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중심 채용시대, ‘제대로’ 학원 가려면 월 200만원 든다


#금융권에 취업하려는 대학생 A씨는 CFA(국제재무분석가) 1레벨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200만원의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다. 대학생 신분으로 비싼 수업료가 부담스럽지만 강의를 듣지 않으면 자격증을 취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씨는 “전체 3개 레벨로 이뤄진 CFA 자격증의 경우 1레벨 시험 접수 비용만 1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교재비, 강의비까지 포함하면 1레벨까지만 가는데도 200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기업 및 공공기관 등이 직무중심 채용을 내세우며 스펙을 지양한다고 주장하지만 직무 능력 및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자격증 뿐” 이라고 하소연 했다.

#대기업 인적성 시험 대비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B씨는 매월 학원 강의료로 30만원씩을 주고 있다. 여기에 강사가 추천한 책까지 구비하려면 40만원이 훌쩍 넘는다.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외국어 학원과 인적성 강의까지 모두 들어야 한다는 B씨. 그는 “대학생들에게 등록금만큼이나 학원비가 만만치 않다”며 “스펙은 없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기본 사항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약 2년 전부터 학벌과 스펙이 아닌 직무능력 중심의 채용 방식을 공공기관 및 기업들이 확대 도입하고 있지만 직무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자격증 취득 등으로 인한 스펙 쌓기 부담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토익, 텝스 등 외국어 관련 강의는 월 25만원 선이며 매달에 한 번씩 치르는 응시료도 각각 4만2000원과 3만 6000원에 달한다.


최근 공기관 및 일부 대기업 등 공무원 시험 등이 인문학 소양을 강조함에 따라 한국사 강의 가격도 뛰고 있다. 적게는 20만원(오프라인 기준)에서 많게는 30만원으로 다른 과목과 패키지로 할 경우 더 비싼 수강료를 지불해야 한다. 공기관 필기시험인 NCS(국가직무능력)의 경우 한 달 완성 종합반 과정이 40만원에 육박한다. 또한 기초반과 실전반도 20~30만 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강남에 있는 C학원의 경우, 공기업 자소서 소수정예 한달 완성반 수강료로 24만원을 받고 있다. 이 학원은 금융권 논술 이론 및 문제 풀이반 2개월 과정에도 38만 원을 받고 있다. 또 면접대비 과정도 별도로 개설, 2회 대면 만남 코칭과 온라인 컨설팅을 합쳐 29만원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독학으로 준비할 수 있는 취업상식과정은 월 4만원~7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금융권 공공기관 취준생을 가정하고 이 학원에 개설된 모든 과목을 들으려면 NCS(1개월 38만 2500원), 자기소개서(1개월 24만원), 금융권논술(2개월 38만 4000원), 인적성(1개월 40만 8000원), 취업상식(1개월 4만원), 면접컨설팅(29만원) 등 총 174만 4500원이 든다. 이외 다른 과목 준비와 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월 200만원으로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노량진, 강남 등 주요 학원가는 때 아닌 NCS 특수로 취준생 유치에 분주한 분위기다. 사실상 올해 공채시즌이 마감된 가운데 내년 상반기 공채에 대비하거나 방학 동안 취업 준비를 하려는 학생들의 문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익 시험 변화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최근 달라진 신토익 시험의 문제와 난이도가 공개되면서 이에 맞춘 강의와 관련 교재가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량진의 학원가의 한 관계자는 “매년 달라지는 취업 시험 내용에 맞게 학원에서는 축적된 노하우와 정확한 자료 수집을 통해 신속하게 대응 중”이라며 “이 때문에 본격적인 방학시즌이 시작되면 수강생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인사담당자는 “자격증이 필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무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한 번 더 서류를 보지 않겠느냐”며 “자격증은 곧 직무 능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는 경험의 지표가 될 수 있어서 동등한 조건이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지난 9월 하반기 신입 공채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스펙을 조사한 결과 토익점수가 69.2%, 전공분야 자격증(54.9%)를 보유했다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토익점수는 746점으로 집계됐으며 보유한 전공분야 자격증은 한명 평균 2.1개에 달했다. 그 다음으로 대외활동 40.8%, 인턴십 32.0%, 해외어학연수경험 26.5% 순이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사진=한경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