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작은 기적이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래요.”
윤가은 감독이 말하는 영화 <우리들>
<아가씨>, <엑스맨> 등 거대한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서도 오롯이 존재감을 빛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오는 16일 개봉하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다. 소위 말하는 흥행배우가 주연도 아니고, 이제 막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세 소녀들의 이야기에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을 만나 물었다.
영화 <우리들>은 보편적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다. 10대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처음 만드는 ‘인간관계’ 즉 ‘친구’라는 존재가 주는 신뢰·우정·질투의 복합적인 감정을 처음으로 마주한다. 영화의 주인공 선(최수인)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혼자인 외톨이 선은 모두가 떠나고 홀로 교실에 남아있던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설혜인)를 만나고, 그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된다. 그러나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선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선을 따돌리는 보라(이서연)의 편에 서서 선을 외면하는 지아와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선.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 노력하던 선은 지아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폭로해버리고 만다.
사진: 이승재 기자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이야기, 세상에 나오다.
“이 작품의 이야기 자체는 제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이야기에요.” 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 작품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CJ E&M이 주관하는 산학협력프로그램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 <우리들>에 대해 윤 감독은 이와 같이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주인공 선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밝혔다. “제가 선이의 나이였을 때, 단짝친구와 멀어진 적이 있었어요. 영화 <우리들>은 그로 인해 마음이 아픈 시기를 보냈던 저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그의 경험이 영화의 구석구석 잘 녹아낸 탓일까. 영화 <우리들>은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시선이 세세하게 표현돼 있다. 윤 감독은 실제 같은 연기를 위해 어린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리허설 대신 매우 오랜 시간동안 ‘영화캠프’를 통한 즉흥극을 진행했으며, 현장에서 나타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고 한다. 그 덕에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들은 딱 인물들의 나이와 걸맞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혼란이 비단 어린이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른이 돼서 익숙해질 때가 됐다고 생각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저는 그 혼란이 리얼하게 느껴지거든요.” 어른과 어린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되레 순도 높은 단순함을 지닌 어린이들에게 어른이 배워야 할 점이 존재한다는 것. 윤 감독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통해 이러한 말들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승재 기자
겁이 많았던 20대, “발이라도 담가보는 시도를 하자.”
단편영화 <콩나물>과 장편영화 <우리들>이 모두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베를린의 총아’로 떠오른 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업으로 삼아 성공의 궤도에 오른 그도 스스로 “나의 20대는 격동의 시기였다”말할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동생과 TV를 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낮 시간에 방영해주는 영화들이 많았거든요. 자연스레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 그는 비디오 가게를 자주 다니게 되었고, 중학생이 되어 PC통신 영화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정체성’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20대를 온통 ‘영화를 좋아하는 정체성’을 ‘영화를 제작하는 정체성’으로 바꾸는 과정으로 가득 채웠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20대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치열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네요. 다만, 지금 여러분이 겪는 혼란의 원인은 ‘겁’이에요.”라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20대에게 단지 ‘겁’때문에 도전을 미루지 말라고 덧붙였다. “‘꿈을 위해 일단 준비를 하고, 경험을 쌓아야 겠다.‘ 저도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밖에 나와서 뭐든 해보자! 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발을 담그는 시도도 괜찮아요. 뭐든 밖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진: 이승재 기자
윤가은 감독이 선보이는 ‘관계’에 대한 해답
영화의 말미에는 ‘선’이 ‘지아’를 용기 있게 감싸주면서, 둘의 사이가 다시 견고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한다. “비극적인 상황으로 끝나는 시나리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치열하게 마음을 걸고 싸우는 소녀들’만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들이 살아나가는 방향을 말하고 싶었죠.” 여러 사건·사고들을 고발하는 좋은 시사프로그램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많이 접할 수 있다. 윤 감독은 ‘영화’라는 장르는 이런 프로그램과 다른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접하면서 시작되는 ‘관계’에 대한 고민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한 ‘미움’, 나만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질투’ 등 다양한 관계의 갈등에 대해 윤 감독은 이와 같이 답한다. “관계의 갈등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 주인공 ‘선’에게 있는 그 용기가 어린시절 저에게는 없었거든요. 어쩌면 ‘선’은 과거 저의 유년시절에 대한 판타지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분들에게도 그 용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담스럽게 과해서는 안 되죠. 일상 속의 작은 기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지연주 인턴기자 (sta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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