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스 레터] 호의가 의무가 된다는 것


Editor's Letter

호의가 의무가 된다는 것


세상 살면서 가장 짜증날 때가 언제인가요?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할 때? 워크아웃을 미리 예견한 오너가 주식을 몰래 팔아 치웠을 때? 연말정산 결과 세금을 토해 냈을 때?(이건 학생들과 상관없군요.) 아니면 학생식당에서 똑같은 가격의 배식을 받았는데, 옆 친구가 닭다리 하나를 더 받았을 때?


저는 ‘호의’가 ‘의무’가 될 때 짜증을 느낍니다. 어떤 거냐구요? 회사에서 ‘호의’로 가습기 물을 갈았는데, 어느 순간 회사 사람들이 ‘가습기 물 교체는 네가 하는 거 아니냐’라고 당연하게 여길 때. 유리문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쳐서 문을 열어주었는데, 상대방이 감사의 인사도 없이 문을 통과해 버렸을 때. 빌라 계단이 더러워서 ‘호의’로 청소를 했는데, 나중에 공동으로 돈을 모아 계단청소를 맡기자고 했더니 ‘계단청소는 원래 네가 하던 거 아니냐’라고 할 때.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요리 잘 한다고 뽐내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랑을 할 때는 어쩌다 ‘호의’로 요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지, ‘네가 요리를 잘 하니까, 앞으로 식사준비는 네가 해라’라고 한다면 다시는 요리 자랑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생활이 힘든 것도 호의가 의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외벌이 가정의 경우, 주부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장을 보고 음식을 했는데, 가족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거나, 심지어 ‘국이 짜다’ ‘맛이 없다’라고 한다면 ‘내가 이걸 왜 한 건가’라고 기운이 빠지겠지요. 밖에서 사장·이사·부장에게 줄줄이 까이며 힘든 하루를 보낸 날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말을 걸어 보지만, 자녀들은 아빠가 거실에 나오니 슬금슬금 자기 방으로 다 도망가 버릴 때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심정이 되겠지요.


연애에서도 비슷합니다. 사랑이 싹틀 때는 이성친구가 ‘어떻게 나의 생일을 알고’ 밤 12시가 가기 전 집 앞에서 선물을 전달한다면 그보다 더한 감동이 없겠지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그렇게 한다면 감동이 있을까요? 생일을 챙기는 것이 호의에서 의무로 변한 것입니다. 열정페이가 짜증나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지요. ‘호의’로 나의 근면·성실·노력·열정·창의를 회사에 바쳤는데, 그게 당연한 ‘의무’처럼 돼 버렸기 때문 아닐까요. 알바로 일한 가게에서 근무시간보다 더 많이 일해 줬는데, 근무시간 시급조차 챙겨주지 않는다면 열이 받겠지요.


자, 이제부터 상대방의 호의를 의무로 여기는 몰상식한 짓은 그만 두도록 합시다.


우종국 <캠퍼스 잡앤조이> 취재편집부장 xyz@hankyung.com