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10월 10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LG광화문빌딩 LG생활건강 본사에서 이동재 사원을 만났다.

괴짜전형 합격자답게 촬영 내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진=이승재 기자



이동재(30) 씨는 곤충밖에 몰랐다. 서른이 되도록 곤충을 찾으러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그렇게 20년간 곤충 1만2000개를 모았다. 대학 전공도 생명공학과를 택했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연구소에서 곤충을 분석했다. 그 덕에 지난해 LG생활건강 대졸공채에 합격했다.


“곤충만 잡았는데 대기업에 합격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LG생활건강은 2015년 5월, 마케팅과 세일즈 직무에 ‘괴짜전형’을 도입했다. 특정 분야에 관심과 재능 있는 지원자를 서류면제해 주는 ‘탈스펙’ 전형인데, 채집가 괴짜였던 이씨는 이 전형을 보자마자 무릎을 ‘탁’쳤다. 그게 이씨의 합격비결이었다. 이씨와 같은 1기 세일즈 아카데미 중 괴짜전형 입사자는 10%가 조금 넘는다.



[PROFILE]

이동재

1986년생

2012년 건국대 분자생명공학과 졸업

2015년 8월 LG생활건강 HG특판영업팀 입사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이동재 씨의 괴짜스토리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사 문화기획부에서 기자 겸 생태계 탐사단장을 맡았던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부터였다. 소년 이동재는 늘 제 몸보다 큰 포충망을 들고 다니며 한국의 파브르를 꿈꿨다.


“아버지와 여름이면 산에서 곤충을 채집하고 겨울엔 철새를 보러 다니며 항상 자연과 함께 했어요. 곤충채집이란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땅에 있는 곤충을 잡으려면 산을 수 킬로 타면서 중간 중간 미끼를 묻어 놔야 하고 빛을 좋아하는 야행성 곤충을 잡으려면 할로겐 등을 켜놓고 하룻밤을 꼬박 숨어 있어야 해요. 그냥 오르기도 힘든 산을 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타야 하죠. 생각보다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아버지와 함께여서인지 항상 즐거웠어요.”


원정 채집도 떠났다. 특히 만 23세였던 2009년의 일이 이씨는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종인 쇠똥구리를 목초지가 발달한 몽골에서 직접 채집해 국내로 들여오는 여정이었다. 비록 쇠똥구리는 찾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취미이자 특기인 곤충채집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곤충채집의 근본적인 목적은 연구예요. 곤충은 생태계에서 식물 다음의 1차 소비자이기 때문에 곤충을 연구하면 생태계가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거든요. 곤충채집이 단순히 취미로 그치지 않고 공익에도 사용된다니 더욱 헤어나올 수 없었어요.”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대학 졸업 후 이미 2년… “늦은 줄 알았지만 길은 있었다”


곤충 외길인생을 살았던 이씨는 대학 전공도 일부러 생명공학과를 택했다.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연구소에서 곤충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진짜 한국의 파브르가 될 것 같았던 이씨의 인생이 달라진 건 2014년, 그가 만 29세가 되던 해였다. 문득 서른이 되기 전 곤충이 아닌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그의 새로운 꿈은 영업맨. 하지만 이미 졸업 후 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요즘 ‘취업나이 마지노선’이라는 말들 하잖아요. 주변에서 ‘남자는 서른을 넘으면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니 겁이 난 것도 사실이었죠. 게다가 평생 곤충밖에 몰랐기 때문에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으니까요. 인턴경험도, 자격증도 없었거든요. 한 거라곤 학점관리와 2년의 학생회 경험이 전부였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스터디도 만들었다. 항상 서류전형부터 낙방했던 그는 스터디원과 서로의 자기소개서를 봐주며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인적성검사도, 면접도 이곳에서 준비했다.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그렇게 일 년간 70곳에 지원서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서류전형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러다 2015년 상반기, 서류전형 면제 혜택이 있다는 LG생활건강의 괴짜전형을 발견했다. 취업을 준비하느라 ‘울며 겨자먹기’로 20년의 소중한 추억을 미뤄둬야 했던 그에게 전문 역량을 평가한다는 이 전형이야말로 한줄기 빛이었다. 20년이라는 꾸준함과 그 동안 만들어 낸 체력을 감안하면 “이건 안 될 수가 없겠다”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괴짜전형은 서류를 면제받는 대신 ‘괴짜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자신의 ‘괴짜력’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 이 씨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활용해 두 장짜리 ‘이동재 잡지’를 만들었다. 이 안에는 직접 작성한 이동재 인터뷰와 20여 년의 곤충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녹였다. 중학교 때 곤충채집으로 받은 상도, 과학잡지에 실린 진짜 자신의 인터뷰 기사도 실었다.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1차 괴짜자료 평가에서 합격한 그는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인적성검사와 면접을 치러야 했다. 취업 스터디에서 일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한 그는 인적성검사를 무난히 통과했다. 면접 때도 평소에 LG생활건강과 주력사업을 조사한 이력을 톡톡히 살렸다.


