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소녀상의 곁을 지키고 있는 한연지 대표(23)

사진=지연주 인턴기자


- 천막설치도 할 수 없어, 비닐 안에서 버티는 대학생들

- 소녀상 가해사건, 무책임한 공권력 속에서도 소녀상 곁을 지키는 이유는?


아직은 쌀쌀한 칼바람이 부는 저녁, 주한일본대사관 앞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합판을 쌓고 그 위를 천으로 씌운 간이 숙소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관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와중 한 시민이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여러분이 수고가 많아요. 고마워요.” 그는 학생들에게 과자와 음료수가 담긴 비닐봉지를 건넸다. 시민의 따뜻한 손길이 모이는 소녀상 옆 농성장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반대 대학생 행동’ 한연지(23) 대표를 만났다.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시민들의 응원 메시지로 가득찬 농성장의 모습

사진=지연주 인턴기자


길고 긴 농성의 시작


“2월 말에 농성을 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위해서는 농성을 지속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3월 한 달 동안 이곳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죠.” 오늘로 169일째, 말 그대로 소녀상의 옆에서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이 있다. 바로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반대 대학생 단체 ‘행동’이다. 이들은 소녀상 철거를 외치는 사람들로부터 소녀상을 지켜내는 역할과 동시에 소녀상의 의미와 농성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와 6시에 ‘실천’과 ‘행동’이라는 이름의 집회를 시행하여 문제의 심각성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3월 한 달을 꼬박 농성장에서 생활한 한 대표는 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포기하고, 학교마저 휴학했다고 말했다. 일상을 포기하면서도 그녀가 농성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이 위안부 합의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식민지배 및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사죄는커녕 막말하는 일본의 행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어요. 또, 그런 일본에 합의를 통해 면죄부를 준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며 내가 먼저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 이 사회도 많은 분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선배들의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이어받자고 다짐했죠.”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가해자의 소녀상 가격 현장

사진='소녀상지킴이 대학생농성' 페이스북 페이지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농성장 맞은 편에서 대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경찰들

사진=지연주 인턴기자


끊임없는 사건·사고, 그러나 ‘복 받은 농성장’이라 부르는 이유


지난 3일 정오에 30대 여성이 쇠망치로 소녀상 머리를 가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단 굉장히 놀랐던 사건이에요. 가해자는 쇠망치를 들고 있었고 이를 대학생들이 막아냈죠. 흉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이 사건으로 가장 실망하게 된 것은 ‘공권력’이에요. 현장에 있었던 경찰은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어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죠.”


이날도 농성장의 맞은편에는 경찰 두 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한 대표는 사건이 발생하고 3~4시간 안에 ‘범죄의 원인은 조현병’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뿌려진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녀상을 때리면 돈을 준다고 했다’라는 가해자의 발언을 조현병의 증상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철저하고 정확한 조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천막을 설치할 수 없어 비닐을 씌운 농성장. 학생들은 이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사진='소녀상지킴이 대학생농성' 페이스북 페이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녀상 옆에 설치된 농성장에는 ‘도로교통법 위반’을 근거로 미세먼지와 곧 들이닥칠 여름의 더위, 장맛비 등을 막아줄 ‘천막설치’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파라솔마저도 설치할 수 없다. 실제로 이곳의 대학생들은 합판 위에 비닐을 감싸 비를 막아내고 있었다. “비가 오면 안이 매우 습해져요.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끈적해질 정도로요. 앞으로의 장마가 무척이나 걱정돼요. 함께하는 대학생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쉽게 지칠 것 같거든요.”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학생들을 위한 식권을 정기적으로 전달해주는 익명의 시민

사진='소녀상지킴이 대학생농성' 페이스북 페이지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한 대표는 이곳을 ‘복 받은 농성장’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시민이 큰 힘이 돼요.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는 농성장도 없을 거예요.”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시간에도 많은 시민이 오가며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이외에도 ‘성동구·중구 어머니들’ ‘십시일반’ 단체에서도 발전기에 휘발유를 채워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 대표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흰 봉투에 ‘사랑하는 청년학생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대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시민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짤막한 편지와 식권 100매가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매우 감사해서 누구 신지 여쭤봤지만, 끝내 정체를 밝히지 않으셨어요. 이러한 용기있는 학생들을 지지하는 시민이 있었다는 사실만 남으면 된다고만 말씀하셨죠. 이런 마음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더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희끼리는 이곳을 ‘복 받은 농성장’이라 불러요.”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전히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의 외침

늦은 밤까지 소녀상을 떠나지 않는 대학생들.

사진=지연주 인턴기자


이 사회에서 ‘우리’가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한 행동


‘리포트 13장이 밀려 있는 친구’ ‘시험이 코앞인 친구’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친구’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그럼에도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이다. “많은 대학생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왜 문제야?’ 혹은 ‘소녀상 진짜 철거해?’라는 질문도 좋아요. 위안부 합의 폐기를 위해 대학생들이 많이 모여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라 말한 한 대표는 농성의 의미를 단순히 정의로운 마음 그 이상이라고 정의했다.


대학생은 주입식 교육으로 이뤄진 입시를 거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 속의 나’를 구성하는 시기기도 하다. 그 고민의 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인식’이다. “대학생이 가장 행동력 있는 주체라고 생각해요. 소녀상을 지키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이끌어야 할 이 사회에서 근간이 되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행동이죠. 그것이 ‘우리’가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현재 한 대표를 필두로 한 ‘행동’은 7월 2일 한일 위안부 합의폐기와 일본국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또한, 이를 함께 할 ‘대학생 기획단’을 모집 중이다. “대학생 여러분이 함께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개인은 비록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라도, 우리가 함께한다면 꼭 소녀상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농성장에도 많은 관심 부탁해요.”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