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금융전문가를 모십니다' 알고보니 영업 대리점서 보험설계사 채용



“여러분은 금융전문가가 될 거잖아요. 당장의 월급은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에서 얼마나 성장하느냐를 봐야죠. 물론 성과가 나면 그만큼 파격적인 대우를 해드립니다.”


최근 많은 대기업계열 보험사가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졸 구직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채용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모집공고에는 ‘금융전문가’ ‘영업전문가’ 등의 이름을 붙이지만 대개는 보험설계사 채용이다.


이들은 대학이나 본사 차원의 채용설명회를 열거나 취업사이트의 이력서에 적힌 연락처를 통해 무작위로 입사를 제의한다. 구직자들은 이름 탓에 대기업 본사에 취업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 설계사조직은 본사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별개의 그룹으로 복리후생이나 승진체계 등 역시 본사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전직 대졸 보험설계사인 A씨는 이 같은 공격적인 채용을 “리크루팅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A씨는 “신규 영업 직원을 많이 채용할수록 높은 리크루팅 평가를 받는데 이 점수는 매달 책정되는 실적에 반영돼 급여에도 영향을 준다”며 “적극적으로 대학설명회를 열거나 취업준비생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입사를 독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사 조직의 채용설명회, 100% 믿어도 될까


최근엔 외국계 보험사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알리안츠생명은 지난 11일 서울시와 금융감독원 공동 주최로 열린 ‘서울 글로벌기업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i-PA라는 설계사 채용 소식을 홍보했다.


i-PA를 ‘보험금융전문가’라고 소개한 이 회사 담당자는 행사의 한 코너로 마련된 채용설명회에 서 참가한 취업준비생들에게 회사의 규모, i-PA의 특혜 등을 연신 강조했다.


이 담당자는 특히, i-PA의 경력이 본사차원의 공채에 지원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 3월께 본사 차원의 공채가 예정돼 있는데 i-PA 경력자는 이 공채에서 가산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서류전형은 그냥 합격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본사 측은 처음에는 “본사와 i-PA간 인사교류나 서류 가산점 가능성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뒤, “그간 i-PA에 대한 혜택을 놓고 내부 논의 중인 상태였는데 2017년부터는 확실히 i-PA 출신에 가산점을 도입할 예정이다. 우수성과자는 공채 서류전형 및 1차면접 면제 혜택을 줄 것”이라고 추가로 답해왔다. 다만 내년 공채 계획 및 혜택 적용 직무는 아직 미정이다.



'대기업 금융전문가를 모십니다' 알고보니 영업 대리점서 보험설계사 채용


지난해 말 SRA 측이 게재한 채용 공고. 지난 달에도 한 취업커뮤니티에 고용디딤돌을 인용한 채용공고가 올라왔지만 기사가 나간 뒤, 해당 글 게시자가 글을 삭제했다고 알려 왔다.


삼성화재의 보험설계사 조직인 SRA(SAMSUNG RISK ADVISOR)는 지난해부터 정부의 일자리지원 프로그램인 ‘고용디딤돌’을 모객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용디딤돌이란 기업 교육과 인턴을 거쳐 일부에게 취업까지 연결하는 정부 제도인데, 삼성화재는 고용디딤돌 모집 기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SRA의 일부 담당자가 3개월의 교육과정과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들어 모집공고에 ‘고용디딤돌’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어 구직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본사는 “나 몰라라”… 실적중심제 감당할 수 있으면 지원하라


본사차원의 규제가 없는 것도 문제다. 지난 9월 건국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화생명 채용설명회가 돌연 취소됐다. 당시 설명회 주최는 한화생명 본사가 아닌 한화금융네트워크라는 회사 내의 영업조직이었는데 이에 대해 본사 담당자는 “우리 인사팀은 이번 설명회가 개최되는지 몰랐다. 한화생명 공식 설명회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앞서 알리안츠생명 역시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자 본사 인사팀 측은 “i-PA는 설계사 조직이기 때문에 본사 차원에서 관리하지 않아 설명회 등지에서 전달하는 잘못된 정보를 일일이 바로잡기는 힘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들 설계사는 기본급이 거의 없는 완전 성과중심제다. 기본급이 있다고 해도 회사 내부의 실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경우도 많다. 알리안츠생명이 그렇다. 채용공고에 기본급이 100만원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내부의 기준을 달성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한 금융분야 취업전문가는 “실적 중심의 보험영업 특성이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막연히 대기업 간판에 끌려 지원했다가는 시간 낭비와 마음의 상처를 겪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