“면접은 직무면접과 인성면접 두 가지였어요. 직무면접은 한 사업부에서 필요로 하는 전략을 1~2분 동안 면접관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1인 가구 공략법’을 받았어요. 면접 전 면세점, 마트 등 LG생활건강 제품 입점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현장을 체험했거든요. 이때의 경험을 살려 답했죠.”


인성면접 때는 면접장을 감동의 바다로 만들었다. 취미에 ‘아버지와 야간채집하며 소주를 마시는 것’이라고 답했는데 순간, 면접관들이 일제히 이씨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 이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면접관들도 다 아버지인데, 제 답변에 잠시나마 일에 치여 잊고 살던 자녀를 떠올리신 게 아닌가 한다”라며 웃었다.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한 우물’ 전문가, 한 곳만 파 입사 일 년 만에 거액계약 성사


면접까지 통과한 이씨는 한 달간의 인턴십을 거쳐 지난해 8월, HG(생활용품)특판영업팀의 정식 신입사원이 됐다. 요즘 이 씨가 주로 다니는 곳은 기업이나 은행이다. 할인점, 마트, 슈퍼마켓 등 정규채널 외에 특판영업을 하는 그에게 기업 판촉물이나 기념품, 임직원 선물 등이 주 영업대상이다.


유연근무제인 부서 방침에 따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매출 확인부터 시작해 물건 배송요청, 가격 협상 등을 직접 한다. 오후에는 기업 노경팀이나 복지팀 등 평균 2~3곳을 직접 찾아간다.


‘한 우물’ 전문 괴짜인 그는 최근에 정말 한 우물만 파 거액의 계약도 성사시켰다. 다른 곳에 비해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직접 PT준비부터 제품 샘플 제작, 품평회 등을 도맡아 포기하지 않고 밀고나간 게 성공 비결이었다.



[스펙타파] LG생활건강 괴짜전형 “20년 간 곤충만 모은 서른 살 신입사원 이야기”



“어느 날, 업체가 급하게 PT발표를 요청했어요. 마침 주말이 끼어있어서 관련 부서에 자료를 요청할 수도 없었죠. 직접 일일이 인터넷을 뒤지고 포토샵으로 이미지작업도 해서 겨우 마감시일을 맞췄어요. 주말 내내 한 숨도 못자고 자료를 만들려니 포기하고 싶기도 했는데, 아버지와 몇날 며칠 산에서 밤을 새던 때가 떠오르면서 자연스레 힘이 났어요. 덕분에 지금 이렇게 영웅담을 말할 수 있게 됐고요.”


서른에 신입사원이 된 이씨는 후배들에게 ‘자신만의 강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은 워낙 스펙이 상향평준화돼 있어 영어성적이나 자격증 때문에 취업을 못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며 “대신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강점을 잘 살려 정리하면 생각보다 훨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인터뷰 후, LG생활건강 인사담당자에게도 몇 가지를 추가로 물었습니다. 현재 LG생활건강 인사팀은 10월 8일 그룹 인적성검사를 실시한 후, 시험 결과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 이동재 씨를 채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취미인 곤충채집을 단순 취미에서 그치지 않고, 도전정신과 끈기를 발휘해 자신만의 역량을 쌓은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이를 세일즈 분야에 적용해 도전하고자 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 인턴 후 정규직 전환율은 얼마나 되나요?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2015년 첫 도입 후, 현재까지의 괴짜전형 입사자는 총 몇 명인가요.

역시 공개하기는 어렵습니다.


- 괴짜전형은 서류 면제 혜택을 받는데, 지원서 상의 학점이나 학력 등이 이후 전형인 인적성이나 면접 때는 참고가 되는지요?

서류전형 이후에는 다른 지원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내부 평가기준에 따라 심사받게 됩니다.

- 일 년간 괴짜전형을 진행해 실제 직원을 채용해 본 소감이 궁금합니다.

2015년 괴짜전형 도입 이후, 아직 입사한 지 1년밖에 안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차별화된 아이디어, 그치지 않고 실행하는 실행력 등으로 현업 리더와 선배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케팅에서는 괴짜 신입사원에게 신규 브랜드 런칭을 맡겨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현할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스펙으로 획일화된 지원자들이 아닌, 본인만의 차별화된 경험과 역량을 가진 독특한 '괴짜'들을 채용하고자 했고, 실제 채용까지 이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