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높여야 살아남는 교수의 운명, 일단 ‘꽂히는 것’이 학생의 미션

'교수 추천 채용'은 위험하다?


교수추천 취업, 감사할 일일까, 족쇄일까?



소개시켜준 사람이 교수… "어떻게 거절해요"


'삼일 만에 첫 직장 그만둔 썰 풀어봄'

20대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다음 커뮤니티 '쑥남카페'에 '류세라(닉네임)'씨의 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교수 추천으로 출근한 첫 직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적은 글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공감한다'는 내용이었다.


류세라씨가 3일 만에 그만 둔 첫 직장과의 인연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자신을 가르쳤던 교수의 연락이었다. 제과제빵을 전공한 류씨는 자취방을 구한 뒤 취업할 계획으로 졸업 후 알바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근황을 물어 알바를 하고 있다고 하니 ‘야 임마, 취업을 해야지 왜 알바를 해!’라며 ‘지인이 베이커리 2호점을 내는데 사라밍 없어서 졸업생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교수의 추천이니 거절할 수 없어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장까지는 버스로 4시간 30분이 걸렸지만, 1인 1실 기숙사라는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면접장에 도착하니 사장이 없다며 ‘부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앞치마를 건네며 "일 좀 도와라"라며 도움을 청했다. 일하다보니 사장이 도착했고, 한 달 뒤부터 출근할 것을 약속하고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 헤어졌다.


“한 달이 흐르고 짐을 꾸려서 일터를 찾았다. 사전에 약속했던 1인 기숙사는 온데간데 없고 매장에서 버스로 40분, 걸어서 15분이 걸리는 숙소에 짐을 풀어야 했다. 학교 이름도 있고, 교수님의 체면도 있으니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근했다”


부장, 과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인사해보니 부장만 모든 시스템을 익혔을 뿐 다른 직원들은 류 씨보다 2~3일 먼저 들어온 이들이었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라 일은 고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오후에 갑자기 초보인 류 씨에게 베테랑들이 수행하는 일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려준 적도 없었지만,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다.


출근 시간은 아침 7시, 퇴근 시간은 밤 10시. 첫 날을 무사히 보내고 맞은 둘째 날. 처음해보는 일이었기에 부장에게 여러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런 류씨에게 늦게 출근한 사장은 다짜고짜 화를 냈다. 느리다는 것이 이유였다. 류씨는 “죄송하다”는 말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후에도 사장은 여러 번 화를 내더니 급기야는 류 씨의 얼굴에 빵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류 씨는 경험을 키우는 목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교수님의 체면을 뒤로하고 일을 그만둬야 했다.


"취업률 평가 기간까지만 참아달라"는 말에 위장취업까지?


류 씨와 달리 K씨는 교수의 부탁으로 그만 둔 후에도 계속해서 보험료를 내며 의도치 않게 위장취업을 해야 했다.


K씨는 졸업 후 교수의 소개로 한 기업에 원서를 넣게 됐다. 급여, 근무 환경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일단 시작해라"는 교수의 말에 고민 끝에 지원했다.


6개월 후, K씨는 사표를 내야만 했다. 임금체불이 상습적으로 이루어지고 막말이 오가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다시 '취준생'을 자처한 것이다. 퇴직 후에도 K씨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K씨는 서류상 여전히 '직장인'으로 되어있다. "학교 취업률을 높여야 하니 학교 취업률을 조사하는 6월까지만 버텨달라"는 교수의 부탁으로 회사에서 퇴직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보험금을 회사에서 내지 않아 집으로 두달 째 통지서가 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의 없이 '위장취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교수의 소개를 받은 회사이기에 신고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K씨의 담당 교수가 위장취업까지 불사한 이유는 '유지취업률'때문이다. 유지취업률은 교육부가 대학들이 졸업생들을 단기간 취직시켜 놓고 이를 취업률에 반영시키는 편법을 막기 위해 도입한 지표다. 산출 기준은 매년 6월 직장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조사하는 '건강보험'이다.


K씨의 사례 이외에도 "경험을 쌓는 좋은 기회"라는 말에 절실한 마음으로 첫 취업에 나섰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에 일을 그만두는 초년생들이 많다.


서울의 한 대학 취업지원센터의 A 담당자는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도입되면서 취업률 수치가 아닌 취업을 위한 사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워졌지만, 사실상 취업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다보니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며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 학생들에게 양질의 취업 지도를 할 수 있도록 교수들에게도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률로 대학 평가하고 차등 지원하는 것이 발단


박근혜 정부 들어 도입된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을 5등급으로 평가해 운영이 미흡한 곳에 정원 감축, 재정 지원 제한 등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 따라 2015년 8월, 전국의 대학은 'A'등급에서 'D'등급으로 분류되며 각 대학과 재학생들의 희비가 갈렸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교육여건, 학사관리, 학생지원, 교육성과 4개 항목의 1단계 지표와 중장기발전계획, 교육과정, 특성화 3개 항목의 2단계 지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데, 대학 구조개혁, 예산 확보 등의 문제가 달린 사안이다 보니 대학에서는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한 방안을 마련, 운영에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학이 신경 쓰는 부분은 '취업률'이다. 취업률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항목인 탓이다. 때문에 각 대학에서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과 통폐합은 물론, 교수 임용을 결정할 때 취업률을 주요 지표로 활용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교수들이 받는 압박이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에서 4년제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진로지도실태설문'에 따르면 대학이 교수 진로지도를 위해 실시하는 정책 및 지원으로 '취업률 목표 설정과 달성 독려'가 89.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높은 비율을 차지한 항목은 '취업률을 평가에 반영(82%)'이었다. '전반적 업무량 경감'은 8.5%에 불과했으며 '관련 연수 제공(39%)''인력지원(45.5%)'도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대학교수들은 "대학이 교수들에게 학생 진로지도에 더 많은 역량과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지만, 진로지도에 필요한 전문성 제고를 위한 지원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즉, 취업 지도를 위한 지원 없이 어떻게든 학생들을 취업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이라는 단어로 발생한 부작용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취준생 사이에서 "교수가 추천하는 자리는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김은진 기자(skysung8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