼성의 그룹공채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기업들이 입맛에 맞는 일부 학교에만 추천서를 보내 인재를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채용 기회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채용 과정을그룹 차원에서 관리하기 시작하자 다른 기업들도 속속 그 모델을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 그룹 공채는 무작위 인재 확보 경쟁에 가까웠다. 이른바 ‘그물형 채용’ 방식이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인재 채용의 효율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개성, 글로벌 능력 등 세부 역량을 평가해 적합한 인재를 찾는 ‘그물형 채용’이다. 계열사별 공채도 추가했다. 평가방식으로는 직무적성검사 및 토론면접, PT면접 등 다양한 면접을 도입했다.


삼성그룹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삼성 신경영’ 발표와 함께 국내 최초로 대졸여성 공채를 도입해 139명을 선발했다. 2년 뒤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한 학력, 성별 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서류전형을 폐지했다.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2004년 7월, 삼성SDS 면접장에서 응시생들이 면접을 치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DB


같은 해 하반기, 30대 그룹도 공채에서 필기시험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경련은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를 열고,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 암기위주의 필기시험을 없애야한다”는 정부의 교육개혁 방침에 적극 협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기업들은 대학 4년간의 성적을 중심으로 협동심, 창조력, 리더십을 포함한 다양하고 폭넓은 종합 평가방법을 개발해 시행하기로 했다. 공인 어학 점수와 컴퓨터 실기 능력 등을 평가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기존에 자체적으로 시행하던 영어 필기 시험을 없애고 이를 토플과 토익 점수로 대체했다. 필기 시험에는 새롭게 한자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구직자들이 현대·기아자동차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모여있다. 사진=한국경제DB


현대차는 1994년 무자료 면접 전형을 시행했다. LG그룹은 영어시험 비중을 높이고 전공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직무능력평가 시험을 새로 도입했다. 1995년 기아차는 상시채용과 정기공채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면접도 확산됐다. 학벌, 지연, 가정환경 등 불필요한 개인정보의 기재를 금지한 것이다. 대신 지원 동기와 가치관, 교우관계 등을 상세히 적도록 했다. 채용설명회도 이때 본격화했다. 이랜드는 채용박람회 현장 면접을 통해 인력을 충원하기도 했다.



 이랜드는 30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대학1학년생부터 학년구분없이 지원가능한 '학년 파괴채용프로그램'을 운영, 면접시험을 치렀다. 응시한 학생들이 자신들을 잘 나타내는 물건들을 면접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이랜드는 30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대학1학년생부터 학년구분없이 지원가능한 '학년 파괴채용프로그램'을 운영, 면접시험을 치렀다. 응시한 학생들이 자신들을 잘 나타내는 물건들을 면접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

이랜드는 2004년 7월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대학 1학년생부터 학년 구분없이 지원가능한 `학년 파괴채용프로그램`을 운영, 면접시험을 치렀다. 응시한 학생들이 자신들을 잘 나타내는 물건들을 면접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한국경제DB



2000~2010년대, 탈스펙 채용 본격 확대


2000년대들어 직무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인턴십을 통해 실무능력을 검증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인턴채용이 대폭 확대됐다. 2005년 삼성그룹이 대학생 인턴제도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대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2010년대에는 탈스펙 전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직무역량을 보다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학력, 영어성적 등 이른바 ‘스펙’을 평가에서 배제한다는 취지였다. 대표적인 탈스펙 전형은 자기PR 방식이다. 자기PR은 면접관 앞에서 입사 지원 동기나 입사 후 포부 등을 어필하는 시험을 말한다.



10일 서울 중구 중림동 브라운스톤에서 열린 SK 바이킹챌린지에서 한 구직자가 프레젠테이션 오디션에서 발표 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10일 서울 중구 중림동 브라운스톤에서 열린 SK 바이킹챌린지에서 한 구직자가 프레젠테이션 오디션에서 발표 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SK그룹의 대표 탈스펙 채용전형인 ‘바이킹 챌린지’ 오디션 진행 모습. 사진=한국경제DB


SK그룹(SK 바이킹오디션·2013년), KT(달인채용·2012년), LG유플러스(캠퍼스캐스팅·2014년) 등이 잇따라 이를 도입했다. 롯데그룹은 2015년 상반기 ‘스펙태클 전형’이라는 ?칭으로 발표 전형을 추가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워너비 패셔니스타’라는 스펙타파 오디션 전형을 새로 추가했다.


최근에는 산학 장학생도 주목 받고 있다. 산학 장학생은 기업이 특정 전공을 수료한 석?박사급 인재의 학업을 지원해 이들을 채용하는 제도다. 입사와 동시에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 것이 매력이다. 산학 장학생 채용은 현대차, 두산중공업 등 제조업 기반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삼성發 폐지‘썰’...‘60년 역사’ 그룹 공채 시대 끝나나

한 대학생이 학교에 걸린 롯데케미칼 산학장학생 채용 설명회 안내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DB


전문가들은 그룹 공채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직무역량에 초점을 맞춘 계열사별 채용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그룹 공채를 폐지한 대기업도 있다. 2013년 한화그룹이 계열사 채용으로 전환하고 그룹 차원의 인적성검사(HAT)를 없앴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자기소개서 문항이나 면접방식 등에 차별화를 두고 있고 두산 역시 계열사 단위의 전문인재 채용을 선호하는 추세다.


최성욱 서강대 취업지원팀 과장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공채 운영 및 신입 교육비용 절감을 위해 계열사 채용으로 전환하려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라며 “이 경우 각 계열사별 맞춤 전략이 필요한 데다 채용 규모도 줄어들기 때문에 취업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들은 삼성이 그룹 공채를 없앨 경우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 들 수있다고 우려한다. 삼성그룹은 연간 1만 명 가량의 신입 사원을 채용해 왔다. 이와함께 그룹 차원의 GSAT 존폐여부도 관심거리다.


한 취업전문가는 “GSAT는 대부분의 취업준비생이 ‘일단 준비하고 보는’ 시험이어서 GSAT가 사라질 경우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도희 기자 tuxi0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